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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하고 초라한 - 존재를 배제하는 공간에 대하여
강미현 지음 / 흠영 / 2026년 1월
평점 :
🏢《존엄하고 초라한》 | 강미현 지음
《존엄하고 초라한》은 ‘평균적 삶’이라는 기준 뒤에 놓인 다양한 존재들의 삶을 조명하는 책이다. 건축사인 저자는 집, 학교, 일터, 공공 공간 등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공간을 통해, 그 안에 스며든 배제의 메커니즘을 차분히 드러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익숙하게 지나쳐 온 공간들이 더 이상 중립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1부 ‘존재의 보금자리’에서는 청년 주거 불안과 집의 의미를, 2부 ‘노동의 자리’에서는 휴식과 노동 환경의 불균형을 다룬다. 3부 ‘모두를 위한 공간은 없다’에서는 배리어프리와 접근성의 한계를 짚고, 4부 ‘교실의 배신’에서는 교육 공간이 만들어내는 경험의 격차를 보여준다. 마지막 5부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에서는 도시 생태와 동물 복지 문제까지 시야를 확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문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지속되는지, 공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체감하게 한다.
책에 등장하는 구체적 사례들은 논의를 현실에 단단히 붙들어 둔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휠체어로는 건축학과 건물을 자유롭게 드나들기 어려워 비교적 이동이 수월한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해야 했던 이권 씨의 이야기는 공간과 제도가 한 개인의 진로를 어떻게 제한하는지 보여준다.
시각장애인이 미술관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가이드 서비스의 사례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감각과 경험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운다. 저자가 건축사로서 모든 사람이 공간을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조건을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는 점이 여러 대목에서 드러난다.
열악한 노동 환경의 사례 역시 법적 기준의 존재만으로 존엄한 삶이 보장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꼬리를 무는 돼지의 습성 때문에 환경을 개선하기보다 꼬리를 미리 절단해 버리는 방식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 존재를 조정하는 선택은, 우리 사회가 취해 온 여러 제도적 대응과도 닮아 있다.
《존엄하고 초라한》은 단순한 건축 에세이를 넘어 공간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비평서에 가깝다.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선택과 배치, 허용과 배제가 축적된 결과물임을 이 책은 분명히 보여준다. 책을 덮고 나면 묻게 된다.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은 과연 누구를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는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공간의 질서는 어쩌면 누군가의 존엄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닐까.
이 책은 공간이 곧 권력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 권력이 삶의 방향과 존엄을 좌우할 수 있음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환기한다.
*위 도서는 흠영으로부터 제공받아 독서 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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