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 경험이 글이 되는 마법의 기술
메리 카 지음, 권예리 옮김 / 지와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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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너무 평범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펴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남들처럼 학교 다니다가 회사에 입사하고 가정을 꾸리는 등등의 평범한 이야기는 그냥 단 3줄로 표현해도 그만인 것을.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었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 책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는 자전적 이야기, 즉 자신의 회고록을 쓰는 법에 관해서 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보편적으로 " 글을 쓰는 방법 " 즉, 작문을 더 잘하는 법 혹은 글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법 등등을 가르치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 회고록 "이라는 구체적인 장르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본인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이 책이 굉장히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저자 메리 카는 대학에서 30년째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들이 다른 글쓰기 책에 비해 좀 더 깊이 있고 소재가 풍부하다고 느껴졌다. 다양한 저자들 ( 소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나 마야 안젤루 등 )의 회고록이나 소설에 대한 인용과 분석이 많아서 그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배울 점을 더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좋은 작품들을 알게 되어서 찾아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이 책을 읽고 좋았던 점을 말하자면, 우선 " 진실 " 을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본인의 감정이나 과거에 대해서 되도록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저자. ( 기억의 왜곡은 어쩔 수 없겠지만 ) 일어났던 사건을 예쁘게 미화하거나 치장하려 하지 말고 혹은 또 너무 불행하게 그려내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록 권한다. 그녀는 작가 지망생들에게 " 당신에게 일어난 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하며 진실성을 독려한다. 독자들은 꾸며진 이야기에 처음에는 끌릴지 모르나 언젠가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해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 진실 " 외에 이 책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 육체성 "이다. 즉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 좋은 글은 읽으면서 영상과 소리뿐 아니라 냄새와 맛과 촉감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실제로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글들은 " 생생함 "이라는 요소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었던 책 " 맡겨진 소녀 " 가 마치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 " 육체성 " 때문이 아니겠나 싶다. 소녀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들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한낮의 햇빛과 차가운 물이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마이클 허라는 작가는 [디스패치]에서 스테이크를 썰다가 고기 냄새를 맡고는 전쟁 중에 죽어가던 " 썩고 불타던 살점들 " 을 떠올린다. 냄새라는 감각적 기억이 퍼올린 전쟁의 참혹함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 카는 작가이자 수십 년째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학생들을 위해서 조사하고 연구한 흔적이 많이 드러나는 책이다. 여러 유명 작가들의 회고록에 관련한 인용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특히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가의 작품을 메라 카의 재해석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던 과정도 일부 소개하고 있는데, 알코올중독자 어머니와 골수 우파인 언니 사연을 책에 쓰면서 약간 갈등을 빚었던 이야기도 나온다.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긴 하지만, 만약 내가 그녀였다면? 아마도 부끄럽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나 수치스러운 사연은 의식 속 저 깊은 곳에 꽁꽁 감추어두고 누구도 못 보게 할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서 가장 깊이 마음에 남았던 글은 7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 늦게 한글을 깨우치면서 썼던 자신의 삶에 대한 글들이었다. 그렇게 단순하고 문법도 잘 안 맞는 글이 감동이었던 이유는 아마도 삶의 " 진실 " 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메리 카의 책 [인생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려내는 담백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회고록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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