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세트] [BL] 입술 - BL the Classics (총2권/완결)
뾰족가시 지음 / 더클북컴퍼니 / 2018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대부분 호평인데 불호를 얹게되니 다소 마음의 불편함이 있네요.

처음 읽기 시작할때 생각한 것은 표지 그림처럼 수수하지만 남자답고 단정한 수가 나오는 치유물이었어요.고아에, 가난하고, 밤낮으로 알바를 뛰고, 옥탑방에 살고...정말 세기말부터 모두가 사랑했던 그린듯한 가난수. 성격은 무던해보이고 말수는 적어보이고.초반까지도 아, 이거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겠군. 이런 수는 오랜만인데!라는 감정으로 반가웠습니다. 뭔가 오해를 받아도 담백하게 털고 넘길 것 같고,과묵하지만 다정할 것 같고, 올곧은 성격 덕에 공짜를 탐하진 않지만 굳이 날카로운 자존심을 세우지도 않는 그런 수가 고팠고 그리웠거든요.

하지만 그런 제 섣부른 예단와는 꽤....다른 인상의 캐릭터였어요. 

정확히는, 분명 기본 베이스는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설정값과 행동값이 어긋난달까? 종종 그런 글이 있죠. 얼음같은 냉혈의 대공이라며 등장했는데 어휘나 행동은 그냥 고집스러운 새침데기라거나 과묵한 어른남자란 설정인데 난데없이 호들갑스러워진다거나...

여기 수는 의외로 푼수같은 행동을 많이 합니다.비엘이 야오이라 불리던 시대의 가난한 단정수, 처연한 강수를 상상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야오이 시절의 4차원 아방수 혼종이 나온 느낌...

공감성 수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꽤 많고, 캐릭터나 개연성을 생각할때 납득가지 않는 장면도 많습니다. 글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큰 재미이자 갈등 요소인 오해를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스러운 우연을 계속 반복하는데(심지어 소설 초반에 연달아, 텀없이)이 과정에서 수가 꽤 망가지며 희생되는 느낌입니다. 애초에 공이 처음 착각하게된 발단이 너무 어거지였고 그후의 사태들도 별다른 현실감 없이 만화스러웠던지라 오해를 위한 에피소드는 반으로 줄여도 될 뻔 했어요. 말하자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넘어지고 쾅하고 열린 문에 코를 부딪히는 아주 오래되고 뻔한 코미디적 연출이 좀 길게 이어지는데, 글에서 지향하는건 서정적인 분위기라 더 설득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납득하기 힘들만큼 붕 뜬달까요? 심지어 그걸 너무 일일이...변명하듯 설명해요...

사실 글 자체에 설명이 많습니다. 동작 하나하나와 그 사이의 연결고리까지 굳이 다 나열해주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뭐가 가장 중요한지를 파악하기 힘듭니다. 어쩌면 큰 매력요소가 되었을지 모를 담담한 문체가, 편집 전의 나레이션처럼 쓰이니 아예 문장 자체를 경직되어보이게 만들고요.설명이 많은 것치고 감정선이 섬세하게 진행되는 느낌이 없는 것 또한 아쉽습니다.

수는 그저 어어하는 사이에 끌려다니고, 이따금 돌발 행동으로 모에갭을 보여주고, 끝없이 오해를 키우고, 공은 수를 부려먹다가 발정합니다. 

혹평을 많이 썼지만 문장력이 나쁜 소설은 아닙니다. 서술의 초점이 지나치게 산만하단 인상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군데군데 놀랍도록 아름다운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자연이나 배경을 묘사할때가 그런데요, 딱히 참신한 어휘나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고도 수채화처럼 스며드는 듯한 엷고 투명한 느낌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거나 잎사귀가 흔들리는 걸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심리나 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탁월하고요. 그래서 더 아쉽습니다. 이런 부분의 비중이 컸다면 참 좋았을텐데요. 결과적으로 잔잔하고 서정적인 첫사랑물도, 좌충우돌 오해로 이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가 된 느낌입니다. 공 캐릭터도 독보적으로 신선할 수 있었는데 소수의 에피소드를 제외하곤 매몰됐어요.    

출간된지 오래된 소설로 알고있는데요, 휴대폰 고리나 모닝콜 소리등 예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지만 딱히 몰입을 방해할 정도의 요소는 없습니다. 그 부분을 걱정하는 분이 계시다면 제 생각엔, 별로 거슬리지 않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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