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범죄 열림원 이삭줍기 19
D.A.F. 사드 지음, 오영주 옮김 / 열림원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소돔120>의 지독한 성애묘사 때문에,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포르노 작가 아냐?"하고 착각하게 할 정도의 논란이 많은 작가 사드의 단편집이 번역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 읽게 되었다. 

 나는 1993년판 이형식이 번역한 작품집을 읽었다. 현재 절판되고 이 책이 2006년에 다시 번역되어 나왔는 것 같은데....그렇다면 똑같이 다섯 편 다시 번역해서 출판하지, 또 두 편은 왜 줄여서 번역했는지...우선 난 그게 불만이었다.(가뜩이나 오해를 몰고다니는 사나이 사드의 작품을. 차라리 가감없이 다 보여주면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할 텐데....)  

제목도 1993년판 그대로 <사랑의 죄악>이 나은 것 같다. 미덕과 악의 사이에 놓여있는 인간의 양면성을 사드가 얘기하고자 한 듯한데, '범죄'라.... 그보다는 '죄악'이 낫다. 신앙의 문제도 나오고 하니. 

옮긴이는 서두에서 "인간에게 비정하기 그지없는 운명의 잔혹한 작위와 사회적 통념 혹은 관습에 대한 반항"이 이 단편집의 골격을 이룬다고 했는데....글쎄...난 5편에 나오는 근친상간, 성도착, 살인, 미덕의 화신들이 겪는 운명의 박해를 접하고 나서, 사드의 작품을 단순히 '반항'이라든가  '사회 비판'으로만 개괄하는 것이....자꾸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사드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비판, 관습을 비판하는 내용은 물론 간간이 나온다. 이를테면, 

"나는 파산했으며 더 이상 명예라는 것을 가질 수 없어요. 내가 감옥에 갇히고 악당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악당만이 결국 자유로운 이상, 억압 속에서 움츠리고 살며 악당일 것이라는 의심을 받느니보다는 인간의 모든 기본권을 향유하며 실제로 악당이 되는 것이 훨씬 좋지 않겠소?"(팍스랑즈, 혹은 야망의 죄) -  사촌오빠와 사랑하던 사이이던 팍스랑즈가 한 순간의 허영심에 사로잡혀 연인을 버리고 돈 많아보이는 프랑로와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는데, 알고보니 그 사내는 한국으로 치자면 무자비한 산적 두목이었다. 프랑로가 자신의 사연을 팍스랑즈에게 설명하는 가운데 나오는 대목이다.

"명예심이라는 것, 남자들에게 있어서는 그토록 존귀한 그 감정이 우리 여자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남자들 사이에서는 결투를 각오해야만 하는 모독 행위가 여자를 상대로 할 때는 여자가 오직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합법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추측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희생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의 생명을 천 번이라도 바치려 했던 사람에게 기만을 당한 것입니다."(플로르빌과 꾸르발, 혹은 숙명) - 아름다운 플로로빌이 16세에 연정을 바친 사내에게 임신하고 버림 당한 사연을 꾸르발에게 얘기하는 도중에 나온 대목이다. 

"별 재주나 자격없이 출세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세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깨달으실 거에요."(도르쥬빌, 혹은 미덕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사나이) - 관대한 인품을 지닌 도르쥬빌이 임신한 채 떠돌던 아리따운 여인을 도와주다 자신이 그 여자에게 사기당한 것을 알게되었을 때, 그 여자가 한 말이다.   

"남자에게 속해 있는 여자라는 존재는....."  프랑발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관습이 우리에게 예속시킨 일종의 개체인 것이오. 여자는 부드럽고 고분고분하며....행실이 단정해야지요. 물론 여자의 부정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인이 남편의 문란함을 모방한다고 한들 남편에게 무슨 상관이겠소. 다만 다른 남자가 자기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싫을 뿐이지요. 그밖의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니,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행복에 아무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남자의 생각이 그러했으므로 그에게 시집올 아가씨의 앞날에 장밋빛 행복이 그녀를 기다릴 리 없다는 사실은 넉넉히 짐작되는 바다.(으제니 드 프랑발) - 허우대가 멀쩡하다 못해 아주 잘생긴 희대의 미남 프랑발이 자신의 아리따운 딸을 자신의 성노예로 키워나가는 얘기이다. 그러한 프랑발의 여성관을 잘 압축시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사드의 서술은 은폐된 암흑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는 않았다. 마치 그래서 인간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미덕"의 문제라고 하는 것처럼. 예를 들면, 

프랑로는-이 사실은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자기의 서글픈 부인에게 얼마간의 평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가 편안히 쉬도록 내버려 두었다. 악당들의 영혼에도 약간의 착한 흔적이 있게 마련이며 미덕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큰 가치로 부각되는 법이기 때문에, 극도로 부패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덕에 경의를 표하는 경우는 허다한 것이다.(팍스랑즈)  

도르쥬빌은 몹시 심하게 앓고 나더니....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었으면서도 그의 아름다운 영혼을 형성하고 있던 선량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끝내 깨뜨리지 않았으며, 자기 생애의 치욕이며 자기를 죽게 한 유일한 원인인....그 가련한 여인을 향하여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열렬히 태우던 사랑의 불길을 끄지 못하였다.    오! 이 이야기를 읽으실 이들이여, 우리가 저버리는 순간 우리를 파멸로 이끌어 가는 그 신성한 도리를 우리 모두가 존중해야겠다는 절대적 의무감이,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우리들 속에 태동하기 바란다. 첫 제약을 깨뜨리는 순간 느끼는 회한에 제어되어 우리가 그 상태에서 스스로를 억제한다면, 그 미덕의 권리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도르쥬빌)  

사회에 통용되는 관념과 관습이 과연 옳은 것인가, 당시 기득권 세력들이 그만한 권한을 누릴 자격이 있는가, 당시 남자들에게 여자는 질투를 일으키거나 자신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존재도 되지 못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쾌락의 性적 대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주다가도, '미덕이라는 것이 순진하게 악에 당하는 순간 조차에서도 결국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미덕의 찬연함'이라는 서술을 하고 있어서....사드가 단순히 미덕을 부정했다거나 종교적 신앙심, 우아함, 관대함과 같은 인간의 여러 가지 덕성들을 거짓이라고 비판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으제니 드 프랑발>에서 성직자가 말하는 대목을 보면, 어떤 일을 두고서 죄냐 미덕이냐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프랑스 사회에서는 선이고 다른 곳에서는 악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근친상간이 합법적인 나라도 있지만, 단지 관습의 차이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하니, 절대 선이란 없다고 하는 것은 궤변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풍토의 사회적 관습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존재 양상과 관련된 한 국가적 양심이라는 것이 있으며, 자연이 그것에다가 우리의 의무를 깊이 새겨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지워버리려고 할 경우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서술을 보면, 분명 현행 관습과 사회적 법률이 불합리한 점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프랑발처럼 모두 허위라고 한다면, 인간이 근친상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도 허위가 되지 않겠는가? 인류 사회의 모든 관습과 도덕이 허위여서, 아버지가 딸을 취하고, 오빠가 누이를 취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취하고,  <쌍세르 백작부인 혹은 딸의 연적이 된 어머니>에서처럼 어머니가 딸의 연인을 취하려고 한다면.....기본적인 "사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되는데....사드는 성직자의 입을 빌어 분명 이런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답은 내리지 않고 문제를 던지기만 하지만. (<플로르빌과 꾸르발>의 작품을 보면, 플로르빌이 극단의 두 여인을 거쳐가게 되는데, 하나는 성모 마리아같은 여자이고 하나는 탕녀이다. 사드는 이 두 여인의 입을 빌어 선악의 문제에 대해서 공방을 벌이는 대목을 슬쩍 배치하고 있는데....근데....쉽게 정리되지는 않는다. 간혹 헷갈리는 대목도 있어서. 정말 사드가 미덕의 편에 손을 들어주고 있는지....확신이 안 선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읽혔다.)

일명 포르노 작가(^^;) 사드는 분명 "미덕"의 가치를 절실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5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이 작품집이 사드를 이해하는 데 그나마 좀 도움이 된다는 것은, 아마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간혹가다 소설 가운데 "꿈"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라든지 "애정"에 관한 자신의 개인적인 사견들이 (  )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데... 이를 테면,

("오! 내 사랑이여, 그대가 사랑하는 이 몸을 타락시키려 하지 마세요. 그러시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자기를 유혹하려는 연인에게 어느 날 다정다감한 여인이 그렇게 말하였다.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그대가 하신 말씀을 여기에 인용함을 허락해 주오. 그 말씀은 얼마 후 연인의 생명을 구출한 여인의 영혼을 너무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의 미덕이 한 자리를 확보해 준 역사의 성전에 그 감동적인 말씀 하나하나를 새겨 두고 싶소이다.) - 성애 묘사의 대가 사드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솔직히....나는 내심 놀랬었다. ^.* 

이런 것을 보면 사드가 단순히 性을 통한 사회비판, 인간비판을 얘기한 작가에 그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미덕은, 특히 당시에는, 설교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 쉬운데, '인간이니까 - 해야 한다." "성서에서 - 하라 하셨다" 등. 그러나 사드는 논란을 일으키는 인간의 죄악과 사회적 양상들을 보여주며 "미덕"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교를 통한 미덕에의 접근이 아니라 비판을 통한 미덕에의 접근같은...

그리고 사실 충격적인 것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모두 허우대가 멀쩡하다는 사실이다. 아니, 멀쩡하다 못해 아주 우아하고 품위있으며 남녀 모두 세상에 더할 나위없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팍스랑즈 아씨의 나이는 갓 열여섯이었고, 용모의 윤곽선마다 미덕이 넘쳐 흘러 낭만적이었고, 피부는 매우 희고 아름다운 푸른 눈에, 유연하고 날아갈 듯한 몸매 그리고 머리채 또한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기지는 성품만큼이나 부드러웠고, 어떠한 악행도 저지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마디로 우미의 여신들 손으로 치장된 천진스러움 그 자체였다."(팍스랑즈, 혹은 야망의 죄) - 그런데 이런 여자가 결국 돈 때문에 어릴 때부터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던 이를 버리고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한 프랑로에게 속아 시체말로 인생 망치게 된다.

"플로르빌 아씨의 나이는 서른 여섯인데, 외양은 스물여덟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자태만큼 서글서글하고 귀여운 모습은 아마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윤곽이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하고 살결은 백합꽃 같으며, 그녀의 젖은 듯한 입술은 무척이나 아름다우며, 봄날의 장미를 연상시킵니다."(플로르빌과 꾸르발, 혹은 숙명) - 이런 플로로빌이 오빠와 근친상간을 해 아들을 낳게 되고, 또 그 아들이 플로로빌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연정을 품었으나 자신의 손으로 그러한 아들을 죽이게 되고, 자신의 생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바람에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당하게 하고, 그 많은 사연을 거치고 안식처로 택한 남자가 자기 아버지라는 잔혹한 숙명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플로로빌은 이 모든 사실을 모르고 모두 겪게 되는 운명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젊은 도르쥬빌은 몸매의 우아함에서만은 별로 행운을 타고 나지 못하였다. 그에게 불쾌감을 줄 만한 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 중 흔히 '미남'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신체적 특성은 구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도르쥬빌이 그러한 측면에서 갖지 못한 특혜를 자연은 다른 측면에서 보상해 주었다. 천재보다 더욱 값진 훌륭한 기지, 놀랄만큼 섬세한 영혼, 솔직하고 신의 있으며 진지한 성품 등, 한 마디로 선량하고 인정많은 사나이로서 필수적인 모든 장점들을 도르쥬빌은 고루 갖추고 있었다.(도르쥬빌, 혹은 미덕 때문에 죄를 짓게 된 사나이) - 이런 도르쥬빌은 철저하게 가짜 쎄실에게 농락당하게 된다.

*아....여담이지만, 쪼금 짜증났다. 사디즘을 알린 것이 <소돔120일> 때문인 줄 알았으나, 불문학 전공자에게 들으니 <두 자매 이야기>때문이라 한다. 한국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다. 줄거리를 들어보니 앞으로도 번역 안 될 것 같았다. 사드 연표를 보니 쥐스띤느와 줄리에뜨? 이런 작품이 있던데, 아마 원래 제목인 것 같다. 언니 줄리에뜨는 창녀로서 당시 프랑스 모든 계층의 사내를 상대하며 오히려 그들의 性을 가지고 놀지만, 동생 쥐스띤느는 플로르빌같은 여자인데, 당시 프랑스 모든 계층의 사내에게 능욕을 당한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여지를 남기지 않는가 하면, 맨 마지막에 한국으로 치자면 일지매같은 의적(!)에게 능욕당한다고 한다. 아....짜증나! 짜증나! 원래 문학에서 의적이라는 존재는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性의 문제에 있어서 사드는 너무나 여지를 주지 않는다.(단지 성직자, 교황, 귀족, 국왕의 타락을 비판하는 선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뱃사공, 부두 노동자부터 허우대 멀쩡한 우아한 외양의 인간, 미덕의 인간까지 다 포함된다는 말이다.) 플로르빌과 도르쥬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억울하여(!) , 갑자기 <두 자매 이야기>가 오버랩되었다. 흠....그러니까 사드가 두 번 죽음을 당했겠지. 한 번은 귀족에게, 그 다음은 부르조아에게.  <미덕의 불운>으로 1988년에 번역된 것이 있다는데...그것이 쥐스띤느 이야기인지 찾아봐야겠다. 

다섯 편 모두 인간의 미덕과 악, 관습과 관련된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또 각 이야기의 끝은 각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는 한다. 인간에게 고상함, 우아함, 관대함 등의 성품과 사회적 관습과 법률은 분명 중요한 것이긴 한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어서 사드는 독특한, 아니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있어 예외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미덕의 화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조차도. 허영에 유혹당하고, 근친상간에 눈 멀어 자기 딸을 죽이거나 아내를 죽이거나 하는 것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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