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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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봤던 영화 중에 단연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상 깊은 영화였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벌써 몇 번째 출연하는 반가운 얼굴 릴리 프랭키가 주연으로 열연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낯익은 얼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원한 페르소나라 불리는 키키 키린이 역시나 할머니 역으로 등장했더랬죠. 처음 키키 키린의 연기를
보았을 때 양 쪽 눈의 시선이 다른 것 같아 ‘저것도 연기인가’싶었는데 그 녀가 출연하는 영화 몇 편을 보고 나서야 호기심에 ‘키키 키린 눈’을
검색해봤네요.그때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키키 키린은 2003년에 왼쪽 눈을 실명했다 합니다. 배우로서는 치명타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키키
키린 스스로는 두 눈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배우도 대체할 수 없는 눈빛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작년 9월, 오랜 시간동안 암으로 투병 중이던 키키 키린은 향년 75세로 영면합니다. <어느 가족>에서 조용히,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했던
것처럼 말입니다.그리고 저번 달 키키 키린이 남긴 120가지 말을 기록한 책이 출판됐다 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살아온 삶에 대해,
앓고 있는 병에 대해, 그녀 육신에 다정하게 깃든 늙음에 대해, 사람에 대해,인연에 대해, 가족과 육아에 대해,직업에 대해,생과 사에 대해
그녀가 생전에 무심하게 남겼던 말들을 한 페이지씩 천천히 넘기며 읽었습니다. 
 

 

한 인간의 언어는 그 사람의 세계라고 합니다. 키키 키린이 남긴 말을 읽으면서 그의 삶의 한 조각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물론 120가지 모든 말에 공감하지는 않지만 “달관한 어르신의 뼈 있는 한마디”는 언제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보약인 법입니다.  읽었던 120가지 말 중에 오늘은 일곱 마디만 소개해보려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선명하게 기억 났던 말들을 뽑았습니다.

 

1. ​"평범한 일생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말을 읽으면서 “보낸다”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더라고요.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반복되는 일상에 푹 잠기기도 하고 흘러보내기도 해보고 버티기도 해보는건데 평범한 일상을 알차게,재미있게 잘 보내다보면 거기에 삶의 의미도 있고 성장도 있고 선물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2. "내가 가진 걸로 어떻게든 해나가는거죠."

그런거죠! 그렇지만 아직 혈기왕성한 젊은 저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부도 세습되는 시대에 살면서 어찌 보면 참 배부르고 여유있는 말이다 싶기도 하고요. “내가 가진 걸” 생각하면 참 답답한데 “어떻게든” 해나가야지요. 이 말의 포인트가 저에겐 “어떻게든”입니다. 어떻게든,어떻게든 해나가야지요.아님 어쩌겠어요. “어떻게든”을 붙잡고 살아야지요. 그렇게 살다보면 또 깨달아지고 터득하게 되는 것들이 많아질것 같아요. 그리고 가질 수 있는 것이 꼭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만 아님도 알아가겠지요

 

.3.  '언젠가' 죽는게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아직 죽음은 ‘언젠가’입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제 삶은 좀 달라지려나요.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죽는다고 생각하고 사는데도 현재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다는건 어리석거나,정말 후회없이 잘 살고 있다는 뜻인데 저는 후자였으면 좋겠거든요:)

4. "사람에게도 제 자리가 있어서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그가 살아보기이도, 죽어보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읽으며 소크라테스의 띵언이 생각나더군요.“너 자신을 알라”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자기 자리를 잘 찾는 것이 더 필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하지도,덜하지도 않게 책임감은 있으면서 오바하지 않게 필요한 곳에 조용히 존재하기.

5. "나는 사람도 한번 망가져 본 사람이 좋더군요.......한번은 자기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 좋다는거죠. 그런 사람은 아픔이 뭔지 알기 때문에 대화의 폭이 넓고 , 동시에 넘어진 자리에서 변화할 수 있거든요."

키키 키린님, 저도 그래요! 과거에 개망나니(?)로 살았는데 그걸 스스로 해석하는 힘이 있고 그 망나니 짓이 계기가 되어 멋있어진사람은 존경스럽고 어딘가 빛나는 구석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은 “과거가 어땠나”보다 “그런 과거를 오늘은 어떻게 구워삶았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지는 것 같아요.

6. "돈도 지위도 명성도 없이 남의 눈에 수수하고 따분한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자기가 정말 원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다면 그 사람의 인생을 반짝반짝 윤이 날겁니다.

저는 이 말을 돈도 지위도 명성도 있는 키키 키린님이 하셔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잠깐 생각에 잠겼더랬죠. 돈,지위,명성이 없이 평생 살다 돌아가신 분의 삶이 어느날 새롭게 조명되고 그 분이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더라,하면 감동이 배로 될 것 같다는 저만의 섣부른 판단이 있지만 가진 분이 그것이 없을때조차 반짝반짝 윤이 나게 살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가지기 전에 그런 마인드로 살아오셨거나,반대편의 삶조차 이해하고 달관하고 있는 통찰력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네요. 평소에도 이런 마인드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번 곱씹어 읽어본 말이기도 합니다.

7. "자신 있게 말할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이 말 한마디때문에 키키 키린님이 부러웠습니다. 인생 다 살아보고 만족스럽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저 초연함,내려놓음...감사한 마음으로 떠날수도 있고 미안한 마음으로 갈 수도 있고 각자 살아온 여정이 다른 만큼 느낌도 다르겠지요. 다만 마침표를 찍을 때 키키 키린님처럼 긍정적인 마침표를 스스로 찍을 수 있을만큼 준비된 죽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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