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니즘 - 웃음과 공감의 마음사회학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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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니즘유머휴머니즘의 조합어다. 인간의 존엄을 세우면서 더 나은 삶을 빚어내는 유머, 놀이와 웃음으로 표현되는 탁월한 인문정신이다.

 

개그맨들이 아프리카 원주민 복장을 하고 나와 우스꽝스러운 언행을 늘어놓는가 하면, 어눌하게 말하는 이주 노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적 장애인, 뚱뚱한 사람, 한부모 가정 등이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p.158) TV 코미디 프로그램뿐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여성이기에 어리기에 아랫사람이기에 아슬아슬한 농담을 웃어넘겨야 하기도 하고, 단식농성장 옆에서 폭식 투쟁을 통해 다른 이를 조롱하며 즐기는 이들도 있다.

 

함께 웃지 못하는 웃음은 폭력이다. (중략) 한쪽에서는 고통에 시달리거나 수치심에 빠져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희희낙락하는 구도”(p.45)는 흔한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저자는 새로운 사회의 실마리가 유머니즘에 깃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웃음의 기원, 유머의 개념과 역사, 유머 감각의 본질, 건강한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조건, 유머의 정신이 현실과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풀어낸다.

 

유머는 삶의 무늬이자 인격이다”(p.19)라고 말하는데, ‘인문학은 곧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인간이 그리는 무늬(최진석, 소나무, 2013)가 겹쳐지고,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p.33)라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인용한 부분에서는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행복의 기원(서은국, 21세기북스, 2014)이 겹쳐진다. , 유머를 대상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보는 이의 해석과 느낌이 예술을 성립하게 하는 근거라는 예술의 본질과 비유한다. 이렇듯 유머는 인문학, 행복,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기에 새로운 사회의 실마리로 삼을 만하다.

 

아돌프 히틀러와 찰리 채플린은 동갑내기였고, 나비넥타이 모양의 콧수염을 하고 있었다. 미디어를 십분 활용하여 대중을 사로잡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방향은 정반대였다. 히틀러가 전쟁을 선동했다면, 채플린은 평화를 전파했다.”(p.199) 그 차이는 히틀러는 허구를 사실인 것처럼 보여주지만, 채플린은 허구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택한 행위가 허구임을 숨기지 않”(p.242)았다는 것이다. 탁월한 유머 정신은 세상을 이토록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저자 김찬호는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모멸감, 눌변, 생애의 발견등이 있다. 특히 모멸감(문학과지성사, 2014)은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했다. 텍스트를 바탕으로 열 개의 곡을 QR 코드로 함께 수록했다. 작곡가 유주환은 원고를 읽으면서 각별한 느낌으로 머물게 된 대목 열 군데를 선정해 곡을 썼다. 저자의 말과 작곡가의 음악을 함께 읽고 들으며 전두엽의 시냅스가 활발히 활동함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 2013), 진격의 대학(문학동네, 2015) 등을 저술한 사회학자 오찬호와 헷갈렸다. 찬호라는 이름의 두 명의 사회학자, 박찬호처럼 투머치 토커임이 확실하다. 유머와 모멸감, 대학 등 하나의 키워드로 꾸준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의 표지에는 다양한 유머의 상황이 나열되었다. 배를 잡고 뒹구는 사람, 아랫사람에게 웃음을 강요하거나 희롱하는 사람, 여럿이 모여 웃지만 홀로 불편해하는 사람. 우리 생활에서 있을법한 유머의 상황들이 그려져 유머니즘이 어떤 상황에 필요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뒤표지에 유머니즘의 정의를 밝히고, 지금 왜 유머를 말하는지, 유머는 스킬이 아니며 오늘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시대정신임을 간명하게 설명해두었다. 뒤표지만으로도 책의 주제를 선명히 알 수 있다.

 

건배사를 외워 회식 자리에서 써보지만, 암기력 외에는 칭찬받지 못했거나, 소개팅을 앞두고 인터넷에서 급하게 익힌 에피소드를 내 얘기처럼 해 보았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거나, 회사에서 아랫사람에겐 박장대소를 얻었어도 뒤돌아서 알 수 없는 헛헛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유머 감각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호감과 매력을 주는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유머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품성이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사회적 지혜이기 때문이다.”(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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