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쓸쓸한 그림 이야기 - 경계의 화가들을 찾아서
안민영 지음 / 빨간소금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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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파란 글씨로 눈에 보일 듯 말 듯 쓰인 '경계의 화가들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경계의 화가들이란 말에 세로로 나열된 이름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아는 이름이라곤 이쾌대, 이응노 정도... 궁금증이 생겼고,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가 미술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만났던, 숨겨진 친구를 소개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미술을 잘 모르는 나에게만 낯설었을 뿐 유명한 화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만이 아니라 그네들이 살았던 치열한 삶, 그리고 그에 영향을 끼친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현대사의 여러 장면들을 찬찬히 설명해 주는 문장에서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신순남의 '진혼제' 연작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고, 김용준의 '두꺼비 연적 삽화'는 내게도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변월룡이 북한의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의 작은 머루와 다래 그림에서 사람 사이의 애틋함이 묻어났고, 하정웅과 도미야마로부터 지지와 연대의 힘을 배웠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구절이 가슴 한편에 묵직한 무게감을 갖고 자리 잡았다.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들, 특히 분단과 전쟁의 가운데서 인생이 크게 휘둘렸지만 미술로 자신의 삶을 증거 하며 살아낸 그 시절 화가들의 삶에 조금 다가가 본다. 

 

실려 있는 그림 도판이 좀 더 컸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그 아쉬움만큼 실제로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월북했거나 해외에서 활동한 교포 화가들이 대다수라 그림들을 볼 수 없겠거니 했는데, 몇몇 화가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는 글에 설레었다. 광주시립미술관, 영암의 하정웅미술관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이 책을 들고 가보고 싶다. 미술관으로 향하게 만드는 미술책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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