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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구석을 미리 마련해놓으면 반드시 피할 구석으로 달아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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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시골의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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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버지가 쿠웨이트 건설노동자로 일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이 더운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 때 아버지와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국제 우편이었다. 전화도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국제 통화료가 너무 비싸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게 편지가 오면 답장을 써서 일반봉투가 아닌 국제 우편 전용 봉투에 넣어 우체국까지 가야 했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편지를 부치면 2주 정도 걸렸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은 이럴 일이 있다. 글을 써도 이 메일로 보내면 바로 간다. 국제 전화도 무료로 할 수 있는 앱들이 많이 나와 있다. 어느 때 보다 사람들과 편하고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매체를 통해 이제 자신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어느 때 보다 사람들간의 소통의 혁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이런 매개체의 발달로 인해 더 많이 소통하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을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말이 되었다.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가 되어 한창 뉴스를 탄 적도 있다.

소통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와 방법들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들은 더욱더 외로움과 소외와 소통의 단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변신>은 여러 가지로 많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레고르 잠자라는 외판원이다. 잠자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어떤 책보다도 강렬하고 충격적이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p9)

 

 

벌레로 변한 잠자와 가족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가 이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책에서 1,2,3 으로 각각 표시되어 있다.

먼저 1장에서는 벌레로 변한 잠자와 그로 인해 걱정하는 가족들의 이야기와 잠자가 출근하지 않아 잠자의 집에 방문한 지배인과의 만남의 이야기가 전개 된다.

 

먼저 1장 초반부에서는 꿈과 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맨 처음 문장에서 잠자는 꿈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꿈이 아니었다”(p9)고 말하지만 잠자는 한숨 더 자서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잊어버린다면 어떨까”(p10)라고 생각한다. 잠자는 처음 이 현실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입부의 꿈 이야기를 보면 쉽게 장자의 나비의 꿈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 카프카는 장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카프카의 작품을 보면 꿈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사실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보통 꿈같은 현실이라고 하면 긍정적이고 이상적은 상황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악몽 같은 현실, 끔찍한 꿈보다 더한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먼저 그레고르 잠자가 처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잠자의 가족은 4명이다. 부모님과 여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부모는 빚을 지고 있다. 잠자는 부모가 빚을 진 사장인 가게에서 일을 한다. 잠자의 부모와 여동생은 경제적으로는 아주 무기력하다. 잠자 혼자 빚을 갚으며 생활을 책임지고 있다.

이 생활을 잠자는 굉장히 힘들어 하고 있다. 잠자는 어서 빚을 다 갚고 사표를 낼 날을 꿈꾸며 살고 있다.

 

부모님 때문에 꾹 참고 있으나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사표를 냈을 것이고” (p11)

 

가족들과의 관계도 그리 원만하지 않다. 처음 잠자가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때 가족들은 기뻐하고 행복한 빛을 띠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가족들은 잠자가 돈을 벌로 자신들은 돈을 쓰는 일에 익숙해졌다.

 

후일 그레고르가 돈을 많이 벌어, 온 식구의 낭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실제로 감당하기도 했건만 말이다. 사람들이 익숙해졌던 것이다. 식구들이나 그레고르 역시도, 식구들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기꺼이 가져다주었으나, 특별한 따뜻함은 더 이상 우러나오지 않았다.” (p39)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에 보면 류승범이 내뱉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

어느새 가족들의 잠자의 희생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자에게 가족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벌레가 된 이후 잠자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자신이 갑자기 벌레가 되었다. 이 얼마나 끔직한 현실인가? 이런 상황이라면 온통 자기 걱정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하지만 잠자는 그렇지 않았다. 벌레가 되었다는 현실에 대한 생각과 걱정은 별로 없다. 당장 일하러 가야 하는데 일 하러 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벌레가 된 현실보다는 일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무섭고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압박은 1장에서 시간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잠자는 기차 타야할 시간이 다섯시인데 자기가 여섯시 반에 일어난 것에 놀란다. 시계는 4시에 맞춰져 있었지만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 다음 기차가 7시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p11).

여기뿐만 아니라 1장 곳곳에는 기차 시간과 매장 여는 것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잠자가 시간을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잡혀 사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오늘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노동을 도울 수 있는 기기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빨래를 돕는 세탁기가 있고, 계산을 돕는 컴퓨터도 있다. 그러면 이제 인간들의 노동에 시간을 덜 쓰고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다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초등학생들도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기들이 발달할수록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더욱 바쁘게 살고 있다. 이 모순된 삶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시간에 대한 반복은 1장에서는 아직 잠자가 자신이 벌레로 처한 현실을 완전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잠자는 외판원이다.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다. 벌레의 모습을 하고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을 말이 되지 않는다. 잠자가 계속해서 시간을 생각하면서 출근하려고 생각하는 것은 잠자가 아직 벌레가 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해서이다. 2장에서는 벌레가 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는 잠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벌레가 된 잠자는 가족들과도 단절하게 된다. 이것은 소통의 단절을 통해 나타난다. 벨레는 가족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벌레가 된 잠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벌레의 소리이다.

 

그레고르는 대답하는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착오의 여지 없이 자기의 이전 목소리인데, 바닥에서 울려오는 듯, 억누를 길 없는 고통스러운 찍찍하는 소리가 섞여서 그 말들은 그야말로 첫 순간에만 분명하게 나올 뿐 뒤울림에 가서는 똑바로 들었는지 어쩐지 모르게끔 흐트러져 있었다.” (p13)

 

이 소통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집에 찾아온 지배인과의 대화이다. 자신의 결근을 알고 찾아온 지배인에게 잠자는 아주 장황하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이 설명이 책에서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말을 통해 지배인을 설득시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인은 잠자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지배인은 그레고르가 첫마디를 꺼날 때 벌써 몸을 돌려보렸고, 으쓱한 어깨 너머로, 입술을 위로 말아올린 채 그레고르를 돌아보았다.” (p27)

 

이 소통의 단절은 서로 간에 심각한 오해와 불화를 만든다. 지배인은 그냥 떠나버리고, 가족들은 잠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들의 오히려 잠자가 자신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저 애가 우리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다면

그렇기라도 한다면 저 애와 협상이라도 되려만. 그런데 저렇게” (p70)

 

가족들은 불통의 책임이 잠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말을 잠자가 알아듣지 못하게 때문에 문제가 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잠자는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말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소통이 안되는 것은 잠자의 문제가 아니라 잠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가족들 때문이다.

그런데 잠자와 가족들의 소통이 단절된 것은 단지 잠자가 벌레로 변신했기 때문이 아니다.

벌레가 된 잠자는 항상 가족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던 중 가족들의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재산이 조금이나마 아직 남아 있었고 잠자가 벌어온 돈은 조금씩 저축이 되고 있었다. 이 돈을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면 힘겹고 불행한 외판원의 삶을 벗어나는 것이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잠자는 벌레가 되기 전에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잠자가 가족들의 경제를 책임지는 위치였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전혀 가족들과 소통이 없었다. 잠자가 벌레가 되기 이 전부터 이미 소통의 단절은 있었다. 벌레가 된 현실을 통해 이 사실을 극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2장은 잠자가 벌레로 변한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가족들도 그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2장에서는 1장과는 달리 시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1장에서 시간은 잠자가 벌레가 된 후에도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회사에 출근하려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2장에서 시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이제는 포기하고 벌레가 된 현실을 인정하고 점차 적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더욱 잘 보여주는 것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2장은 잠자가 먹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차례 언급되어 있다.

잠자의 누이 동생은 음식이 든 접시를 잠자의 방에 넣어 놓는다.

 

문께에 와서야 그는 대체 무엇이 그를 거기로 유혹해 왔던가를 알아차렸으니, 그것은 무언가 먹을 수 있는 것의 냄새였다.”(p32)

 

벌레도 먹어야 한다. 잠자는 배고픔에 음식에 대한 강한 욕구를 드러낸다.

 

비록 소파 밑에서 기어나와 누이의 발밑에 몸을 던져 뭐든지 먹기 좋은 것을 달라고 청하고 싶은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으면서도” (p35)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게다가 잠자는 인간일 때 좋아하던 신선한 음식들은 멀리하고 예전에 거들떠 보지 않은 약간은 상한 음식을 정신없이 먹는다.

 

그는 어느새 다른 그 어느 음식보다 즉시 그리고 강렬하게 구미가 당기는 치즈를 탐욕스럽게 빨아 먹었다. 만족감에 눈물까지 흘리며 그는 치즈, 야채, 소스를 정신없이 잇달아 먹어치웠다. 반면 신선한 음식은 맛이 없었고, 냄새조차도 견딜 수 없었다.” (P36)

 

이제 잠자는 벌레가 된 자신의 삶에 완전히 적응했다. 벌레가 된 삶에 적응한다는 것은 이제 잠자 스스로는 살 수 없고 가족들의 힘을 의지해야만 사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레가 되기 전 가족들이 잠자에게 기생했다면 이제는 잠자가 가족에게 기생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제 그레고르는 날마다 음식을 받아먹었다” (p37)

 

음식은 가족과 잠자의 역할이 바뀐 것을 보여준다. 이제 잠자가 가족에 의존해야 한다. 처음 벌레가 된 잠자를 멀리하던 잠자의 어머니도 이제 잠자를 불행에 빠진 도와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레고르에게 가게 좀 해줘요. 그 애는 불쌍한 내 아들이란 말예요!”(p44)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잠자는 벌레가 된 자신보다 가족들을 걱정하고 있다.

 

이야기가 이 돈을 벌어야 할 필연성에 미치면, 우선 언제나 그레고르는 문을 떠나 문 곁에 놓인 서늘한 가족 소파에 몸을 던졌다. 수치와 슬픔으로 몸이 뜨거웠지 때문이다” (p41)

 

이런 잠자와 가족들간의 관계는 3장에서 점차 바뀌게 된다.

 

2장에서 주목해서 봐야하는 것은 잠자의 방이 보여주는 공간의 변화이다. 벌레로 변한 잠자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못한다. 방안에서 벽이며 천정을 돌아다닌다. 이것을 알게된 누이동생은 잠자의 방에 있는 가구를 치우려고 한다. 오빠가 좀 더 편하게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배려이다.

하지만 이 배려는 분명한 선을 보여준다. 잠자는 방안에서만 자유롭게 다녀야 한다. 방 밖으로 나와서는 안된다. 잠자는 다른 공간들과도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잠자의 방에서 가구를 빼는 것은 어머니와 마찰을 일으킨다. 어머니 생각에 가구를 다 빼는 것은 잠자가 인간이 다시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가구를 치워버림으로써 그 애가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아주 저버리고 그를 함부로 내팽개쳐 두었다고 시위라도 하는 것 같지 않겠니?” (p47)

 

이 공간의 변화는 잠자에게도 갈등의 요소가 된다. 잠자는 이제 벌레로서의 삶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잠자에게 가구가 다 빠지고 방이 넓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잠자는 이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면서 저항한다.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 잠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가 자시의 방을 아주 비울 것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달리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사방으로 방행을 받지 않도 다닐 수 있다해도 정말로 그가 대를 물려온 가구들로 아득하게 꾸며진 이 따뜻한 방이 그의 사람으로서의 과거를 동시에, 재빨리, 모조리 잊어버리면서 기어다닐 동굴로 변하도록 내버려두고 싶겠는가?”

 

하지만 잠자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방은 말끔하게 치워진다. 가구 때문에 좁았던 잠자의 방이 넓어지긴 했지만 잠자의 공간은 자기 방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계 지워졌다.

 

그들은 그의 방을 말끔히 치워버렸다. 그가 아끼던 모든 것을 그로부터 앗아갔다

 

잠자는 이처럼 점차 점차 무기력해진다. 반면에 가족들은 오히려 활기를 띠는 것을 볼 수 있다. 잠자가 벌레가 되기 전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삶 자체가 무기력했다. 하지만 잠자가 벌레가 된 가족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버지의 변화이다. 중늙은이처럼 집안에만 있던 아버지가 은행의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외모에 변화가 생긴다.

잠자의 몰락이 가족들을 일어나게 만들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바로 그 사람이란 말인가?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꼿꼿이 똑바로 서 있다

 

3장에서는 2장에서 뭔가 새롭게 일어나려고 하는 가족들이 지쳐가고 잠자가 완전히 몰락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가족들이 나름 변화되고 열심히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생활에 가족들은 점차 지쳐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들의 생활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식구들은 그 극단까지 충족시키고 있었으나, 아버지는 하급 관리들에게 아침 식사를 날아다 주고, 어머니는 모르는 사람들의 속옷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으며, 누이동생은 고객들의 명령에 따라 판매대 뒤에서 이리저리 뛰고 있었으나, 식구들의 힘은 이미 이 이상은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구들은 잠자를 돌보는 것을 점차 힘겨워 한다. 잠자의 방은 전혀 청소가 되지 않고, 잠자에게 주던 음식도 이제 무신경하게 던져주듯 하게 된다. 가족들의 힘겨운 생활은 잠자를 더욱더 가족들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소외가 더욱 심화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또 공간의 변화이다. 3장에서 잠자의 공간은 더욱더 축소가 된다. 가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집에 세 사람의 하숙인을 들인다. 집에는 더욱 많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집에 있는 안 쓰는 가구들을 잠자의 방에 들여다 놓는다. 방은 못쓰는 가구들로 가득 차게 되었고, 잠자의 공간은 자신의 방에서도 더욱 축소되고 말았다.

2장에서는 그래도 가족들이 잠자를 신경 썼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잠자의 방에서 가구를 치우는 일이었다. 이제 3장에서는 가족들은 이런 여유가 전혀 없다.

 

이 닳도록 일하고 지쳐빠진 식구들 중에서 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이상으로 그레고르 걱정을 해줄 시간이 있겠는가?”

 

이런 현실에 잠자는 분노한다. 벌레가 된 초장기에 벌레가 된 자신의 현실보다는 가족들 걱정을 더 했던 잠자가 이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잘 돌봐주지 않는 데 분노만 가득 찼고, 자기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상상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면 찬광 안에 들어가, 거기서, 배야 안 고프지만, 자기 입에 맞는 것을 먹을지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잠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잠자는 더욱 무기력해진다. 이 무기력은 그냥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넘어 삶에 대한 욕구 자체가 사라지게 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음식이다. 2장에서 음식은 벌레가 된 잠자가 여전히 삶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이제 3장에서는 이 음식에 대한 욕구가 점차 사라진다.

그레고르는 이제 전혀 아무것도 먹지 않다시피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런 그레고르의 변화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한다.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도 너무 바쁘고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지되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국을 맞는다. 세 명의 하숙인들이 잠자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때문에 하숙을 그만 두기 때문이다. 이 일은 가족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로 잠자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깨지게 된다. 이제 잠자는 단순히 자신들에게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 괴물 앞에서 내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지 않겠어요” (p69)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p70).

 

잠자는 이제 아무런 희망이 없다. 세상에서 소외된 긋을 넘어 가족들과의 관계로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소통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모양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사라졌다. 이제 잠자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가 없어져 버러야 한다는 데 대한 그이 생각은 아마도 누이동생의 그것보다 한결 더 단호했다

 

결국 잠자는 음식을 먹지 않고 죽게 된다. 죽은 다음 잠자의 모습을 아주 비참하다.

 

좀 보세요, 그가 얼마나 비쩍 말랐는지. 그는 벌써 퍽이나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잔아요. 식사가 들어가도 그대로 되나왔지요. 실제로 그레고르의 몸은 아주 납작하게 메말라 있었다.” (p74)

 

그레고르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한 것이 있다. 잠자는 벌레가 되기전 가족들의 희망이었다. 가족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는 잠자가 사라지자 가족들에게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이제 유지하기 힘든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해서 돈을 아낄 수 있다.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상황을 정리해 보니 아주 나쁘기만 하지는 않다. 그러저럭 살아갈 모양은 되었다.

이제 가족들은 새로운 삶에 희망을 가지고 아주 오랜만에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외출을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목적지에 이르러 딸이 제일 먼저 일어서며 그녀의 젊은 몸을 쭉 뻗었을 때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좋은 계획의 확증처럼 비쳤다.”

 

책의 이 마지막 문장만 보면 이 책은 해피엔딩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겉모양을 위해 철저하게 소외되고 마침내 끔찍한 결말을 맺은 한 사람이 있다. 그것도 한 가족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가지는 근본적인 소외와 절망을 잠자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잠자가 벌레가 되기 전에는 잠자가 무기력한 세 명의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그런데 왜 지금은 가족들이 무기력한 잠자를 먹여 살리지 못하는가이다. 왜 가족들은 잠자에게 기생해도 잠자는 가족들에게 기생할 수 없는가이다.

이것이 단지 잠자 가족만의 이야기인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렇지 않은가?

다수를 향한 소수의 희생은 고귀하다고 칭송을 받는다. 반면에 약한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나타내기 위해 조금의 단체 행동이라고 하려고 하면 불법이니, 다수에게 손해를 주니 하면서 몰아붙이기 일쑤이다.

다수는 아주 조금만 손해를 보면 된다. 하지만 힘이 없는 소수는 모든 것을 다 잃어야 한다. 이런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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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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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른다이 흐름을 어떤 사람들은 발전으로 보고어떤 사람들은 순환으로 본다.

그냥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한 케이블 티브이에서 하는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이제 겨우 20년 전 이야기인데도 그때에 비해 지금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은 순환처럼 보인다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사는 모양을 보면 외형 빼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아웅다웅하고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은 크게 보면 샌드위치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책의 처음과 마지막에 책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가 나타나고 그 안에 이야기가 풀어지는 형식이다.

책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주인공 박민우가 강연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이 강연의 주제는 구도심지 개발과 도시 디자인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잔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는 문득 우리가 언제부터 마당에 잔디를 깔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원래 우리네 마당은 마사토를 깔거나 그냥 흙마당이었다그리고 마당가 담장 밑에 자그만한 하단을 만들어 채송화봉숭아과꽃수국 등을 심거나 텃밭을 만들었다잔디는 사실 우린 기후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묘지에 떼를 입히는 용도로나 사용되지 않았던가그런데 언젠가부터 마당에 잔디가 깔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중산층 정원의 상징이 된 것이다.

 

앞에 나오는 구도심지 개발과 도시 디자인과 마지막에 나오는 잔디가 서로 연결된다.

도심지 개발이라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덮고 보기에 좋은 새 건물을 세우는 과정이다잔디를 심는 것도 지저분해 보이는 흙 마당 위에 보기에 좋은 잔디를 까는 과정이다이렇게 바뀌는 것을 성공과 발전이라고 하고 이 모습을 꿈꾸며 사람들은 살아갔다.

이 책은 이런 세상의 커다란 흐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중심인물은 4명이다.

이 중 두 명은 과거를 대표하고나머지 두 명은 현재를 대표한다과거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났고 현재를 함께 살고 있다.

이 4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떠나고자 했었고하고 있다.

과거를 대표하는 박민우와 차순아는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달골이라는 판자촌을 떠나기를 위해 노력했다이들이 달골을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공부였다.

 

그는 달골을 벗어나고 싶다고 몇 번이나 되뇌곤 했다그러기위해서는 공부밖에는 길이 없다고.

 

현재를 대표하는 정우희와 김민우도 현재의 힘든 삶을 벗어나고자 무진장 애를 쓴다정우희는 연극 연출과 대본을 쓰면서 밤새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김민우는 잠시 쉴 겨를도 없이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하면서 산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노력해도 이 갑갑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어느새 처음 태어나면서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녀석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요샛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어지간해서는 뭘 하든 한다는 것이다무턱대고 개판치지만 않는다면 자신의 길에서 크게 밀려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꿈도 사랑도 결혼도 다 포기하며 살아간다.

 

다들 포기하고 산대요.

 

현재를 떠나고자 하는 점에서 이 네 사람은 다 같은 쪽에 있다하지만 이 탈출에 성공했느냐를 놓고 보면 나뉘게 된다박민우 vs 차은아정우희김민우 이다.

박민우는 탈출에 성공했다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들어갔고좋은 집안의 여자와 결혼을 하고서 유학를 다녀온 후 건축 분야에서 일정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면 박민우와 같은 동네에 살았던 차은아는 떠나는 것에 실패했다공부가 유일한 탈출구였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달골에서 기반을 잡고 있던 재명이 형과 살림 비슷한 것을 차리게 된다.

현재를 대표하는 김민우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고정우희는 여전히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바둥거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정말 박민우는 탈출에 성공했을까이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컴퓨터에 지도를 띄어놓고 새로운 주택 부지를 찾으면 맞춤한 곳에 집 짓는 상상을 하는게 요즘의 내 유일한 낙이다.

그런데 그 집에는 함께할 가족이 없다.

나는 길 한 복판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상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과거의 현실에서 탈출했던 박민우의 오늘은 자신이 탈출하고자 했던 달골의 생활과 비교해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집은 있지만 가족이 없고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박민우의 모습은 집은 없어도 가족은 있었고무엇을 해야 하는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던 달골의 생활과 비교해서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환경의 변화가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이것은 정우희가 내뱉는 자조적인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명한 극작가나 연출가가 되면 그대는 사는 게 좀 나아질까선배들을 보면 딱히 나아지는 것 갖지도 않고 막막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더라

 

정우희가 현실의 고달픈 현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연극계에서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하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게 되더라도 현재와 별 달라질 것이 없다.

결국 이 책은 남루한 현실에 탈출하고자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과 탈출은 했지만 여전히 남루한 현실에 붙잡혀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냥 이 팍팍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가이 책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강아지풀이라는 잡초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강아지풀에 대한 언급은 두 번 나온다한 번은 정우희가 병으로 죽은 차은아의 집에 물품을 정리하러 갔을 때이다.

 

그녀의 집에서 몇 가지 물품을 챙겨들고 나오는데 현관문 밖 복도에 내놓은 빈 화분에 강아지풀이 수북이 자라나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아니 오랫동안 방치되어 억새풀처럼 누렇게 빛이 바랜 상태였다나는 그녀가 일부러 강아지 풀 따위를 화분에 심지 않았을 거라고씨앗이 날려와 돋아난거겠지하고 단정 지으면서도 이렇게 무성해지려면 물을 줬을텐데싶었다.

 

다른 한 번은 박민우가 예전에 살던 집에 잔디를 깔았던 때를 회상할 때이다.

 

어느 날 마당에 서서 잔디를 걷어내고 마사토를 깔아버릴까궁리를 하다가 마당가에 심어놓은 꽃들 사이에서 몇 줄기 삐죽이 올라와 있는 솜털 모양의 익숙한 풀들을 발겨했다일하는 아줌마와 아내가 미처 뽑아내지 못한 것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강아지풀이었다나는 그것을 뽑아내려다가 내버려두었다일부러 심어놓은 화초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아지풀은 꽃이나 잔디와 달리 누가 키우기 위해 일부러 심지 않는다모르는 사이 씨가 날아와 화분에마당 한구석에서 자라난다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자라난 강아지풀은 일부러 심어놓은 화초들과 어우러져도 꽤 어울린다.

우리 인생에도 강아지풀과 같은 순간이나사람일들이 있을 것이다내가 노력해서 얻으려고 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내 삶의 주변에 들어와 있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

처음 일부러 화분에 심지는 않았을지라도 이 작고 소중한 것들을 물을 주고 키워나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 된다.

길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고개를 들어 저 멀리만 보지 말고 내 주변에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poorman0/22054498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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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념을 교묘하게 비틀면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도시와 정글의 관계, 광장과 밀실의 관계

이 책의 주인공 김영수는 정리해고된 직장인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부업을 전전하다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직을 한다. 맡은 일은 고릴라 담당.
그런데 여기서 고릴라 담당이라고 하는 것은 고릴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고릴라가 되는 일이다.
고릴라 우리에 들어가 고릴라가 되어 생활을 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고릴라 우리에서 직장생활을 한다. 관람객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포효도 해야 하고 성과급을 얻기 위해 12미터의 철제 구조물에도 올라가야 한다. 
고릴라 우리는 더 이상 정글의 축소판이 아니다. 정글같은 도시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던 중 여행사 직원의 소개로 실제 정글로 간 동물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시의 연장이 되어 버린 가짜 정글이 아니라 진짜 정글로 간 사람들은 도시와 다른 정글의 자유를 만끽한다.
'정글같은 도시'라고 이야기 할 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글의 이미지는 양육강식의 생존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치열한 삶의 싸움터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 관계를 살짝 비틀고 있다. 
도시는 이미 치열한 경쟁과 양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 
정글같은 도시가 아니라 도시 그 자체가 정글이다. 아니 정글이 가지고 있는 자유와 여유도 없는 정글이상이다.
이 책은 이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또 이 책은 광장과 밀실을 이야기 한다.
주인공의 고릴라 동료중에는 배신당하고 버려진 남파 간첩 만딩고가 있다.
만딩고는 북한은 허위로 가득찬 과장이고, 남한은 욕망으로 가득찬 밀실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 광장과 밀실의 이야기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역시 그 이미지를 비틀고 있다. 
아무리 넓은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도 그 광장이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전체로서의 사람만 보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지 못한다면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아무리 민주주의와 자유를 외친다고 해도 자본에 묶여 돈의 노예로 살아간다면 그곳 역시 광장이 아니라 밀실이다. 
광장이 사라진 사회, 욕망의 밀실로 가득찬 사회. 
이곳에는 평범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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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아 마땅한 아이는 없다 - 아동학대와 방임이 없는 공동체를 위한 길 찾기
진 하더 지음, 배성민 옮김 / 대장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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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아 마땅한 아이는 없다>

진 하더

 

아동 학대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낯설다. 유교적인 전통의 영향 때문에 가정 내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동 학대도 그냥 그 집의 문제로 생각하기가 쉽다.

교회에 이 쪽 분야에서 섬기시는 분이 계셔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상황이 발생하면 새벽 1시고 2시고 출동하는데 가서 보면 정말 끔찍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떻게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런 아동 학대 문제가 꽤 많고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와 교회의 책임에 대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아동 학대와 아동 방임의 오해와 개념을 설명하고 교회와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또 이 책의 장점은 한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장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실제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적용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도 나왔듯이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 중에 하나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하여서는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하고 부모가 되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냥 부모가 되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른 책 그냥 자식을 기른다.

물론 급한 마음에 책도 사다 읽고, 좋은 티브이 프로도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자녀를 잘 양육하는 문제는 큰 숙제이다.

이런 면에서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즈음 보면 결혼 예비 학교,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같은 것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예비 부모 학교나, 일반 부모 학교 등을 개설해서 어떻게 신앙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또한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이웃이나 여러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나 방임에 대하여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교회가 역할을 책임감을 가지고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는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아동학대나 방임은 심각한 문제이고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사회문제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 모든 사회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 더 우선이다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면에서 지역사회와 교회와의 긴밀한 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을 감당하는 지역의 사회단체들이 교회를 잘 이용하면 좋겠다. 교회가 먼저 이런 사업들을 벌이기는 쉽지 않지만 사회단체에 협조할 수 있는 물적 인적 자원은 사회 어떤 곳보다 풍부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위한 장소 제공이나, 재정 지원, 자원 봉사자 등을 교회는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사회단체가 잘 이용하여 교회와 좋은 협력 관계를 맺어 가면 여러 가지 면에서 효과적인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책이 일반인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대상하는 책이다 보니 성경적인 접근이 있다. 성경이 이 세상의 모든 주제를 위한 책이 아니다 보니 특정한 주제를 놓고서 성경을 적용하다 보면 좀 무리한 해석이나 적용들을 하게 된다.

이 책도 이런 면이 좀 보인다. 무리하게 아동이라는 주제로 성경을 끼워 맞추지 않더라도 아동학대나 방임이 비성경적인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냥 성경에서 아동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있다는 정도와 사람을 학대하고 방임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성경의 이야기만 했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또 아쉬운 점은 이 책이 번역서라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여러 가지 통계나 사례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 통계나 사례가 아니니 공감하는 정도가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책 부록에서 이 주제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관이나 여러 사이트를 많이 소개한 것은 매우 좋았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범죄다. 더욱이 저항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학대는 더욱 큰 범죄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교회가 아동학대와 방임에 대하여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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