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불빛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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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잘 받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인데 절판되어서 재출간되기를 기다렸던 책이기도 해요. 신문에서 재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어요. 책 표지에 얼룩이 있었지만 닦으니까 지더라고요. 이 부분은 좀 아쉬웠어요. 책 잘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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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 - 정규 1집
버스커버스커(Busker Busker)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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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전곡 다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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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7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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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요. 배송도 빠르고 책 상태도 좋아서 만족합니다. 기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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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이 바껴 있길래, 깜짝 놀랐다.  

스킨도 바꿀 수 있나 싶어서, 살펴보다가 서재 관리를 발견! 바뀐 스킨을 다시 바꿨다. 내 마음에 드는 스킨으로. ㅎ  

알라딘 블로그도 잘만 활용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될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도 하고, 좋은 책을 추천 받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종종 들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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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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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먼저 읽어볼 필요성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며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시공간을 새로이 구축한 소설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1Q84 역시 1,2권에서 덴고와 아오마메가 이야기의 화자로 등장하며 공을 주고 받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해간다.

사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사건에 대한 서술이라기보다는,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쪽에 가까워보인다. 덴고가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의 리라이팅을 맡았고,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점은 그러한 점에서 의미있게 살펴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은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1Q84에 등장하는 1Q84년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1Q84는 고독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자기만의 세계, 시간 안에 갇힌 그들은 덴고와 아오마메다. 1Q84년은, 시간이 정지해 있는 공간. 현실의 세계와 동 떨어져 있는 시공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3권에서 1Q84년이 일직선에서 벗어난 시간임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은 직선이 아니야. 어떤 모양도 갖고 있지 않아. 그건 모든 의미에서 형태를 갖지 않는 것이야. 하지만 우리는 형태 없는 것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없으니까 편의상 그걸 직선으로 인식하지. 그런 관념적인 치환이 가능한 건 현재로서는 인간 뿐이야." [1Q84 3권, 77페이지 중]

시간이라는 개념은 누구에게나 추상적이다. 그 추상적인 시간을 인간은 살아간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써야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NHK 수금원에게 값을 지불하고 시간을 파는 것이다. 덴고는 NHK 수금원으로서의 삶. 그 자체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경멸한다. 그가 커서도 TV를 집에 들이지 않았던 건 어쩌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기라는 세계에 콱 틀어박힌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를 그 세계 속에서 꺼내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하나의 세계 속에 하나로 녹아들게 할 수 있는지는 몰랐다.

1,2권을 읽고 나는 1Q84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그런 내 생각은 3권을 읽고 나서 더 분명해졌다. 1Q84에 등장하는 두명의 주인공,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를 너무나 원하면서도 하나로 합쳐지지 못한다. 두 사람은 가까이 있고 서로를 기다리면서도 늘 어긋난다.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람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지만.)그런 두 사람의 마음이 1Q84년에 등장하는 두개의 달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다.

덴고와 아오마메의 세계는 공허하다. 자기로 가득찬 세계 속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은 없기 때문이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이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왔고, 그런 이들에게 있어 유일하게 외부 세계(세상)와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서로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아오마메는 증인회신자인 부모님과 멀어지기로 결심하면서 이후 쭉 혼자 살았다. 덴고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너무나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1Q84년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Q84년은 두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인 동시에 이 세상과 단절된 그들만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 홀로 느끼는 1Q84년이었다.

후카에리가 선구에서 도망쳐 나온 여자 아이고, 후카에리로 인해 덴고가 아오마메가 있는 1Q84년으로 떨어진다는 설정은, 덴고의 마음 속에서 후카에리라는 여자 아이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아오마메에 대한 사랑을 이끌어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인간성의 상실은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저택의 노부인은 아오마메에게 다른 사람을 살해하라고 시키지만, 노부인의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복수에 가깝다. 돈을 벌기 위해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의 리라이팅 작업을 맡은 덴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후카에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후카에리의 공기 번데기라는 소설을 리라이팅해보고 싶다는, 자신의 손으로그녀가 쓴 소설 속 세계를 재창조해보고 싶다는 개인적 욕심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진정으로 그가 원했던 것은 후카에리가 쓴 소설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매력적인 상상의 세계를 글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아오마메 역시 노부인이 준 돈을 받고, 일을 했지만 돈이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구한다는 의미를 쫓는다기 보다는 그녀가 자신에게 보내주는 보살핌. 그녀의 부모에게서는 결코 받을 수도, 채울 수도 없었던 '마음 속 부모의 자리, 빈칸'을 채우고자 하는 것에 가까웠다. 1Q84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진실된 사랑의 마음을 찾기란 어렵다.

이들은 선구의 인물들처럼, 타인의 마음을 훔치고, 자신이 채우고 싶은 것들을 채운다.  

1Q84년은 두 개의 달이 떠 있는 세계. 혼란스러운 세계. 덴고는 그의 어머니가 공백과 관계하여 태어난 아이. 어쩌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공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그 공백은 결핍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가 공백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의 본질은.  

1Q84는 공백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공백은 결핍과 동의어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어떤 부분에서든 '결핍'을 가지고 있다. 인간 존재 자체가 완전하지 못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이 공백에서 출발한 이야기이다.

아오마메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에 의해 주말엔 선교 활동을 다니고 평상시 학교에서도 점심을 먹을 때 혼자 큰소리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바람에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된다.

덴고는 수학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뭐든 잘해서 반 아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곤 했지만 - 주말에 아버지를 따라 NHK 수금을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도 그 일로 덴고를 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덴고를 상대해주는 아이들도 없었다. 덴고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아오마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철저하게 외톨이가 된다. 덴고 역시 마찬가지다. 덴고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 들어가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하며 아버지 곁을 떠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마음은 어린아이인 채로 어른이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닿아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지 않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자신의 세계에 틀어박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철저하게 혼자고, 고독하다. 

덴고는 끊임없이 찾는다. 아버지에게, 사라진 어머니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는 대신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너의 어머니는 공백과 관계하여 너를 낳았고 그 공백을 내가 채웠다고.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란 덴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런 덴고가 마음 속으로 닿고 싶다고, 연결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직 단 한번 그의 손을 잡았던 아오마메 뿐이다. 

아오마메의 공백은, '종교'에서 비롯된다. 아오마메는 종교를 버렸다. 종교를 버리기 위해 가족도 버렸다. 종교를 버리기 위해 가족까지 버려야 하는 것이 그녀의 불행이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그녀는 억지로 노력했다.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그러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도망친다. 그리고 강한 척 하면서 살아가지만, 단 한번 손을 잡았던 덴고를 잊지 못한다. 그만이 자신의 사랑이라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인 믿음'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 어떤 종교든 이는 똑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나 천당은 똑같이 착한 일을  했을 때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하다. 그것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고 평화를 가져다주며 편안한 죽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 아니라 종교가 있음으로 인해서 이 세계의 질서와 법이 유지되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그것이 어떤 교리를 갖고 있든 '사람들에게 절대 선'을 추구하도록 권한다. 종교가 있기 때문에 - 사람은 조금이라도 착한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버렸다는 것은 - 선과 악의 구분과 경계가 모호한 세계에서 균형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오마메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아오마메의 혼란은, 그녀의 정신적인 부분을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던 종교적인 믿음을 거부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종교를 버림으로 인해서 그 누구와도 이어져 있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세계로 홀로 떨어진 것이다. 1Q84년에 말이다. 

아오마메가 1Q84년으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는 택시를 탄다. 조금 수상한 택시다. 택시 같지 않은 택시를 타고 그녀는 혼잡한 도로를 빠져나가 택시 기사가 알려준 비상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철책을 넘는다.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그것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철책을 넘는다는 것은 금기시된 어떤 것을 한다는 것이다. 1Q84년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다. 그녀는 상식을 벗어난 일을 하면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그녀의 삶은,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었다. 1Q84년에서 등장 인물들이 느끼는 혼란은 두 개의 달로 표현된다. 이는 어쩌면 정체성의 혼란일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 오직 목적에 의해서만 채워지는 삶. 진지한 고민도 성찰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삶을 이어가는 것.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어쩌면 공백 뿐인지도 모른다. 덴고는 고마쓰에 의해 별로 원하지 않았던, 공기 번데기의 리라이팅 작업을 하게 되고 - 아오마메는 버드나무 저택의 노부인에 의해서 숱하게 많은 남자들을 살해한다. 

그 대가로 주어지는 것은 '돈'이다. 아오마메와 덴고의 순결한 영혼은 '자본주의'사회에 흡수된다. 자본주의에 한번 흡수되거나 회수된 영혼은 상실된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다.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종교적인 믿음이 아니라 결국 서로를 강하게 이끌던 '사랑'의 마음이었다. 아오마메는 구원의 가능성을 덴고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서 찾는다. 그리고 덴고를 남겨두기 위해, 살아남게 하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아오마메가 자살할 경우 덴고는 1Q84년에 혼자 남는다. 아오마메의 자살은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해오던 다른 일들과는 달랐다. 기도문을 외운다거나, 사람을 살해한다거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남자를 만나 하룻밤을 즐긴다던가. 하는 일들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그것은 아오마메의 강한 자유의지가 들어가 있었다. 하나의 공백에 지나지 않았던 아오마메는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인간다움을 획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고독하다.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남을 짓 밟는 사람이 있고, 경쟁에서 뒤쳐져 좌절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 모두 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자본 주의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모두 하나의 톱니 바퀴의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톱니바퀴가 되어 열심히 움직여야만 이 사회가 굴러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거대한 산업의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랑'이다.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생각하는 마음.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를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걱정하고 그리워하면서 톱니바퀴로서 - 영혼의 공백을 껴안은 채 움직이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1Q84년에 떨어진다. 공백이 갖고 있는 무게는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 전체를 휘감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에게 있어 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고, 그들이 존재하는  세계와의 단절을 막아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사람은 홀로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다.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야 하고, 그 사람의 몸을 통해 영양분을 흡수 받아 온전한 사람으로 태어난다. 사람은 크든 작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당신과 나. 나와 당신을 이어주는 수많은 끈들이 어느날 떨어져 나간 상태. 그것이 1Q84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 공백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한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도. 조건 없는 사랑만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사랑의 마음 역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한 능력 중에 하나다. 아무리 잔악무도한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부모나,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조건 중에 하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마저도, 돈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결혼 상대자의 조건 중에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놓을 수 밖에 없는 세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가치 역시. 물질의 가치나 척도로 쉽게 등급이 매겨지고, 팔려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에서 1Q84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하나의 공백이다. 나의 공백은 다른 사람이 채운다. 덴고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리고 나는 또 다시 다른 이의 공백을 채워야만 한다. 당번처럼,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 서로를 사랑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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