언어의 역사 - 말과 글에 관한 궁금증을 풀다
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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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의 필요성은 알지만 왠지 역사와 관련된 책은 진지하고 묵직하고 하품 날 것 같은 부담감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했다. 설민석님 등장 이후로 한국사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커피의 역사, 자본주의의 역사,이렇게 뿌리를 파헤치는 책은 의자에 엉뎅이를 진득히 붙이고 읽기가 참 쉽지 않다.

그렇지만 역사에 대한 호기심은 또 놓지 못하는...상황이라 이번에는 [언어의 역사]라는 책에 도전했다.

역시,역시...역사와 관련된 책은 늘 두꺼운 것 같다. 무려 430페이지 분량이다.
사실 읽다가 지루하거나 하면 과감없이 중간에 읽기를 때려치거나 띄염띄염 건너 읽기를 하려고 했다.

결론은...?
완독했다.
왜냐면 책 자체가 언어에 대한 역사 책이 맞긴 한데 연구결과, 데이타 분석, 인터뷰 등을 사용하여 시종일관 진지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 어깨에 힘을 빼고 가볍게, 재미로 읽어도 되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전공도서 느낌보다 대중적인 느낌이 강하다. 언어에 대해 한번쯤은 궁금해 했을 지식들만 모아놔서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간다.

40가지 주제로 썼는데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어서 좋다.

<베이비 토크>에 대하여 ​
첫번째 주제는 <베이비 토크>였는데 저자는 베이비 토크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다.

...아기에게 말을 건네는 내내 엄마의 두 입술은 마치 누군가에게 키스를 보내기라도 하듯 동그랗게 말려 올라갔다.
...
베이비 토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입술을 동글게 오므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목소리에 과장된 멜로디가 실린다.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같은 표현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11페이지 참조)


아기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올라오는 표현들이었다. 아기가 알아듣지 못할 거란걸 분명히 알지만 그래도 행여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어 입술을 한껏 오무리고 감정을 최대한 실어(저도 모르게)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하는 것이 언어의 역사 안에서 이미 많은 엄마들이 겪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수화>에 대하여

언어가 표현 되는 대표적인 방식은 말과 글이지만, 그 외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수화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수화 통역사를 건청인(hearing person)이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이다. 또 수화는 나라마다 달라서 한국 수화를 프랑스 수화 통역사가 알아 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기본적인 수화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각 나라의 문화나 역사가 다르기때문에 같은 수화를 찾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비슷해 보이는 수화는 가끔 있다.)

<사라져가는 언어>에 대하여
전 세계에는 6,000개의 언어가 있는데 이중 사용자 수가 극히 적어 곧 사멸될 가능성이 높은 언어인 위기 언어들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더 이상 부모님의 언어를 배우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언어를 쓰는 최후의 한 사람이 죽는 순간 그 언어도 사멸한다.

언어학자들은 앞으로 100년 내에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멸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것은 곧 1,200개월 동안 약 3,000개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즉 평균 약 2주마다 한 개꼴로,과거보다도 엄청 빨라졌다.(214-215페이지 참조)​


내 언어가 사멸되지 않는 이상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언어가 사멸하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 저자는 현대에 와서 언어가 '떼죽음'을 당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동물과 식물이 기후변화, 새로운 질병의 영향, 사람들이 땅을 이용하는 방식의 변화 등 갖가지 원인으로 사멸하는 것처럼 이러한 원인은 일부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새로운 언어가 좀 더 나은 삶을 약속하기 때문'이라 하는데 이는 언어가 점점 생존과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일테다.

가끔 티비에서 희귀종 동물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보면 마음에 여운이 남고 애잔했던 적이 있는데 언어의 사멸에 대해서는 정작 무관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언어학자들의 노력으로 언어사전에 기록되어 보존은 되겠지만 아무도, 어떤 이유로도 더 이상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죽어가는 언어는 다양성이 점점 죽어가고 생존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지며 문화든 세계관이든 단일화로 치닫는 위기와 맞물린다.

그동안 나도 생존에 포커스에 두고 재테크나 자기계발 도서를 흡입하듯 많이 읽었다. 사실 뭐 언어의 역사를 모른다고 해서 내 하루가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싶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서 어쩔수 없이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겠지만 오직 생존만 생각하는 인간은 결국 내면이 단일화 되고 독특한 고유의 자아가 서서히 사멸되어 가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을 읽기 참 잘했다.
커피숍에 가서 만날 습관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마시다가 간만에 신메뉴를 주문해서 마셔보고 뇌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딱히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평생 모르고 살겠지만 알게 되니 읽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드는 언어에 대한 40가지 사실을 되새기며 이 글을 마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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