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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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글항아리

"또다시, 나는 다르게 읽게 되었다. 내가 읽고 또 읽은 책들을 꺼내 다시 읽었다."

균열이 아물고 부분들이 합체되고 연결에의 갈증이 기가 막히게 해갈되어 잘 작동하게 된, 통합된 실존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기도 한
책을 다시 읽는 일은 존재했던 나 자신을 다시 쓰고 또다시 고쳐 쓰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정확히 누구인가? 라는 이 질문에 마주하기 위해,
분열된 자아들을 통합해가며 '최선의 자아'에 다가서려고,
우리는 다르게 읽는다.
그렇기에 끝나지 않은 일이다.
___

#책속의한줄

📖 그 무엇도 책에는 비길 수 없다. 문학작품에는 일관성을 갈구하는 열망과 어설프고 미숙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하려는 비상한 시도가 각인되어 있어, 우리는 거기서 평화와 흥분, 안온과 위로를 얻는다. 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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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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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를, 망망한 삶을 건너가고 있는 이들이 있다.
'죽음이 흔해져버린 세계에서,
국가가 스스로를 방기한 세계에서,
잔여물들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불안과 우울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그럼에도.
모수를 상실한 연과 한나를 헤어진 천이 그러하다. 연과 천은 '사랑하는 모수와 한나와 함께하는 나' 역시 상실하고 말지만 스스로를 방기하지 않는다. 자기 안으로 침잠해 각자 '모수와 한나와 함께 나눈 대화'를 곱씹으며 다음 구름을 기다린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라고 중얼거리며.
연과 천은 단지 살아있음으로써 언젠가 구름 사이로 나오는 빛이자 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서 내뱉는 그들의 중얼거림이 좋아,
살아서 빛 그리고 쉼을 찾아가는 그들이 좋아
괜스레 따라 해본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___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 연의 중얼거림이 듣기에 좋았고 듣기에 좋은 것은 따라 하기에 좋을 따름이었다.
천이 제 말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천도 연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평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평선 너머의 망망대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연은 몽상가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니고 옛사랑을 추억하는 사람도 아니고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었는데, 그것은 천도 마찬가지였다. | 154

📰 [조용호의 문학공간|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中]
재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을 '단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쓴다. 이장욱은 "이 인물들이 어쨌든 살아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살아있음으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성을,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침잠은 한없이 가라앉는 절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그것'을 기다리는 일이라고 썼다.
"어떤 절망 내지는 상실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 더 깊이 들어갔을 때, 우리가 기다려야 할 무엇이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비관이나 절망이, 그냥 거기에 머무는 상태가 아닌 거죠.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건 삶 자체라기보다 죽음이라고 하는, 삶의 외부라고 생각합니다."
_____

#책속의한줄

📖 "말 없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안됐지. 하지만 안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안됐다는 것도 의미 없는 말이 돼버렸어요."
안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안됐다는 게 의미 없는 말이 돼버릴 수도 있나요.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죽음이 의미 없는 말이 돼버릴 수도 있나요. | 37

📖 궁금한 게 있다는 것은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모수는 말한 적이 있고 그건 전적으로 타당한 말이라고 연은 생각했다. 그렇게 궁금해하는 힘으로 얼마간은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연은 생각했다. 그것이 좋다고 연은 또 생각했다. | 46

📖 "창밖을 오래 보고 있으면 크레인이 보이고 폐공장이 보이지만 또 수평선도 보이잖아요. 수평선이 점점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여관에서는 그런 것이 좋아. 그런 것이 좋지. 일이 많아서 힘이 들어도 그런 것이 좋으면 되는 거예요." | 50

📖 예상을 성실하게 하면 어떤 일이든 생각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런 건 모수가 생전에 했던 말이었다.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예상을 아무리 해도 죽음은 그렇지 않을 텐데. | 81

📖 나무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고 태양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느낌이었다. 사막이란 모래와 허무로 가득한 낭만적인 땅이 아니라 햇볕을 피할 곳이 없는 황무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가 한나가 이렇게 말했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에서." | 126

📖 죽음이 흔해져버린 세계에서, 국가가 스스로를 방기한 세계에서, 잔여물들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불안과 우울만이 남아 있는 세계에서, 바닷가를 산책하는 그이들을 상상했다. (…) 그이들은 햇빛 속에 잠겨 들듯 더 깊은 물 속으로 침잠해갈 것이다. 그곳에서도 무언가가 발견될 것이다.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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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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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가 석현이 기획하는 그룹 미술전시에 참여하는 네 명의 인물 화영, 우주, 보라, 정수.
네 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 티저북에는 우주 이야기가 나온다.
학창 시절부터 자신이 누군인지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한 우주. 이대로 평생 살아가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말하고 싶다면 할 수 있도록 말하지 않고 싶다면 하지 않아도 되도록 조용히 기다려주는 '석현, 화영, 보라, 정수' 그들과 함께하며 우주는 이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각자가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로 이루어진 전시가 끝난 후 아픔을 아는 계속 곁에 서 있을 네 명만의 다정한 관계가 어떻게 이어질지, 그 다음 이야기를 얼른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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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한줄

📖 왜 그만뒀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기다렸다. 말하고 싶다면 할 수 있도록, 말하지 않고 싶다면 하지 않아도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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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나는지금도거기있어 #티저북 #북클럽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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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5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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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는 우리 존재에 선행하는 이름과 결별하는 과정을 담는다. 장례를 '현존하는 죽음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작가님은 이번 책에서 주어진 이름이자 죽은 이름의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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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죽은 자와 결별하는 과정이다. 결별은 완전히 떠나보내는 일이기도 하고, 흔적을 간직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장례가 관념이 아닌, 현존하는 죽음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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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주어진 이름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얻는다고 착각하며 우리는 그렇게 자유를 속박 당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벗어나고 싶은 인생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K는 희정으로 희정은 K로 재인은 승미로. 강제성을 지닌 이름을 없애면 우리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에 다다를 수 있을까.
희정은 K가 쓴 문학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고, 승미는 아버지 K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으로 고통을 안고 산다. K의 두 번째 죽음으로 K의 삶을 살고 있는 희정과 승미가 된 재인은 자신에게 주어졌던 이름이자 삶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점차 해방되어 간다. 비록 온전하지 않더라도.
아무리 벗어나고 싶은 삶을 산 이름이어도 여전히 현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오롯이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언제 어떤 슬픔이나 고통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고작 꽃의 무게에 늘어지는 가지나 부드럽게 너울대는 잎의 그림자 따위에 잠 못 드는 밤'과 같이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무언가로 인해 살아갈 수 있음을 작가님이 마련한 '죽음의 자리'에서 명징하게 느낄 수 있다.
온전한 자유는 꿈꿀 수 없을지라도 자신을 다독여주는 것들의 목록을 늘려가면서 하루를 잘 보내면 내가 나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음을. 그것이 죽음을 정직하게 바라본 작가님이 알려준 좋은 일들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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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한줄

📖 처음에는 내 인생에 무슨 간섭인가 싶었지만, 대단한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서는 별 반발심 없이 웃어넘길 수 있었다.

📖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디까지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을까. 나는 타인에게 이해를 구하는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살았다. 내 인생의 대의나 가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 죽음은, 이별은, 소멸은 간단히 추억으로 교환된다. 갈등과 분노는 안타까움과 위무의 기도에 침윤된다. 소멸한 자의 슬픔과 번뇌에 목소리가 주어진다. 죽은 자가 죽기 전에 쌓은 악덕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서사가 부여되고, 그의 죄는 그와 함께 소멸한다. 남은 자들의 고통은 재갈을 물고 신음한다. 책임을 묻거나 싸울 수는 없고, 소멸을 되돌릴 수도 없어서,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통증 같은 것을 귀중한 보물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산 자들의 세계는, 그렇게 산 자들의 평화를 지속한다.

📖 노트 속의 세상이 어쩌면 내게는 유일한 자유였다.

📖 언제나 정직하기에 그만큼 농밀한 문장을 끊임없이 써내려가는 작가가 내내 자유롭기를, 그 자신이 늘 원했듯, 실제로 죽지 않고 죽음에 육박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용기 내서 책상에 앉아주기를 바란다.

📖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라도 이 소설을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든 생각에 관한 것뿐인지도 모르겠다. 내 정체성을 구성한다고 믿었던 '나'라는 존재에 대한 섬세한 정의들이 그 무엇보다 내게 배타적일 수 있다는 것. 나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려는 자기동일성의 환상에 저항하기.

📖 그러나 나를 속박하는 조건들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곧 해방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오직 문학만이 내게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설을 통해서만 상상 가능한, 연루되어가는 감각으로서 자유. 결코 결백해질 수 없는 삶을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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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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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타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자 하는 작가님에게 무한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작가님 신작이 나오다니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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