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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 이대 (외) ㅣ 베스트셀러 한국문학선 33
하근찬 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이런게 아버지의 마음인 것 같다. 넓고 위대함 같은 마음. 한쪽 팔을 잃어 버린 자신 앞에 나타나 한쪽 바짓가랑이가 흩날리는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 안쓰럽기 만한 아들. 그런 아들 앞에서 두 눈 가득 눈물을 쏟아내고도, 외다리로 살아가야 할 아들의 삶을 걱정해 주는 아버지. 어찌나 슬프던지……. 그토록 그리던 아들이 한쪽 다리로 힘겹게 오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한쪽 팔을 잃어 그 아픔이, 고통이 어떤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였기에 자기가 한쪽 팔을 잃었을 때의 아픔보다 더욱 큰 아픔과 고통이 였을 것이다.
참으로 비극적이 다고 볼 수밖에 없었던 작품 <수난이대>, 우리민족 모두의 아픔과 고통, 비극을 느낄 수 있던 작품 <수난이대> 이지만, 이런 삭막함과 슬픔을 덮어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마음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기도 했다. 자식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가끔 자식을 위해 좋은 말 한마디 던져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지고, 또 앞으로 세상의 편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두 부자의 안타까움이 가슴 깊숙이 다가왔다. 아들만이라도, 아버지만이라도 그럼 아픔을 겪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안타깝고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 우리에게는 그 아픔과 시련의 기억이 없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요즘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의 상황을 보면 아무 걱정 없어 보이지만 근심 가득한 만도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징용 터에서 겪어야 했던 아픔. 6.25 전쟁에 나간 진수나 그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만도의 초조한 마음 같은 것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많이 생각하게 된 부분이 바로 전쟁이다. 이번 미국과 이라크 전쟁으로 만도와 진수의 아픔을 똑같이 겪을 여러 사람들을 생각하면 절로 우울해지곤 한다.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무엇을 위해서 사람보다 어떤 중요한 것 때문에? 몸의 일부분을 나라에 바치고 돌아온 그들에게는, 전쟁 직후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절망.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 각박함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업어 줄 수 있는, 극한 상황에서는 힘이 되어 나라를 돕고, 결국 그렇게 희생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서민이었기에, 단지 그 하나의 이유로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술로서, 세상을 비난하는 일로서 풀어야 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수난을 극복하려 했던 의지. 그리고 그보다 더 강했던 부자간의 사랑. 개울가의 외나무다리에서 일어난, 아무렇지도 않은 마무리 대목이었지만, 말로 표현 하지 못할 감동이 그리고 안타까움이 울컥 눈물이 치닫게 하는 문학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땅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무래도 가장 낮은 곳, 묵묵히 말없이 노력하는 서민들의 땀방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체의 일부분은 비록 모자람이 있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더 따듯하고, 훌륭한 만도와 진수 부자.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것을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또한 우리나라도 요즘 이런 저런 루머에 휩싸여 있는데 미국과 이라크와 같은 전쟁이, 만도와 진수가 겪었던 아픈 과거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