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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프린스 ㅣ 바통 1
안보윤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8명의 작가가 '호텔'이라는 소재로 쓴 테마소설집인데 각각의 단편들도 좋았지만 특히 첫 장의 기획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예비 소설가가 신춘문예를 준비하기 위해 호텔에 묵었던 하룻밤의 추억을 쓴 글이 주간지에 짧은 칼럼으로 실렸다. 호텔 관계자가 그 글을 읽고 '소설가의 방'을 만들었는데 그 후 여러 작가들이 각자의 작업을 하기 위해 호텔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삼 년째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의 방'에 머무는 동안 호텔에 관한 단편소설을 한 편씩 쓰고 로비에서 소설 낭독회를 하자는 제안도 자연스럽게 나왔고 북 콘서트로 이어졌으며 이번에 읽은 <호텔 프린스>라는 감각적인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작가들에게 방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특별한 공간일지 모릅니다. 서재는 물론 카페와 도서관, 동료들이 모두 퇴근한 사무실과 병실 보호자용 간이침대까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방"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방에 홀로 부엌에 앉아 쓴 소설이라는 뜻의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말은 조근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모든 행위가 어쩌면 "방"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봅니다. (p.6)
나에게도 '나만의 공간'이 두 곳 있다. 첫 번째 공간은 읽으려고 쌓아둔 책들과 오디오가 있는 협탁 옆 침대인데 하루 일과를 마친 밤 시간엔 대부분 침대에 기대 책을 읽는다. 한 시간쯤 책을 읽다 보면 엉덩이랑 허리가 아파 누워서 책을 읽을 때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편한 자세로 책을 읽다가 읽고 싶은 책이나 작가가 생각나면 스마트폰으로 한참을 찾아보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 책상에서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버스에서 읽어보기도 했고 카페에서 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가장 편한 곳은 내 침대이다.
두 번째 공간은 거실에 있는 내 책상인데 책상엔 사기만 하고 읽지 못한 책들이 쌓여있고 노트북, 다이어리, 달력, 펜 등 다른 사람들이 보면 정리가 되지 않아 어수선해 보이는 곳이지만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바로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선 독후감도 쓰고 일주일의 계획도 세우고 일도 하고 내가 가장 생산적으로 활동하는 곳이다.
딱히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지만 나에겐 휴식, 평안, 새로운 능력을 주는 곳인데 작가들이 글을 쓰는 공간이란 얼마나 더 특별할까.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임경선 작가, 가정주부로 바쁘게 살면서 글 쓸 시간이 밤 시간밖에 안돼서 빛이 새어나가 가족들이 깰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등단작을 썼던 박완서 작가, 가난의 찬바람을 맞아가며 집 한구석에서 몸이 망가져가는 것도 모른 채 글을 썼던 제인 오스틴 등 작가들의 공간은 낭만적이고 감성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선 치열하게 한 단어, 한 문장과 사투하며 새로운 창작품을 탄생시키는 엄중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기 전에 호텔을 떠올리면 여행의 설렘이 담겨 있는 산뜻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8편의 단편이 표현한 호텔은 내가 생각했던 호텔과 많이 달랐다. 사정이 있어 엄마를 집으로 모시지 못하고 호텔에 함께 갔는데 더블룸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극구 트윈룸으로 달라고 하고 비가 오는 날 우산 한 개로 같이 쓸 수도 있었지만 두 개를 달라고 하는 딸의 모습이 그려지고도 하고, 가정이 있는 남자가 젊은 여성을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호텔 방에 머무르는 사람의 수 만큼 각자 안고 있는 인생의 무거움, 고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원래 단편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의도치 않게 단편집 위주로 읽고 있다. 하나의 소설로 표현되는 사람과 삶을 바라보며 요즘 소설은 유난히 서늘하고 음울하고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진다.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확대 해석일까. 아니면 원래 소설은 비극을 표현하기에 좋은 예술의 방식이라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