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내 아이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며, 자신의 꿈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길 바라지 않는 분은 없겠지요. 사랑하는 만큼 힘들고, 조급해지고, 빠른 길로 인도해주고 싶은 맘에 다그치기도 하면서 말이에요. 제가 딱 그런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고비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오겠지만 첫째가 3학년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저는 하루하루가 안개 속이네요.
그런 저에게 '언어능력 키우는 아이의 말하기 연습' 이 책은 브레이크를 걸어줍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건너뛰려고 하고 지나치려 했던 그 길을 다시 한번 돌아보라고 권해주네요. 마음이 차분해져요.
책을 읽어 내려가며 제가 아이와 해볼 수 있는, 해줄 수 있는, 해야만 하는 너무나 많은 예시들이 보였습니다. 지금껏 아이와 대화하며 또는 책을 읽어주던 순간순간 느꼈던 저의 막막함, 답답함, 궁금증들이 상당 부분 해소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 신효원님이 17년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우리말을 외국어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잠재되어 있는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란 것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굳은 결심을 해야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라 더욱 반갑네요.
전체 내용은 총 4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부에서는 모국어 습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됩니다.
2부에서는 아이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책읽기 방법을 소개합니다.
3부에서는 입력과 출력의 균형을 강조하며 말하기를 이끄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4부에서는 집에서 아이와 할 수 있는 다양한 말하기 훈련법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한국에 온 성인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보며, 그들의 한국어 학습은 모국어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초급 단계에서는 큰 차이가 드러나지 않다가 단계가 높아질수록 모국어 실력으로 점차 그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죠. 저는 엄마표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요즘 많은 컨텐츠들을 접하고 있는데요. 성공적인 영어 학습을 위해서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꾸준한 독서입니다. 이는 곧 수준높은 모국어가 영어 학습에도 필수라는 것이겠죠.
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가진 언어능력으로 공부를 해 나가고 학업을 이어가기 때문에 모국어가 탄탄하지 않으면 많은 시간 공들여 배우는 영어도, 앞으로 하게 될 그 어떠한 학습도 어느 한 지점에서 향상을 멈추거나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거라고 합니다. 영어 공부 때문에 한국어를 접하는 시간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아이에게 결코 학습적으로 어떤 면에서도 득이 되지 않고, 어린 시절에 양질의 모국어에 충분히 노출되어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의 학습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초등 3학년부터 교과 과정에 영어가 들어가다보니 저도 요즘 영어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각종 숙제 폭격과 레벨이라는 장식에 끼워 맞춰진 아이의 혼란이 걱정되어 엄마표 영어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또 한번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영어를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충분한 모국어 습득에서 나오는 것이라는거죠. 뿐만 아니라 지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니 모국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습니다.
아이는 자라는 동안 <빈도의 법칙>에 의해서 가장 자주 접하는 사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의 언어 수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을 강화하게 되는데, 부모가 아이의 생의 초기에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아이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이와 식사를 하며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것도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된다고 하네요. 아이가 모르는 새로운 표현이나 어휘들을 은근슬쩍 끼워 넣어 배울 수 있게 할 수도 있구요. 사실 아이들은 항상 '아무 말 대잔치'를 하죠. 그럴 때 종종 아이를 나무라며 밥 먹기에 집중하라고 핀잔을 준 적도 있어서 아차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차를 타고 가거나, 국수 집에서 줄을 서있거나 할 때에도 그냥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다양한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하고, 새로운 단어를 써가며 대화를 끌어가고, 연상되는 단어들을 주고 받는 간단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끝말잇기와는 또 다른 방법이라 어린 아이들도 얼마든지 참여할수 있겠어요.
독서를 통해서도 어휘력, 문해력, 사고력, 나아가 지식도 챙기게 되고, 공부도 잘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데요.
아이와의 책읽기 상황에서 주의할 점들이 있습니다.
한글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글자에 집중을 시켜서 아냐 모르냐 물어보고,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들에게는 그래서 내용이 뭐냐, 이해를 했냐 못했냐는 확인 질문으로 다그치는 경우들입니다. '책=공부'라는 공식이 각인되지 않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겠습니다.
아이가 책을 읽다 다른 방향으로 이탈하거나 부모의 뜻대로 끝내지 못한다 해도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사소한 발견이라도 칭찬해 주고, 동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면, 바로 그 뜻을 알려주지 말고, 그 문장에서 유추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더욱 좋습니다!
저자는 '입력과 출력의 균형'도 강조하고 있는데요. 아이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학습에 임할 수 있게 하고,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서 입력의 수준과 양을 정해야 합니다. 바로 무리한 선행을 지적하는 부분인데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학습의 입력이 지속될수록 아이들은 무기력해지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입력된 것을 언어로 출력할 수 없다면, 이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입력한 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봐야 언어능력도 입력 수준에 걸맞게 점차 향상되는 것이죠. 언어 출력의 기회가 없으면 도리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웃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면 아는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유도하고, 흥미를 보여주며, 반대 의견도 언제든지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입력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아이의 말에 맞고 틀리는 것은 없기 때문이죠.
이 부분을 읽고 참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남의 집 이야기라면 '아이고, 왜 저렇게 말을 하지.. 대답 좀 해주지.' 하겠죠. 하지만 우리 실상은 어떤가요? 정신없이 비교하며 선택하고 점원에게 질문을 할테고, 애가 어디 안보이는 곳으로 가지는 않는지 살펴야 하고, 시간은 없고, 남편은 빨리 가자고 눈치주고 ㅎㅎ
현실은 어려워요. 그래도 또 노력을 해야봐 하지 않겠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저 아이의 말을 반복하거나, 놀라움을 표현해 주거나, 궁금하다는 뉘앙스만이라도 주면 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흥을 깨며, '너의 말은 별거 아니다.' 라는 느낌을 주지 않도록 하자구요!
아이가 일기를 쓴 것을 볼 때,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여행간 경험을 쓴다고 했을 때 출발해서 어디 들렸었는데,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생각보다 매끄럽게 연결해서 쓰고 짧지만 강렬하게 그 순간의 느낌을 표현하기도 하더라구요.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하는 것은 현재와는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적, 공간적 맥락까지도 청자에게 시간 순서에 따라 설명을 해야 '서술을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갖춘 서술 능력은 학교 공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학습이라는 것은 당장 내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지금 이곳과 상당한 시,공간적 거리의 맥락을 가진 이야기인데, 이 맥락의 거리를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이 책이 가장 좋은 이유는 책에서 소개하는 아이와의 말하기 활동이 생활 속에서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것입니다. 가성비가 정말 좋아요. ^^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앞에서 쭉 소개했던 다양한 말하기 연습법들을 모아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이 부분을 참고하면서 아이와 대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하는 어떤 말도 훌륭한 놀이가 될 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는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이 책은 저희 교육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저의 철학대로 이끌어 가는데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었어요. 아이의 말하기 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결국 부모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방법 또한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부분들임을 확인하니 당장 의욕이 살아납니다. 용기를 주는 책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