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나이 25.9세. 성별은 여자. 나는 대한민국의 취준생이다.

장엄하기까지 한 첫줄에 비해 나는 구직활동을 짝사랑 열병 앓듯 절절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어딘가 떨어졌다고 해도 첫사랑에 실패했을 때만큼 가슴이 시큰시큰한 것도 아니다. 즉, 아직 엄청나게 심각하진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글도 끄적대는 거겠지? 하지만 수없이 많은 다른 취준생들과 얼추 비슷하게 생활 패턴을 최대한 단순화 시키고 스토아학파 뺨치는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지내면서 나는 그간 ‘취업만 하면... 취업만 뽀개면...’ 이런 생각을 제법 자주 했더랬다. 그런 일말의 희망조차 없다면 이 무료하고 단조로운 그러나 몹시 힘겨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겠는가?

 

  그랬던 나는 지금 완전히 얼얼한 기분이다. 초딩때 피구공으로 얼굴 정면을 얻어맞았을 때보다 훨씬 더 얼얼하다. 그 땐 어디선가 공이 날아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 그야말로 나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고 심지어 ‘너한테 얻어맞을 일은 없어.’라는 자신만만한 마음마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얻어맞았다. 그래, 지금 내 심경을 좀 더 말하자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럭비 시합장에 발을 들여 놨다가 누군가의 입술에 터치다운을 당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처음에는 사실 이 책을 읽는 것이 굉장히 내키지 않았다. 제목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 때문이었겠지. 몇 장 넘어가지 못하고 덮여 다시는 펼쳐지지 않는 책들과 이 책이 운명을 달리한 이유는 저자가 서문에 친절하게 이 책은 ‘성공학’이나 ‘처세술’에 관한 책이나 ‘자기수련’에 관한 책이 아님을 언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재미와 휴식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다.

요즘 휴식과 여유를 이야기한다면서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도를 닦는 선승이나 가능한 명상과 같은

자기수련 기술을 늘어놓는 책들이 너무 많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 종류의 책들이 가장 싫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 하고 도저히 따라 하기 힘든 ‘자기 비우기’를 강조하는 글들은

우리를 더욱 좌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미국식 성공학, 처세술 강좌로 여겨진다면 더더욱 곤란하다.

사실 ‘~을 위한 00가지 기술’ ‘성공하는 사람은 .......’ 등과 같은 미국식 처세서를 읽고 나면 매번 허탈하다.

사전에서 좋은 단어들을 모두 골라놓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좋은 이야기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의 의미가 불명확한데 성공하면 무엇 하겠는가?

성공을 즐길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성공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살기 싫은 사람에게 마약을 투입하는 것과 같다.(21-22)

 

 

 

 

 

 책장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와 같은 솔직한 저자의 고백을 읽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저자가 나에게 뭐가 됐든 정서적 위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休에 대해 인색한지에 관한 이유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배울 수 있었다. 책표지의 반쯤은 딴따라같은 모습과 달리 저자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그의 논리를 펼치는 데 전공을 십분 활용했다. 그로인해 나는 그가 열정적으로 (거의 300페이지에 가까운 책 전체에서) 잘못된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아주 쉽게 우리 엄마를 보았고, 또 나를 보았다.

 

 저자는 정곡을 찔렀다. 나는 休에 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나에게 노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그 방법을 말해준 바는 더더욱 없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논다는 말은 욕이나 다름없다. 그럼 나는 왜 대체 노는 것에 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 걸까? 이건 우리 엄마 탓이다. 그럼 엄마가 나쁜 사람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엄마의 엄마 탓이고 그 엄마의 엄마 탓이기도 하다. 결국 지저귀는 새를 두고 노래한다고 하지 않고 운다고 했던, 이제껏 신명나게 놀아보지 못한 역사적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한 술 더 떠 편파적 행복론마저 팽배했다. 그간 우리가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상상하는 장면은 책에 따르면 결과로서의 행복론에 가깝다. 이 밖에도 책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읽으면 대부분 공감의 고개짓을 연방 끄덕거릴 것 같다.

 

 

 

 

 

 결론적으로 처음에 나는 충격을 먹었고 그 뒤로는 화가 났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고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되면,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 때는 졸업을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냥 열심히 참으면서 이 시간을 견디면 ‘그래, 너 참느라 그 동안 애 많이 썼다.’ 이러면서 찾아오는 건 줄 알았다. 근데 에나콩콩. 하나도 안 그랬다. 굳이 이 중에 꼽자면 나는 초등학생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힘든 때 같다. 역설적으로 나의 자제력과 인내가 더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더 불행해져만 갔다. 어릴 때 즐기던 소소한 취미들도 사라져갔다. 나는 이제 뭘 해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었고 깨달았고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해 봤고 내가 원하는 성공에 대해서도 어스름 한 초안이나마 답을 찾았고 정말 행복해지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돈 많이 벌고 남들한테 자랑하기 좋은 직업을 갖는 것, 직업 그 자체로서의 직업을 갖는 것에 혈안 되지 말고 내가 원하는 인생 전체와 조화되는 직업을 찾기로 했다. 직업 하나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렇게 찾기 힘들었던 ‘좋은 직업’이 삶 전체라는 큰 그림을 바탕에 깔아두고 찾으니 의외로 쉽게 보였다. 그리고 크고 자극적인 것에서만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일상에서 내가 몰두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찾을 것이다. 나는 이제 무작정 독서실에 틀어박혀 사는 인생 말고, 하기 싫은 일을 얼마간 견뎠으면 그 이상의 즐거움을 나에게 주는 그런 인생을 살기로 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언제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한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중략) 착각하지 말자.

인내는 쓰지만 그 결과가 달콤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많은 돈을 벌면 행복해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행복과 재미는 그렇게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중략)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나중에도 절대 행복하지 않다.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한 법이다.

성공해서 나중에 행복해 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303)

 

 

 

 

 

 

 

 

 

 

 

 

 

 

 

지금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어 혼란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아래의 질문 두가지를 하고 싶다.

 

 

 

* 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긴 했나?

 

* 하루하루가 과연 즐겁기는 한가?

  하루에 도대체 몇 시간이나 행복한 느낌으로 사나? (8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