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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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의자를 내어놓고 앉아 책을 읽기 좋은 가을이다.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는 그런 한가함을 즐길 여유 따위는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단풍 사진을 보며 구경이라도 하고 싶고, 느끼고 싶은 계절이 또 가을이기도 한 것 같다. 어떤 시는 소리 내어 읽었고, 어떤 시는 눈으로만 읽었는데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은 시집이었다.

 

그래서 천천히 읽었다.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울컥하게 되는 시가 있다. 이 시집의 어떤 시는 소리 내어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유도 모르게 울컥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예전에 이 시집에 수록된 '유모차는 힘이 세다'라는 시를 '아름다운 시의 나라' 카테고리에 소개한 적이 있다. 작년 여름이었다. 외가에 갔다가 할머니께서 "노인네들이 유모차를 왜 끌고 다니나 했었는데 그놈을 밀면 힘이 나. 그거에 의지해서 힘 빠져서 못 갈 걸 그 힘으로 나도 가는 것 같애"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머니와 대화 중이셨는데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 할머니도 많이 약해지셨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었다. '젊을 때는 아이를 태우고 나이가 들면 감자와 양파, 호박 같은 채소를 평등하게 태우고 다니는 유모차. 장바구니가 되는 것이고 의지할 수 있는 길동무가 되기도 하는 유모차. 그래서 유모차는 늙지 않는다. 탱탱한 바퀴로 한 생애를 버틴다. 그래서 시인도 유모차는 힘이 세다고 노래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리 내어 읽었던 시는 '좋은 술집'이라는 시였는데 마지막 구절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울고 싶은 마음까지 보듬어주고 싶어 문 닫은 방앗간을 사 들여서 술집을 내고 싶었던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 언저리가 저릿했다. 누구나 살면서 삶이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그럴때 짐승처럼 울부짖고 싶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겉봉에만 쓰는 편지는 답장 없는 편지로 죽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부의 봉투이야기였는데 이미 세상을 떠난 이와 그렇게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죽어/賻儀(부의)로나 한 번/돈 봉투를 받는구나'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서 아프게 닿았던 시였다.


시인은 이 시집의 제목으로 쓰인 '의자'라는 시에서 어머니의 말을 빌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라고 말했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자가 될 수 있고, 의자 몇 개 내놓고 살기도 한다. 뿌리가 들린, 불기운을 먹고 자라는 (풀뿌리의 힘) 이 生의 한가운데에 놓여지는 몇 개의 의자 같은 삶.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그 마음이 볕 좋은 날 내어 놓은 빨래처럼 따뜻함을 잔뜩 머금고 갈피마다 널려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의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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