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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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과 가장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덧없는 만남

[연기 인간]은 1911년에 발표된 "미래파 소설"이다. 후로 저자가 꾸준히 개정판을 펴냈지만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원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1911년 초역의 그 풋풋함 (?) 과 신선함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누군가의 의지가 아닌가 싶다. "미래파" 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예술, 문화, 사회, 문학 등등 곳곳에서 시작된 운동이라 하고, 과거와 전통의 완전한 거부와 파괴, 미래로 나아가는 속도의 찬양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고 한다. 정의대로라면 sf 소설에 가까워야 하는데 이 [연기 인간]은 오히려 환상 동화나 우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초현실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는 "미래파 소설"로 구분해도 무방하다 싶다.

이 소설의 경우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이 대단히 독특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나 설명보다는 등장인물들, 그것도 꽤 많은 인물들이 주인공 페렐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누가 누구에게 말하는지 헷갈릴 정도로 다소 두서없이 대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주로 대화로 이루어진 이야기다 보니, 희곡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 작품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사랑에 목말라서 미쳐가는 귀족 부인들 이야기나 돈으로 왕좌를 아무나 살 수 있는 내용까지 듣다 보니 이 책은 대중들의 욕망이나 광기를 비판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페렐라는 한마디로 연기로 만들어진, 가벼운 인간이다. 말 그대로 가볍기도 하지만 욕망으로 가득 찬, 무겁기 그지없는 일반 인간들과 다르게 욕망이 거의 없다는 면에서 비유적으로 가벼운 인간이다. 그는 페나, 레테, 라마라는 세 명의 노인들이 사는 집의 굴뚝에서 태어났다. 33년간 굴뚝, 즉 검은 자궁에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살면서 세 명의 노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왔다. 그렇기에 전쟁, 죽음, 사랑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는 막연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다. 노인들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연기 인간은 벽난로에서 내려와 비로소 부츠를 신고 땅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의 독특한 모습에 놀란 사람들, 그러나 곧 그 어떤 것에도 욕심이 없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대중들은 연기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그의 모습과 자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는 모습에 반하여 그를 추앙하게 된다. 이렇게 인기를 얻어 가던 와중에 왕은 그에게 새로운 법전 집필이라는 중책을 맡기기도 한다. 페렐라는 세상으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유명 인사가 된다. 그러나 궁정 하인 알로로가 자신도 사람들의 존경과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연기 인간이 되려고 스스로 몸을 불태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의 페렐라에 대한 평가는 갑자기 변한다. 그를 추앙하고 떠받들던 사람이 태도를 180도 바꾸어 그를 헐뜯고 비난하고 어떤 식으로 벌을 줘야 할지에 대해서 논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를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작가 알도 팔라체스키가 이 책 [연기 인간]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뭘까? 아마도 군중의 어리석음과 욕심 그리고 광기가 아닐까 싶다. 페렐라는 그냥 연기에서 만들어졌을 뿐이고 세상을 구경하러 나왔을 뿐인데, 대중들은 그를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고 억눌러 왔던 광기를 표출하고 뜻대로 안되니까 비난하고 처벌까지 하려고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몇몇 유명 인사와 연예인들이 떠올랐다. 대중들의 관심과 추앙을 받다가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 썩은 고기를 찾아 돌아다니는 하이에나들처럼 뉴스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언론,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대중, 그리고 자신들에 대한 관심을 그쪽으로 돌려보려는 정치권의 피해자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페렐라.. 페렐라는 사라지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먹잇감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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