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옥성아.채한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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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우리가 들려줄게.’

작사가 김이나, 래퍼 딘딘, 밴드 데이브레이크의 보컬 이원석, 그리고 싱어송라이돌 정세운이 MC로 활약하고 있는 디지털 예능 콘텐츠 고막메이트. 인간관계, 회사 생활, 연애, 섹스 등 일상의 진짜 고민을 다루면서 3년간 80회차 가까이 제작된 에피소드들은 이 콘텐츠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넘치다 못해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다정 무해고막메이트가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콘텐츠는 진심의 힘으로 성장한다. 고막메이트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존중하고 따뜻한 유대감을 품은 커뮤니티로 성장해왔다. 찐 메이트 고메즈, 그리고 막둥이와 함께. (p.104)

 


SBS 옥성아 PDKT OTT 서비스 seezn(시즌) 콘텐츠팀 채한얼 기획자는 고막메이트의 공동 제작기를 바탕으로 취향의 시대에 콘텐츠가 성공하는 비밀을 밝힌 책 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를 써냈다. 공급자가 아닌 시청자의 입장에서 늘 고민해온 두 저자의 이야기는 팔리는 콘텐츠를 위해선 자극적인 빨간 맛이 필히 가미되어야 한다고 고집해온 수많은 이들의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공감의 방식으로 함께해주는 것. 고민을 말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것처럼, 고민에 공감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막메이트의 가장 강력한 힘이자 가치이다. (p.140)

 


선한 진심은 통했다. ‘진정성의 힘, 관계성의 힘, 공감의 힘, 함께 만드는 힘까지. 네 가지 힘이 발휘한 시너지는 콘텐츠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을 관통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고막메이트는 그렇게 독보적으로 따스한 세계관을 구축하면서 넘쳐흐르는 콘텐츠 은하수 속 가장 빛나는 하나의 별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닿았다. 함께 만들어 간다는 건 제작진들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함께의 주축엔 시청자가 늘 자리하고 있음을 책은 꾸준하게 상기시켜준다. 그들이 있기에 훨씬 촘촘해진 관계가 콘텐츠를 성공으로 이끌어내고, 선택된 콘텐츠가 다시 그들에게 부드러운 공감을 건네면서 선순환이 발생될 수 있었으리라.

 


콘텐츠 대폭발의 시대. 시청자들에게 쉽게 선택되도록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미 위주의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서로의 유대감을 다지며 더 나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무해한 콘텐츠의 가치는 더욱 커져간다. (p.16)

 


결국 팔리는 콘텐츠의 생존 비밀은 책의 제목으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다정하고 무해하게.’ 간과하기 쉽지만 그 힘을 느껴보게 된다면 다시는 결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자극적인 음식만 추구하면 몸에 탈이 나듯이 자극적인 콘텐츠만 추구하면 개인에게 또는 사회에 꼭 탈이 나기 마련이다. 선한 콘텐츠를 진심으로 생산하다 보면 인기와 성공을 굳이 좇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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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 - 조져진 세대의 두 번째 페르소나
이용규 지음 / 좁쌀한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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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에서, 광고에서, 뉴스와 여러 방송에서 ‘MZ세대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했다. 사전적 정의로는 이렇게 말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인다.’ 마치 세상을 낙천적으로 살아가고 일생이 유쾌하기만 할 것처럼 설명되고 있다. 이들이 현시대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곤 했다. 내가 저 분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MZ세대의 특징이 보이는 게시물이 뜨면 종종 아래와 같은 댓글들이 달리는 걸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이렇대, 분발 좀 하자’, ‘요즘 이게 트렌드래 나만 몰랐냐?’, ‘우린 할미였네 어서 메모해둬라. X세대부터 시작해 MZ세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당시 젊은 사람들은 알파벳 그룹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묶여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이를 즐기는 부류도 있었지만 분명 달갑지 않게 여기는 부류도 존재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다양성을 묵살하고 제3자들이 묶어낸 각종 세대는 과연 유의미한 분류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오늘 Z세대를 설명하는 것은 오직 여유로운 이들에게 쏟아지는 화려한 주목, 또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소비주체로서의 주목뿐이다. 젊은 세대의 실존적 문제를 논할 때 세대론이 자취를 감추는 것은 그 때문이다. (p.20)

 


MZ세대 및 Z세대의 사전적 분류로는 이에 속하는 저자 역시 이러한 세대론에 의문을 가졌다. 그는 이들을 조져진 Z세대, DeGeneration-Z(DZ세대)’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동안 가려진 그늘에 있던, 보이지 않던 나머지를 대표해 이면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드러낸다. 저자의 첫 작품 뚝배기를 닦아 뿌링클을 사다는 그렇게 조져진 세대의 두 번째 페르소나를 담고 있다.

 


적어도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안다는 확신이 있었다. 정작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물음조차 우물거리고 있었다. (p.161)

 


1부는 같은 세대 안의 또 다른 시선을 담은 칼럼이 수록되어 있다. MZ세대를 트렌드를 주도하는 소비계층으로서만 주목하는 반쪽짜리 세대론에 맞서 그 속에서 배제된 이들의 현실, 생각, 감정 등을 DZ세대라고 정의한 저자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2부는 솔직한 저자의 일생을 통해 한 세대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르포타주가 담겨있다. 때로는 적나라하게, 가끔은 자조적이게, 몇 번을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냥 웃플 수만은 없는 삶의 페이지들은 불확실한 것만이 확실한 우리네 고달픔을 함께 들여다봐 준다. 손목이 조져지도록 뚝배기를 닦아 모은 돈을 아끼고 아껴 뿌링클만큼은 망설임 없이 시켜 먹을 모든 이들에겐 압력솥의 배출구와 같은 책이다.

 


나는 이를 악무는 내 모습이 좋다. 내가 믿지 않는 것을 대표해 가장 높이 가는 것보다는 내가 믿는 것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이제 오늘의 나를 직시할 수 있다. 흐리게 선망하던 미래를 재정립하고, 너저분한 실패로 점철된 과거를 돌아보되 후회하지 않는다. (p.332)

 


계속되는 실패, 거듭 놓쳐버리는 기회,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던 것 같지만 무엇 하나 남은 것 없는 것 같은 느낌. 우리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꼬리를 무는 답 없는 질문들. 반쪽자리 세대론 속에서 개인사와 콤플렉스를 껴안은 채 그럼에도 살아가고 살아내고 있다. 처참하게 조져지기도 했지만 무력하게 포기하지만은 않는 끈질긴 투쟁을 나름대로 이어가는 게 우리네 청춘들이다. 이제, 편향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환경 속의 청춘들을 조명할 차례다.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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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이평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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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리한 부탁임에도 거절을 어려워하고 항상 밝은 모습과 미소를 잃지 않으며 늘 상대방을 먼저 고려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착한 사람 증후군’, 이들은 타인에게 항상 착한 사람으로 남고자 그들을 위해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노력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마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희생하는 위치에서 벗어나길 가장 어려워하고 버림받는 걸 제일 두려워하는 이들은 자존감을 갖고 적당한 선에서 솔직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대부분이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다소 덜 받기를 바란다. 받더라도 버텨낼 수 있을 만큼만 받기를. 그밖에 삶을 지탱할 여러 요소를 잘 설정하여 균형 잡힌 삶을 살기를 바란다. (p.79)

 


15만 독자가 공감한 베스트셀러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로 관계 에세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펼친 이평 작가의 신작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특유의 따뜻하고 솔직한 문장으로 어둠을 걷는 많은 사람들을 밝은 곳으로 안내하는 저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늘 착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담백한 조언을 건넨다.

 


인간관계를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자. 단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렸다라는 말을 기억해두자.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또 그 상황과 내 상태에 맞는 관계 매뉴얼을 적용하면 된다. 그러니 내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지속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무리 없이 관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자. 융통성과 조금은 계산적인 방법이 오늘의 당신을 현명한 사람으로, 균형 잡힌 삶으로 안내할 것이다. (p.84)

 


첫 번째 챕터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조언을 전한다면 두 번째 챕터에서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마지막 세 번째 챕터에서는 연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전한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우선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일단 실천해나가는 것을 강조한다. 착한 사람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흐름이다. 스스로를 옥죄게 한 여러 판단의 잣대나 세상의 기준에 연연하던 이들은 챕터를 넘겨가면서 의식하느라 피곤하고 눈치 보느라 지친 자신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어떤 이유도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라 여기길 바란다. 존재 자체로 존귀하다고 여겨라. 어떤 일에 좌절하더라도, 인생의 쓴맛을 보더라도 그 존귀함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하라. 무너져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동감에서 생동감으로 이어지는 인생을 살아가라. (p.132)

 


삶을 전환할 수 있는 주도권은 타인이 아닌 내가 쥐고 있다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결국 인생과 관계는 상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그리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사람을 위해 살았다면, 이젠 작가의 말처럼 스스로를 위해 살아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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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23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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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포용하고 차별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소셜미디어의 힘으로 여러 운동이 흐름을 타고 사람들의 인식 개선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행동은 어떠한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막상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다. 매스컴과 SNS는 그 다름을 보통과는 상이한 특별함으로 비추거나 이슈화하고, 결국 이는 화젯거리로 오르내리며 혐오와 낙인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게 현실이다. 인식에 그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엄연한 큰 차이다.

 


그동안 루호에게 변신이란 원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호랑이가 살아남으려면 꼭 변신을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p.65)

 


채은하 작가의 장편동화 창비 좋은 어린이책수상작 루호는 이러한 문제들을 한국형 판타지 동화로 풀어나간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배척받고 본 모습을 숨겨야만 생존이 가능한 존재들이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그걸 잊지 마. (p.60)

 


호랑이 루호와 구봉 삼촌, 토끼 달수, 그리고 까치 희설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낸다. 그런 그들 앞에 불현듯 호랑이 사냥꾼 강태와 그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살기 위한 투쟁이 가열된다. 호랑이로 변한 괴물들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다며 쫓아내야 한다고 사냥을 나서는 강태와 달리, 그의 자식 지아와 승재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향해 마음을 열고 연대한다. 행동으로 나서는 이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서로가 용기를 내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강태의 주장이 뉴스와 SNS에서 활력을 얻자, 동네에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방송사 직원들과 인터넷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슈를 키우고 관심을 얻으려는 사람들과 호랑이에게 숲을 허락하라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그 틈에서 여전히 호랑이 사냥에 목숨을 건 혐오자 강태와 친구들을 지키려는 지아, 승재까지. 다름을 대하는 서로 다른 군상이 한데 섞인 산기슭에서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들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한 번쯤 물어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하고.

 


숨은 호랑이들이 더 이상 쫓기지 않길, 우리 모두가 어떤 모습으로도 안녕할 수 있길 바라면서. (p.198, 작가의 말)

 


조금만 자신과 다르고 조금만 자신보다 특별한 존재로 생각되면, 상대를 자꾸 보통이 아닌 영역에 두고서 대하려고 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배척하려는 고집도, 화젯거리에 편승해 이득을 취하려 하는 계산적인 마음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개성을 지녔고,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다. 작가의 말처럼 모든 생명이 어떤 모습으로도 안녕할 수 있길, 인식을 넘어 행동하는 존재가 될 수 있길, 그리고 기꺼이 함께 연대하는 사회가 될 수 있길.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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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이경희 지음 / 강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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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움의 대명사 시장. 따뜻한 인심과 부대끼는 정이 가득한 그곳에 폭력이라는 단어도 공존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세상살이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시장 안에는 사실 없는 게 없을 만큼 살아있는 것부터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것들까지 모든 게 들어있다.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며 필연적 폭력을 비껴가지 못한 그곳, 다종다양의 욕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들끓게 하는 한 시장이 늙은 개 한 마리의 시선에서 적나라하게 목격된다.

 


축산물 구역과 수산물 구역을 오가며 매번 느끼는 것은 무엇으로 살든 서열을 나누고 생명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기호와 취향이라는 사실이다. (p.66)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동물 보호에 앞장선 이력도 없지만, 한 번쯤은 공존과 책임에 대해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경희 작가가 애써 피하고 싶었던 곳에 진열되어 있던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모란시장으로 돌아왔다. 늙은 점박이 개 삽교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장날 속 열띤 모란시장의 이면은 지독하게 비릿하다. 무서운 시장 길목의 미로 속을 아빠 명진의 보호를 몰래 벗어나 누비며 줄곧 가혹함을 마주하는 삽교.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기도 하는 것을 보며 복잡한 인간 삶을 보고 듣는다.

 


이 세상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생명을 죽여서 고기를 먹어왔으니까요.” (p.199)

 


모란시장의 절대 권력자 대도축산의 박 사장과 그의 폭력을 감내하면서 잡혀온 개들을 묵묵하게 도축하는 경숙, 그런 경숙을 약봉지 가득한 방 안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삽교의 아빠 명진. 삽교와 따뜻한 말을 나누는 고씨 할머니와 오로지 장미꽃만 파는 능평꽃집 여자. 그리고 위험천만하지만 인간과 떨어진 자유를 택한 떠돌이 고양이 송이까지, 다양한 개성이 모란시장이라는 틀 안에서 공존한다. 시장이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듯 그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삶은 온정 있다가도 거칠고,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고독하다.

 

시장 내의 실세가 이끄는 대도축산만큼 생사의 갈림길 최전선에 잔혹하게 놓여있는 가게가 없다. 개를 죽일 수밖에 없는 경숙은 울부짖는 생명을 단번에 끊어버릴 만큼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고요해진 밤이면 아무도 없는 탄천에서 장미꽃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며 늘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런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개한테 하듯 죽도록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박 사장도, 죽기 전 마지막 소리를 토해내는 개들의 아우성도 아닌, 개고기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다. 꿋꿋하게 박 사장이 아닌 자신이 개들을 도축하고자 고집하는 건 어쩌면 영혼까지 으스러뜨리는 폭력의 잔혹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리라.

 


뭐 그깟 장미꽃이라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 너처럼 밥 처먹고 똥 싸는 사람만 생명인 줄 아냐! 네발 달린 짐승도 생명이 있고 이 작은 꽃에도 생명이 있단 말이다.” (p.82)

 


소설은 이토록 힘의 질서와 욕망으로 빚어낸 참혹한 현실 자체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연대를 통해 굳건해질 평화로운 생명공동체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난무하는 폭력을 돌아보게 만들고, ‘너는 생명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능평꽃집 여자의 질문을 읽는 이로 하여금 곱씹어 보게 한다. 모란시장이 담아낸 이야기는 그저 소설 속에서나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 도사린 현재의 삶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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