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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상의 공포

(「아이를 찾습니다」,『오직 두 사람』에서)

 

 

 

어느날, 세살배기 성민이가 사라졌다.

아이가 사라질 때 아내는 화장품을 보고 있었다. 남편은 핸드폰 판매원의 말에 혹해있었다.

아무도 아이가 사라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이는 사라지고 말았다.

 

부부는 아이를 찾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한다. 아파트에서 더 작은 아파트로, 끝내 곰팡내나는 원룸으로 전락한다. 아내는 그동안 미쳐버렸다. 아이 때문에 미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미친 것이어야했다. 적어도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래야만 아이가 돌아오면, 아내는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라는 희망에 인생의 마지막 힘을 쥐어짤 수 있다.

 

아이가 사라질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는 거짓말처럼 한 통의 전화로 돌아왔다. 11년 만이다.

그 한 통의 전화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아내는 여전히 미쳐있고, 아이는 이전에 쓰던 컴퓨터와 침대를 사달라고 한다. 남편에게는 돈이 없다. 학교에서 아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잠재적 사고요인으로 판단된다. 남편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학부모의 역할이 버겁기만 하다. 아이에게는 유괴범이 지어준 이름이 익숙하다. 자기를 키운 사람이 유괴범이 맞냐고 묻는다. 당신이 내 아버지인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남편은 유전자 검사를 했다고 한다. 아이는 그게 뭐냐고 묻는다. 사실 남편도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걸 믿어야하는데, 반드시 믿어야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는가" 

 

아내는 죽었다. 남편은 시골로 내려가 컨테이너 집을 개조해 농사를 지어야했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두 번째 아이가 사라졌을 때 이 남자의 인생은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의 존재란, 그리고 관계란 어떻게 맺어지는 것인가. 남편이 아이와 자신의 연결을 확신케하는 유전자 검사. 유전자 염기서열이 99퍼센트 일치하는 아이를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 아무런 반전을 주지 못했다. 단지 염기서열이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소기의 목적만 달성했다. 마치 상상의 룰로 만들어진 컴퓨터 게임의 스테이지를 통과하듯이. 왜 그들은 결국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어머니가 될 수 없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우리의 사회는 상상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인류는 너와 나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전지구를 정복했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의 상상력은 도저히 그들을 한데 묶을 수 없다. 우리가 학습하는 보이지 않는 상상력의 결과물. 이 상상은 천천히 학습되어가기 때문이다. 남편은 학부모의 역할을 상상할 수 없다.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모든 것이 바뀐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비극은 그곳에서 시작한다. 아버지는 아버지이고 어머니는 어머니, 유괴범은 유괴범이라고 정해진 상상의 결과물은 의미가 없다. 냉엄한 현실에서는 아버지야말로 유괴범이고, 유괴범이 그의 어머니였다. 넘어설 수 없는 상상력은 결국 그들을 다시 갈라놓는다.

  유괴범이 뒤틀어버린 것은 모두의 상상력이고,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신파없이 펼쳐지는 인간의 인식과, 그들의 존재조건에 대해 질문한다. 마지막 주인공이 어루만지는 아이는 그 질문의 힌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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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살고 싶다 - 김경주의 인간극장
김경주 지음, 신준익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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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도,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어날랐다.

요즘에는 이따금씩 이 책을 생각한다.


"종점까지 환승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다는 규칙이 창밖을 보는 핀을 핑 눈물돌게 하곤 했다."

(p.74)


이 책의 모든 사람들에겐 인생을 번복할 기회가 없다. 6,665만원의 가계부채, 11.3%의 실업률, 137만 명의 독거노인의 숫자보다 종점에 이를 때까지 버스에서 내릴 수 없다는 것. 한 번 입은 슈트를 더이상 벗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나로 하여금 슬픈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내가 하는 일을 다시는 번복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


좋은 책이었다. 김경주의 유려한 말투가 좋았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좋았다. 그 사람들이 놓치지 않고자 하는 희망이 마음에 들었다. 쓸모있는 것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고자하는 숭고함에서는 약자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언덕길에서 굴러내려오는 바위를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번복할 수 없는 인생에서는 그저 견뎌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도 틈만나면 살고싶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사는 것일까. 그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도 어떤 삶이 제대로 된 삶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너무 희망차거나 절망적이다. 이책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좋은 질문을 던져주고 떠났다. 요즘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한다. 책이란 결국 그런 것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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