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소설 [맡겨진 소녀]는 대단히 서정적이고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다. 소녀가 친척 집에 맡겨진 짧은 몇 개월을 다루고 있기에 이야기의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말은 별로 없지만 감성이 섬세하고 풍부한 어린 소녀의 마음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인 지연의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잠시지만 그녀가 불편하지 않게 여러모로 마음을 써준 친척 부부의 배려가 마치 눈에 띄지 않게 머무는 공기처럼 잘 그려진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는 것 같다. 조용하지만 거대한 울림이 있던 소설 [맡겨진 소녀]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주인공 소녀는 다소 무뚝뚝한 아버지와 함께 서둘러서 어딘가로 길을 떠난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가 엄마가 곧 다섯 번째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 잠시만이라도 엄마의 일을 덜어주고자 집안 친척 집에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자세한 설명 없이 상황의 묘사만으로 이야기를 짐작하게끔 만든다. 생각해 보면 세상살이란 게 다 이런 것 아닌가 싶다. 누가 나서서 인생은 이렇고 저렇다고 설명해 주지 않으니.

어쨌든 아마도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을 것 같은 소녀는, 뭔가 자신감 없고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짐도 안 내려주고 가버린 아버지라는 사람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건대, 소녀가 집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소녀는 그다지 말은 많지 않지만 킨셀라 부부의 속 깊음과 배려를 도착 첫날부터 느끼고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말하지는 못했겠지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소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니까.

"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

친척 집에 온 이후로 아이는 킨셀라 부부와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한다. 그녀는 종일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햇감자를 캐고 요리를 한다. 킨셀라 아저씨는 소녀를 우편함까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보고 칭찬해 준다. 아주머니는 불분명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말투를 고쳐주고 아저씨는 미사를 가기 전에 아이를 위한 옷을 사기 위해서 다 함께 "고리" 라 불리는 읍내에 나가자고 한다.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는 주인공 소녀. 나중에 소녀는 킨셀라 부부와 함께 마을의 장례식에 갔다가 이 부부가 가슴 깊이 묻어 놓았던 슬픔과 비밀을 알게 되는데....

생물학적 부모라고 진짜 부모라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확 들었다. 아이를 친척 집에 맡기면서 짐도 안 내려놓고 간 무심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를 보니 화가 밀려왔다. 아이가 남의 집에 머무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여러모로 세심하게 애쓰는 킨셀라 부부를 보니 그들이 진짜 부모가 될 자격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과 여백... 하지만 조용하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묘사와 감동.. 이 소설에 대해 누가 설명해 보라고 하면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한 문장에 정말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는 듯한 소설 [맡겨진 소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