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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사용후기 -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
한윤형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토론이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대화해서 상대에게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라 생각했을 때 한윤형씨는 토론을 매우 잘 한다. 키보드 워리어의 전투일지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팜플렛을 읽는 기분이었다면 뉴라이트 사용후기는 제목처럼 리뷰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메뉴얼로도 기능 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순혈주의에 대한 뜨악함과 혐오, 베트남처녀뿐만 아니라 북한처녀까지도 알선한다는 지하철 찌라시를 매일 아침마다 봐야 하는 불쾌함에 대한 메뉴얼이기도 하다. 적 수장의 목을 따온 듯이 故노무현 대통령 영정을 쳐든 예비역 대령연합을 보고 느낀 당혹감과 일제와 한국전쟁을 모두 경험하신 할머니께 왜 이명박을 뽑아도 이 모양이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메뉴얼이기도 하다.
한윤형씨의 블로그에서 자주 느끼는데, 같은 논조로 장문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에너지가 넘쳐야 가는한 일인가, 그리고 집중력을 필요하는 일임을 생각할 데 많이 놀랜다. 놀랍다는 것은 그래도 나랑 같은 20대인데 라는 부러움과 시기가 8할이고, 나머지 2할은 논문이나 책에는 없는 네트상의 담론들도 주석을 통해 소개되어 있는 것에서 또 놀랜다. 책에 스스로를 샌님이라 칭했지만 위트가 풍부하다.
논의의 깊이가 얇지 않고, 범위가 넓어 딴 생각을 하며 읽기에는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이 곁가지를 쳤다. 쌍용에 노사갈등에 대한 대리형의 말이 자꾸 귓가에서 들렸다. 세 살이 더 많았던 대리형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들 따라서 이러지도 못하고 참 나빴다. 라고 말했다. 사업장이 나를 포함해 10명도 안되는 영세한 곳이었다.
민족의 개념에서 시작해 탈민족주의 입장으로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 이 책은 민족주의자와 뉴라이트 모두에게 공정한 거래를 값으로 좀 더 솔직해지고, 난장이 아닌 합의 도달 가능한 마당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대학교 가서 보게된다는 '네가 배운 역사는 날조된 것이다.'라고 말하는 선배들을 만난 착각이 들었다. 실제 학교에서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실체없는 그들을 활자로 대면한 기분은 여태 속았구나라는 분함과 동시에, 이제 마음껏 욕할 대상이 사라져 섭섭하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층위 속에 마녀사냥하듯이 상대편을 욕하고 비방하는 쉬운 방법을 두고 거울의 단면에 서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되려 이 지점이 이 책의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방학 때 같이 일했던 회사사람들이 세계시민으로서의 민족주의라든지, 반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박정희에 대해 관심이 있을까 의문이다. 물론 그의 노력이 헛되다 말하는게 아니다. 책의 부제가 '상식인을 위한 역사전쟁 관전기'이기에 걱정되는 것이다. 많이 읽힌다고 무조건 좋은 책은 아니지만, 많이 읽힌 책 중에 좋은 책이 있기 마련이다. 2차 자료를 가지고 역사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닌 철학도인 그가 글을 썼을 때의 기획이라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 기획이라것이 그것을 알려주마 식의 기획이라면 성공일지 몰라도, 다같이 생각해 봅시다였다면 어긋나지 않았나 싶다. 30분만에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님을 알지만 좀 더 세련된 기획물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학술지나 논문이 아닌 한윤형씨의 리뷰이자 메뉴얼이 얼마나 많이 읽히고 회자되고 재생산 될까? 라는 주제넘은 걱정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역사운운하는 선배들이 없는 이유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한윤형씨라면 좀 더 간지 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