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탄
야스미나 레자 지음, 김남주 옮김 / 뮤진트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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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절반 이상을 혐오하는 괴팍하고 괴팍한 노인이 삶의 닻을 내리지 않고 끝없이 행복을 찾아 떠도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시시각각 우리의 삶은 우리를 조여들고 그 조여듦에 평생 맞서 싸웠으나 허사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소일보다는 전쟁이 낫다고, 보편의 집단적 마비보다 광기가 낫다고, 미쳐버리도록 매혹되는 순간, 세상 누구와도 다른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 자살하기 위해 달려 나가다가 교통정체에 막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어차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 순간들이야말로 이라는 투쟁의 의미를 구성한다고.

 

그러나 아들은 아무 대답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노인의 삶에 깊은 비탄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건 아들의 행복이 아니라 바로 그 무반응이다. 노인은 아들이 그와 대적하고 맞서 싸워주기를 바란다. 차라리 달려들어 피를 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들은 무심하고 한가로우며 초탈하고 이미 싸움의 의욕을 잃어버린 듯 보이기에 노인은 비탄한다.

 

아들이 행복의 투사가 되느니 차라리 범죄자가 되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 노인이 끔찍하게 증오하는 행복은 따옴표가 커다랗게 쳐진 행복이다. 실존의 적으로서의 안주, 싸워보기도 전에 투항하는 안락, 안온한 일상이 흔들릴까봐 미리 웅크리는 비겁, 보편과 집단적 정체성으로 녹아드는 자아. 하지만 온전히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삶을 뒤흔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사적인 길로 접어드는 치명적 선택이다. 반드시 고독이, 반드시 어떻게도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이, 반드시 깊고 깊은 비탄이 따르는 길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노인의 행복은 언제나 한 점, 시간의 한 점에서 삶을 뒤흔드는 열정의 춤사위로 정의된다. 삶이 뒤흔들리는 순간, 영원한 현재형의 한 점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코 지속되지 않는 행복. 우리는 결국 무덤으로 행진하는 존재이기에, 춤을 춥시다, 주느비에브. “끝나지 않는무덤 앞에서 멈춰 서서 다시 시작하는 아름다운 음악과, 루스파우더 한 통을 사기 위해 자살하려는 힘을 끌어 모으는 아내의 모습과, 중력에 처진 모습으로 죽어가지 않기 위해서, 전쟁처럼 결혼생활을 하고 사랑을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인간들을 차라리 사랑하는 남자. 그래서 야스미나 레자는 실존을 위협하는 행복과 필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쟁을 충돌시켜 소리 없는 굉음을 내고,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모르고 읽어 내려가던 독자로 하여금 등줄기에 얼음이 끼얹어진 충격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무덤이 부르기 전에 이미 죽음을 선택한 이 세상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경종을. 행복과 결코 혼동할 수 없이 삶을 뒤흔드는그 모든 순간들, “삶을 뒤흔드는비탄을 선택하고 외롭고 고통스럽게, 헛되고 잔인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에 축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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