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 - 조현병 환자의 아들들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
수잔 L. 나티엘 지음, 이상훈 옮김 / 아마존의나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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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가슴을 졸이며 100일 넘게 바이러스로부터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려 함께 노력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가족인 240여명은 세상을 떠났고, 며칠 전에는 역시 누군가의 가족인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불길에 휩싸여 목숨을 잃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지켜낸다는 것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때로는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우리는 그저 무기력한 존재라는 생각에 이제껏 버텨왔던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이런 상황 자체가 일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특히 '부모가 환자'이고 '그 가족이 자녀'일 경우,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자녀들이 겪게 될 내적 외상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듯하다.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은 '조현병 환자의 아들들이 들려주는 열두 가지 이야기(부제)'이다. 심리치료사인 저자 수잔 L. 나티엘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부모를 가진 열두 명의 아들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저자 역시 어머니가 조현병을 앓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됐고 

이 책에 앞서 딸들의 이야기를 다룬 <광인의 딸>을 썼다. 아들 버전의 두 번째 책을 쓰게 된 것은 출판사의 제안도 있었지만 자신의 오빠가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사실도 중요한 집필 동기가 됐다. 


정신질환을 앓는 부모를 가진 자녀들은 가정과 가정 밖에서 내적, 외적으로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가정에서는 대개의 경우 그 일에 대해 침묵하거나 비밀에 부치면서 가족간의 신뢰와 연대감을 키울 여건을 상실하게 되고 가정 밖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에 소외되어 상처받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못한 채 자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고 자기도 부모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의 이야기에서 얻은 해답 중 하나는 '회복탄력성'이다. '회복의 순간을 붙잡는 아이들의 능력'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능력이 자녀들의 삶을 관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반복해서 들려주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그 일은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부모와 부모의 병을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무엇이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개방성, 자유로운 대화, 그리고 이해'에 달려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한 책을 펴냈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의미있는 일이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 책이 돋보이는 점 중 하나는 이 책을 옮긴이와 편집자의 전문적이고도 창의적인 시선이 주제에 대한 이해를 한층 높여준다는 것이다. 원서를 읽지 못해 비교해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저자가 한국어 버전을 본다며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만족했을 듯싶다. 서구적인 

접근방식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이런 노력을 통해 

좁혀지고, 옮긴이가 챕터마다 들려주는 후기를 통해 한국 현실에 맞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들을 마주할 마음의 항체를 만들게 되고 

그 자체가 집단 면역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조금은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집단 면역'이라는 말이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결국 누구도 섬일 수 없으며 율라 비스가 <면역에 관하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늘 서로의 환경이며 세상은 우리가 함께 가꾸는 경계없는 정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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