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네에게 단
몇 마디로
인간 삶의
위대한 비밀을
가르쳐 주겠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원천을 고갈시키는
두 가지
본능적인 행위에
의해
기력이
소진되지. (중략)
'바람'의
행위는 우리를
서서히 불태워
없애고
'행함'의
행위는 우리를
일거에 파괴시키지.
하지만
'앎'은
유약한 우리의
심신
구조를 항구적인
평온 상태로
유지시킨다네.
여러분이라면
이 나귀 가죽을 가져가겠습니까? 라파엘은
당연히
가져가죠. 그래야 소설이 전개되니까요. (저는 고민할 것도
없이
가져가지 않을 겁니다. 저는 소설 주인공감은 아닙니다)
욕망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게 인간이지라 라파엘은 늘
원가를
바라고 소원은 이루어지고 수명은 계속 짧아집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람과 행함 말고 앎이란 게 더 있다는 점
이
흥미를 끌어서입니다. 우린 대체로 바람과 행함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예 “아! 자네가 내 인생을
안다면…'
이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안다면' 어떻게 된다 는 말인가요?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너는 들어줘. 그럼 알게 될 거야 ”
이것이
아마 모든 책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일
겁니다.
앎은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긴 이야기가 펼 쳐지죠
'안다면'
어떻게 되는지 우린 아직 모릅니다. 책장을 덮어 도 모를 수 있습니다.
다만
앎이 우리의 바람과 행함과 어떤 관계를 맺을
때,
책이
준 앎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
*
안다면
어떻게 되는가?
안다는 것은
어떤 변화를
이룰 수
잇는가?
지식과
앎을 다르게
본다면 ,
안다는
것에 관한
의미파악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휠러와
앎의 나무가
의미 하는
바는?
앎의
물리적 변화는
무엇을 초래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