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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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새해, 사월의미, 칠월의 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파주로, 인구가 나다

그리고 멀리 지평선으로 불빛들이 나타났다. 먼 불빛들은 지평선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게 도시의 불빛이라면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가고 있는 셈이었지만, 그러나 이 세상 끝까지 가도 그렇게 큰 도시는 없을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벌써 12시간째 자동차 안에 앉아 사막을 지나고 산맥을 넘으며 850킬로미처 정도 달려왔으니까. 그렇게 먼 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30분에 걸쳐서 천천히 저녁의 도로를 따라 지평선까지 내려왔다. 거의 다왔어,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라보는 지평선의 불빛들은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고, 또 그렇게 아름다워야만 햇다.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서, 혹은 야즈드의 불빛이 아니라고 해도. 우린 머나먼 길을 달려왔으니까.
소설을 쓴다는 건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고 믿으며 어두운 도로를 따라 환한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일과 같다.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은 무조건 아름다워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이 세상이 얼마나 잔인한 곳이든,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끝이라고 해도, 그럼에도 여기 실린 소설들을 쓰는 2008년 여름부터 2013년 봄까지 5년 동안만은, It` OK. Baby, Please don`t cry. 내가 쓰는 소설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건 그날 저녁, 여행에 지친 우리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야즈드의 불빛이라 생각했던, 지평선을 가득 메운 그 반짝임 같은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머나먼 지평선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시간들이라고. 그게 야즈드의 불빛이라서, 혹은 야즈드의 불빛이 아니라고 해도. 2013년 11월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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