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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머시기 - 이어령의 말의 힘, 글의 힘, 책의 힘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이 책은 시대를 뛰어넘어 글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p.7 머릿속에 언뜻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밤과 낮 사이의 노을처럼 어렴풋이 빛나는 것들. 그런데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슴속에 잔잔히 흐르는 것이 있다. 물과 빛 사이의 안개처럼 번져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 형상을 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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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두께를 보고 주저하게 된다면, 책의 목차를 보고 보고 싶은 내용을 골라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나만을 위한 강연처럼 말이다!
실제 강연 내용을 모은 책이다 보니, 휘몰아치게 읽지 않아도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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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과거이다.
p.28 한국인은 기쁠 때도 슬플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슬퍼 죽겠다”는 말과 함께 “좋아 죽겠다”라는 말도 씁니다. 죽음은 부정이 아니라 극상의 긍정어가 되기도 합니다. … ‘죽음’이라는 말을 유별나게 쓰고 있는 한국 문화의 특성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문화가 ‘죽음’에 대해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고, 아 우리의 죽음은 비단 부정적이지 만은 않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 세계 여러 나라들은 금기어로 되어 있는 ‘죽음’이라는 단어, 한국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김소월의 <진달래꽃>, <햄릿>의 ‘to be or not to be’가 ‘사느냐 죽느냐’가 아닌 ‘죽느냐 사느냐’로 번역하는 이유도 재미있었다!)
p.32 이처럼 ‘죽음’을 이용하여 무엇을 강조하거나 그 극한적인 부정을 통해서 오히려 긍정을 끌어내는 역설을 나는 ‘헴록 효과’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 ‘죽다’의 반대말은 ‘살다’이고 ‘살다’의 구체적인 행위는 먹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헴록은 죽음을 나타내는 것이면서도 그 정반대의 삶의 동사인 ‘먹다’와 관련됩니다. 헴록은 죽는 것이며 동시에 먹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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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자)에 대한 현재로 가보겠다.
출판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부분이 특히 좋았다. 책, 글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 대해 말을 하는 것. 우리가 글을 찾는 이유, 찾을 이유, 만들어가는 이유, 만들어야 할 이유를 고심하게 된다.
P.57 책은 자연적 사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기호의 총체, 그 결정체인 까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은 그 내용물과 관계없이 항상 ‘자연주의’에 대한 ‘문화주의’의 축으로 기울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지금껏 책이 아니라 책을 만든 비용에 대해서 그 대가를 치러온 것인데도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원래 정보와 지식은 상품으로서의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격 시스템이 아니라 가치 시스템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요.
P.96 흔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종교라고 말이지요. …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시란 무엇인가를 시적 이미지와 은유로 표현하면서 “시란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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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글자 (책)과 함께하는 미래는 어떨까?
저자와 함께 강연을 진행한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말한다.
p.145 어떤 사람이 제일 책 많이 읽는지 아십니까? 책을 만들거나 쓰는 사람들입니다. 책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책 만드는 세계에 있는 분들이 책을 압도적으로 많이 읽지요. 그다음으로는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습니다. 책을 제일 많이 읽는 시기는 학창시절입니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책과 전혀 관련 없는 세계에서 일하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게 됩니다.
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딜레마는 이전부터 있었다. ‘과연 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책을 읽는 사람은 사실 책을 쓰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이 가슴에 콕콕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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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미래를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
p.171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라는 책 처음 부분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은 정말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안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존재하는 한 책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나의 뿌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책을 통해, 글자를 통해 얻은 지식을 토대로 우리가 성장할 수 있게끔 노력한다.
그것이 어느 분야의 지식이라도 양분이 되어 도움이 될 것이다.
중간중간 한국어와 더불어 라틴어, 영어의 예시가 나올 때 눈을 반짝이며 읽게 된다. 대학교 교양 수업을 재밌게 듣는 기분이었다.
한국어에 주어가 없는 이유, 영어에는 주어가 있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인용한다.
몸이 하나라 두 길을 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내려가는 한쪽 길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말할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우리가 인생에 있어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살면서 경험하는 무수한 선택의 갈래 중에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