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한 날엔 키에르케고르 필로테라피 4
다미앵 클레르제-귀르노 지음, 이주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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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누구나 한번쯤 절망의 시기를 맞는다. "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 했는데?"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다가오는 절망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라 일러주고 싶다. 아직 많은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나도 절망의 시기를 몇번이나 넘겼다. 예전에 나에게 찾아온 절망의 시기가 생각났다. 술독에도 빠져보고, 방안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을 허투루 낭비하고, 몇년을 허송세월을 보냈던 끔찍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기에 절망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고, 그저 회피하기만 했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그저 불편한 감정이 아닌, 그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라고 얘기한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절망을 받아들이고 그와 대면함으로써 나의 존재와도 마주한다. 그리고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이 얼마나 뜻깊은 시간인가..생각해보면 내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절망적인 시간들은 나를 한단계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켜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의 '실존주의적 철학'은 어려운만큼, 매력적인 철학이론이다. 그러나 그의 맹목적인 종교관념은 거부감이 일어난다. 나는 종교를 사랑한다. 종교로 인해 남겨진 예술,사상과 학문들,유적지들은 찬양한다. 그렇지만 나는 신앙심이 눈꼽만큼도 없다. 완전 무신론자이기때문에 '신'의 존재자체를 믿지않고 거부한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의 종교에 관한 연설을 듣다보면 길가에서 붙잡고, 하나님믿기를 강요하는 노인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은 언짢은 기분이 든다.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죄를 인식한다고해서 굳이 신에게 고해성사를 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더욱이..  기도라는 의식은 굉장히 좋은 문화이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을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망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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