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지음, 조동섭 옮김 / 세계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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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잘 몰랐는데, 영화 [킬빌] 시리즈를 보고 푹 빠져들어서 한동안 이 감독의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곤 했다. 내가 영화 평론가가 아닌 이상, 그 영화가 재미있었던 이유를 일일이 다 분석할 수는 없지만 그의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 특히 [킬빌]의 경우,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조직으로부터 가혹한 공격을 당한 뒤 남편과 아이를 잃고 거의 식물인간 상태였던 여자가 조금씩 되살아나 철저한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줬었다. 매우 잔인하기도 했지만 뭐랄까? 미장센이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시각을 만족시키는 면이 있는 영화였다.

이 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인 쿠엔틴 타란티노 작가의 첫 데뷔 소설이다. 역시 진정한 " 할리우드 키드 "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1960년대 ~ 1970년대쯤의 할리우드 풍경을 이 소설을 통해서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주인공 릭 달튼의 입을 빌려서 당시 미국인들의 마음을 훔쳐 갔던 다양한 TV 시리즈와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젊을 때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했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쿠엔틴 타란티노. 그가 두 눈을 반짝이며 각종 영화들과 시리즈물을 섭렵하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듯했다.

소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크게 2가지 흐름이 있다. 우선 스스로 한물간 배우라고 자처하고 있는 릭 달튼의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 젊은 시절에는 주연이나 매력적인 조연을 맡기도 했던 배우 릭 달튼. 그러나 현재는 생각지도 않았던 장르의 영화나 단역에도 출연해야 할 상황이다. 커리어에 겨우겨우 숨을 불어넣으며 하루하루 버티는 릭 달튼의 심리적 불안 상태가 잘 그려진다. 잘나가는 배우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느끼는 열등감, 패배의식 그리고 쓰라린 마음을 하루하루 술로 달래는 릭 달튼. 당시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생활이 과연 어땠을까? 상상하며 읽기 좋았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또 다른 이야기는 바로 " 찰스 맨슨 패밀리 " 사건이다.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은 가출 청소년들을 끌어모아서 패밀리를 이루고 온갖 악행들을 저질렀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부인인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이다. 이 책을 보면 찰스 맨슨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소녀들을 꼬여서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가스라이팅을 하는지가 잘 나와 있다. 임신까지 한 샤론 테이트가 잔인하게 살해를 당한 사건이 작가에게 큰 트라우마였을까? 이 책에서는 릭 달튼의 스턴트맨인 클리프가 이 패밀리를 초전에 박살 낼 거라는 뉘앙스를 은근하게 풍긴다. 자세한 결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작품에서만이라도 샤론 테이트가 편안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 것 같다.

이 소설의 경우, 이야기의 흐름에 뚜렷한 극적 구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릭 달튼 이야기에서 갑자기 맨슨 패밀리 이야기로 갔다가 또 갑자기 매니저 클리프 이야기로 갔다가, 솔직히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1960~1970년대 당시 할리우드의 진풍경 혹은 영화계의 비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평범한 일반 독자들은 몰랐을 만한 이야기가 아주 다채롭게 펼쳐진다. 실제와 가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설이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2가지를 말하자면, 우선 주인공은 릭 달튼이지만 그의 스턴트맨으로 등장하는 클리프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이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전쟁 중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사회에 나와서도 몇 건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다. 마치 살인 병기와도 같은 그가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본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연적인 이유로 손에 피를 묻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찰스 맨슨 패밀리라는 희대의 악인들을 박살 낼 인물로 잘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된 릭 달튼이 꼬마 아역배우를 만나서 대사 치는 훈련을 호되게 받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도 정말 재미있었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소녀가 어른을 다그쳐가며 연기에 몰입시키는 장면이 정말 훌륭했다. 연기자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기를 할 게 아니라 진짜 영화 속의 그 " 인물 " 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에피소드랄까?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 관심이 많고 이쪽으로 지식이 풍부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정말 좋아할 것 같다. 영화에 대해서 별로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이 책을 읽고 나니 할리우드 고전 영화를 많이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 중구난방이라서 이야기의 흐름을 빨리 캐치하지는 못했지만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할리우드에 바치는 " 연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가 가진 영화와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소설이다. 정말 재미있었던 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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