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의 응답 - 우리가 궁금했던 여성 성기의 모든 것
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김명남 옮김, 윤정원 감수 / 열린책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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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중이라고 해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의 생식기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니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초경에 겁을 먹기도 하고, 잘못된 상식으로 몸에 해로운 선택을 할 때도 있다.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문화와 종교와 정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가부장제 문화가 뿌리 깊게 스며든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여성기에 대한 지식은 겉으로는 볼 수도 없는 자궁의 생식기능이 대부분이며, 실생활에 유용한 피임법이나 성병의 증상은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하는데, 가정에서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함께해온 기관인데,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의 성기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는 채로 2차 성징을 맞이한다. 팬티만 내리면 보이는 남성기와는 다르게 가랑이 사이 깊숙이 있는 여성기는 거울로 봐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포르노나 성기 성형 광고를 보고 자신의 성기 모양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에 충격을 받는 여성도 있는 듯하다. 자신의 몸과 친하지 않고, 잘 모르니 확신이 없어 흔들린다. 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들을 의사와 상담하기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엉뚱한 질문인 것 같아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의사의 성별이 다르면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결국 대부분의 궁금증은 인터넷의 익명 게시판과 커뮤니티로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전문가보다 비전문가가 더 많은 인터넷이야말로 수많은 낭설과 미신들이 떠도는 곳이다. 인터넷에 질문을 올리는 모든 여성들이 그것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조금이라도 불안을 잠재울 공간이 인터넷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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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이 잘 되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나이가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우선, 전체 불임 사례의 3분의 1은 남자가 문제다. 남자의 나이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자신의 몸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모든 여성들이 바이블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여성의 성기인 질, 그리고 여성의 신체에 대한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의미를 합친 유쾌한 제목과 마치 생리대를 연상시키는 표지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의사와 의대생이 함께 쓴 이 책은 가볍고 유쾌하게 여성의 신체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생식기, 젠더, 생리, 분비물, 섹스, 성욕, 오르가슴, 피임, 임신 중단, 성병, 불임, 난임, 유산, 성기 훼손 등, 여성의 성기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요소를 다루는 이 책은 떠도는 낭설을 유쾌하게 깨부수고 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응원한다. 자신의 몸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서 오는 자신감, 불특정 다수가 끼얹는 죄책감과 속박을 걸러들을 수 있는 지성을 준다. 이 책은 고민에 드는 수많은 시간을 책 한권으로 줄여준다. 이 책은 충분히 우리의 일상을 바꿔준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호르몬 피임제에 대한 기술이었다. 같은 호르몬 피임제라고 해도 종류가 다양했으며, 우리는 몸 상태와 성향에 맞춰 피임방법을 고를 수 있었다. 주석에는 저자들이 설명하는 호르몬 피임제 종류에 따른, 우리나라에서 팔고 있는 피임제 이름이 친절하게 기술되어있었다. 호르몬제 부작용은 존재하긴 하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으며, 오히려 암 발생률을 낮춰주는 긍정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사용 중에 혹여 몸이 안 좋아지면 의사와 상담해서 피임제 종류나 피임법을 바꾸면 되는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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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클라미디아균, 미코플라스마균, 임균은 콘돔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HPV와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피부 접촉으로 전달되므로, 콘돔에 가려지지 않은 부위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도, 청소년도, 특히 남성들도 이 책은 꼭 한번 읽어야 한다. 정확한 지식이 부족할수록 자신의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모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의 파트너가 남성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남성의 성병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남성들이 잘 모르거나 흔하게 하는 오해들을 정확한 지식으로 깨부순다.

 

* 성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콘돔밖에 없다는 것,

* 성 매개 감염병은 걸린 지 오래되어도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둘 다 감염되어도 모를 수 있다는 것.

* 15~19세와 20~24세 집단의 수치를 보면 검사를 실제 받는 사람들 중에서는 남성이 클라미디아증 양성판정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

* (모두 알다시피) 사정 직전에 성기를 빼려고 해도 직전이 아니라 직후에 성기를 빼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

* 여성은 남성과 성욕의 메커니즘이 달라서 여성의 성기가 붓고 젖었다고 해도 여성이 성욕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 여성의 성기를 통해 성 경험 여부를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무관심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야한 만화만 봐도 남성의 음경이 여성의 자궁 안으로 들어가는 연출은 자주 사용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도 음경이 여성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처럼 암시된 대목이 존재한다. 이런 환상이 환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포르노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는 여성 본인의 상식까지 왜곡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이 책은 이런 어처구니없는생각들을 유쾌하고 산뜻한 팩트폭행으로 깨부순다. 독서 중에 폭소할 정도로 웃겼던 본문 일부를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치겠다.

 

"대부분의 여성은 자궁이 배꼽을 향해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질과는 약 90도 각도를 이룬다. 음경이 자궁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발기한 음경은 구부러지지 않는다. 억지로 굽혔다가는 꺾일 것이다. 음경은 곡예사가 아니다!“

 

질의응답니나 브로크만엘렌 스퇴켄 달 지음, 김명남 옮김, 윤정원 감수, 열린책들

대부분의 여성은 자궁이 배꼽을 향해 앞으로 기울어져 있고, 질과는 약 90도 각도를 이룬다. 음경이 자궁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발기한 음경은 구부러지지 않는다. 억지로 굽혔다가는 꺾일 것이다. 음경은 곡예사가 아니다!


HIV, 클라미디아균, 미코플라스마균, 임균은 콘돔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HPV와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피부 접촉으로 전달되므로, 콘돔에 가려지지 않은 부위를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나이가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 우선, 전체 불임 사례의 3분의 1은 남자가 문제다. 남자의 나이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리 중이라고 해서 임신이 안 되는 것은 아니고,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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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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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아버렸다, 나는, 아직 그녀가 죽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221 (스포일러O)

 

질풍노도의 시기는 매력적이다. 짧기에 강렬한 그 시절의 추억은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학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생에게 친구란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는 소울메이트, 서로의 고난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운명공동체이다. 어른이 되면 웃어넘길 수도 있는 좁은 인간관계를 겪으며 이리저리 휘둘리고 전력으로 고민하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이다. 1년이 끝나면 다른 반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졸업 후에 더 이상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 모른다는 불안. 타임리밋이 있기 때문에 학창시절의 관계는 긴밀하다. 불안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들의 갈등과 화해, 실패와 극복은 어른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청소년에게는 공감과 응원을 불러일으킨다.

 

질병은 커다란 시련이다. 특히 학원물에서 부여되는 질병 속성은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더욱 덧없고 애절하게 만든다. 가까운 누군가를 병으로 떠나보내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크지만, 미숙한 청소년이기에,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는 친구이기에 그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병에 걸린 캐릭터, 속칭 병약캐는 성장소설, 라이트노벨에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4월은 너의 거짓말, 엔젤 비트!등이 있지만, 이 소설은 판타지적인 연출이나 운명적으로 둘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없음에도 절절한 아픔과 감동을 전달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어 실사영화로도 애니메이션 극장판으로도 제작되었다. 실사영화는 후반 전개가 원작과는 상이하지만 성인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한다. 원작의 분위기, 일본 특유의 청춘 여름이었다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애니메이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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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나와 너의 관계는 이런 흔해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관계니까." 290

 

 

둘의 관계는 췌장이 나빠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비밀이 적힌 일기 공병문고를 주인공이 발견하면서 시작한다. 둘은 정반대의 성격 탓에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지만, ‘자신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도와달라는 발랄한 사쿠라의 제안을 주인공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타인에게 벽을 쌓아온 주인공은 태어나서 처음 맺는 깊은 관계에 당황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그녀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교류지만 둘의 관계는 신기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진전된다. 주인공은 마음속에서 점점 커지는 사쿠라의 존재감과 일상 사이사이에 보이는 사쿠라의 현실에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사쿠라를 밀어내지 않는다. 둘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 죽음’, ‘관계자기 자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긴밀해진다. 둘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은 연애감정이나 우정과는 다른, 짙은 무언가다. 죽음과 희망 사이, 진심과 도피 사이, 연인과 친구 사이. 어느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대해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이렇게 표현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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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함께 웃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를 꼭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247

 

다른 사람을 동경하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에게는 없는 모습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하고, 동경하는 사람과 닮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둘은 서로의 다른 모습을 동경했다. 주인공은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타인을 인정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사쿠라의 모습에, 사쿠라는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여도 외로워하지 않는,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동경했다. 그리고 넌지시 생각으로만 끝나던 이 마음은 대화와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사쿠라의 죽음 후, 주인공은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동경하던 사쿠라와 닮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다. 주인공의 변화는 사쿠라의 죽음에 따른 필연적인 운명 때문도, 사쿠라의 유언 때문도 아니다. 살아가며 수없이 마주치는 진실도전속에서 주인공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다. 지키지 못한 약속, 전하지 않은 진심에 후회하더라도 앞으로의 하루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다.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 ‘우리는 모두 선택하여 이 자리에 있는 거야라는 사쿠라의 말은 후반부에 밝혀지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316

 


알아버렸다, 나는, 아직 그녀가 죽는다는 것을 어디선가 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 P221

이런 흔해빠진 말로는 안 되겠지? 나와 너의 관계는 이런 흔해빠진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까운 관계니까. - P290

그녀와 함께 웃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를 꼭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몇 번이나 그렇게 끌어안는 것을 선택했다. - P247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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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고 아리고 여려서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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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의 이런저런 행동이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 첫문장 (스포일러 O)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있다. ‘자신이 규정한 성숙함에 도취되어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한 경험. 자신이 미숙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하면서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쉽게 판단해버린다. 그렇게 오해가 생기고 관계는 어그러진다.

 

위 인용구에 해당하는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의 눈에 내가 원하는 나 자신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시작했으면서 취업용 인맥 쌓기 집단이 되어버린 동아리 모아이는 우스워보였다. 점점 변해가는 동아리의 모습에 실망하고 탈퇴한 주인공은 모아이의 이상적인 모습을 되찾기 위해 멤버의 스캔들이나 공정하지 않은 취업지원행위를 찾아내 고발하기로 결의한다. 처음에는 타인에게 과도한 관심을 주지 않는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이 행동이 자신답지 않다고 주인공은 생각하지만, 자기만족을 위해 인터넷상에서 남을 깎아내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왜 주인공은 자신과는 아무 관련 없어진 동아리를 해치는 행위에 집착한 걸까? 그 이유는 모아이와 얽혀있던, 동경하던 친구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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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땜빵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이 상대를 상처 입혀도 괜찮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328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이 사라진 친구에게 실망한 경험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힌다. 분명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모습에 멋대로 실망하고 멋대로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 스스로의 상처만 커보여서 자신을 향한 상대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성장과 변화를 온몸으로 겪는 인생의 과도기에 이 일은 빈번히 일어나고, 질풍노도의 시기이기에 갈등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성인은 되었지만 아직 미숙한 시기. 몸은 컸고 책임은 늘었지만 스스로는 어리게만 느껴지는 대학생이 이 소설의 등장인물이다. 전작까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써온 지금까지의 작품세계와는 보다 성숙하고, 그만큼 복잡심오한 관계에 대한 고찰이 돋보인다.

 

대학은 꿈과 도전을 시험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타협을 배우는 곳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이상을 꿈꾸는 동아리를 만든 아키요시는 점점 그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교 1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책임감에 떠밀려 힘들 때마다 아키요시는 자신과 함께 동아리를 만든 주인공에게 의견을 묻지만 소극적인 주인공의 태도에 조금씩 멀어졌다. 아키요시는 자리에 적응하였고, 변했다. 더 이상 반짝이는 눈으로 이상을 말하며 엉뚱하거나 창의적인 기획을 선보이지 않게 되었고 동아리의 지원금을 긁어모으며 현실을 따지게 되었다. 주인공은 변하지 않은 자신과 아키요시 사이의 간극을 느끼며 아키요시가 동아리의 색을 바꾸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슬픔과 외로움을 외면하는 아집, 솔직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약함을 깨닫는 건 주인공의 계획이 성공해 모아이가 해체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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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했다. 나 자신의 약함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348

 

주인공은 아키요시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정작 아키요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그녀의 신뢰를 져버린 건 주인공이었다.

 

페르소나, 2의 자아, ‘부캐’. 평소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자아를 의미하지만, 내면의 인간은 그대로이다.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환경에서는 사람 그 자체를 바라보는 일은 참 어렵다. 수많은 관계를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사람은 성숙해진다. 시야가 넓어질수록 미숙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도망치고 싶지만 흑역사를 성장의 주춧돌로 삼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주인공은 후회했고, 행동했다.

 

관계라는 것은 영원히 보지 않을 것 같아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애매한 것이다. 엎어진 관계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동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전달한다. 스스로의 시야에 갇히는 순수함을 깨고 나온 세계는 복잡하고 잔혹하기에, 우리는 타인에게 귀와 마음을 여는 걸지도 모른다. 관계와 자아, 성장과 두려움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른을 연기하며 어른이 되어가는 청춘의 상실을 다룬 이야기. 모두의 그 시절 흑역사를 비추는 성장물이다.

 

"실은 다들 텅 빈 껍데기예요." 309

"괜찮아요, 제대로 못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채워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309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나의 이런저런 행동이 자칫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임시 땜빵으로 이용당했다는 것이 상대를 상처 입혀도 괜찮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 P328

알지 못했다. 나 자신의 약함을 이해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 P348

실은 다들 텅 빈 껍데기예요. - P309

괜찮아요, 제대로 못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채워달라고 하면 되니까요.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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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의 사전 - 광물이 보석이 되기까지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115가지 매력적인 돌 이야기
야하기 치하루 지음, 우치다 유미 그림, 한주희 옮김 / 지금이책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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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참여 리뷰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을 달변가로 만들어준다는 전설을 가진 돌이다." 265 (CARNELIAN 카닐리언, 홍옥수)

 

돌에는 많은 전설이 깃들어있다. 돌은 몸을 지켜주는 부적으로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생일에 따른 탄생석도 있다.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별자리점이나 탄생화를 비교하는 것처럼 서로의 탄생석을 비교하며 우정을 다지기도 했다. 매력적이기에 창작물의 소재로 사용될 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미신에 심취해 돌을 수집하거나, 혹은 돌을 수집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런 미신이 의미 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결국 돌에 깃든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반짝반짝 빛나고 신기한 색을 담은 돌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윌리엄 모리스가 쓸모없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집에 두지 마라라고 하였다. 돌은 기본적으로 쓸모가 넘치며, 쓸모가 없는 돌이라고 해도 아름다우니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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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토끼의 꼬리와 비슷하여 일명 '래빗 테일'이라 불린다. 미세한 유리 섬유 결정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촉감이 털과 같이 부드러우며 외부 충격에 잘 부서지므로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89 (OKENITE 오케나이트)

 

이 책은 제목대로 115가지의 돌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름의 유래, 별명, 전설, 쓰임새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골라 어렵지 않게 풀어 설명한다. 수록된 돌의 선정 기준은 실려 있지 않아서 모르지만, 돌에 대한 기본 상식이나 용어 설명이 끼어있어 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짤막한 설명과 함께 우치다 유미 일러스트레이터의 아름다운 보석 삽화가 삽입되어있어 차례대로 읽을 필요 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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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의 밤의 작가 미야자와 켄지가 사랑한 돌" 147 (AMAZONITE 아마조나이트, 천하석)

 

한 페이지 안에 끝나버리는 설명이기에 깊은 설명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흥미로운 소제목이지만 본문에는 소제목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저자가 돌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 싶다. 하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광물학의 특성상 깊게 들어가면 책의 난이도가 뛰어오를 위험이 있어 광물에 대한 지식이 적은 독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만족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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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이 어렵기 때문에 보석 장식품으로는 적합하지 않으나 내부에 가볍고 경도가 높은 티탄이 함유되어 있어 비행기 소재로 사용된다." 155 (KYANITE 카이언나이트, 남정석)

 

우리는 돌을 딛고 돌에 둘러싸인 채 생활한다. 고대부터 인간은 돌을 도구로 사용하였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채굴˙재련기술이 늘어나 인간은 다양한 돌을 접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빛과 형태로 태어난 돌들은 때로는 종교적 수단으로, 때로는 부와 권력의 증명으로 사용되었다. 과학이 발전한 지금은 성분을 조합해 인공적으로 돌을 만드는 시대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은 인간의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돌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드물다. 돌을 수집하는 취미도 대중적이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돌은 매력적이다. 이 책은 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상식을, 예쁜 돌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만족감을 준다.


 

돌의 사전야하기 치하루 지음, 우치다 유미 그림, 한주희 옮김, 지금이책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두려워하는 사람을 달변가로 만들어준다는 전설을 가진 돌이다. - P265

모양이 토끼의 꼬리와 비슷하여 일명 ‘래빗 테일‘이라 불린다. 미세한 유리 섬유 결정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고 촉감이 털과 같이 부드러우며 외부 충격에 잘 부서지므로 취급에 주의해야 한다. - P89

《은하철도의 밤》의 작가 미야자와 켄지가 사랑한 돌 - P147

가공이 어렵기 때문에 보석 장식품으로는 적합하지 않으나 내부에 가볍고 경도가 높은 티탄이 함유되어 있어 비행기 소재로 사용된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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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싶지만 불안합니다 - 얼떨결에 어른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 처방전
주서윤 지음, 나산 그림 / 모모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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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내가 원하지 않는 형태로 흘러간다. 시간이 직선이 아닌 원형이었다면 다시 젊어질 수 있을 텐데." - p.89

 

2021년 새해가 밝았다. 힘들었던 2020, 세웠던 계획의 대부분이 어그러진 채 1년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은 ‘1년을 허투루 보냈다며 허망감에 젖었다. 미래는 명확하지 않고 진로는 흐릿한데 새해를 맞아 놀고 싶은 마음은 왜 생겨나는 건지. 몸은 늙어 가는데 마음은 성장하지 않아 초조해진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고, 과도하게 열심히 보내기도 하며 몸과 마음을 혹사시킨다. ‘놀고 싶지만 불안합니다라는 제목은 이 모든 마음을 대변한다. 놀고 싶어서 놀고 싶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는 말로도, 놀고 싶지만 불안해서 못 놀고 있다는 말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2021년 새해를 맞으며 트위터에 떠돌던 재미있는 트윗 어른은 아니고 서른입니다라는 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몸은 커졌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마음은 크지 않는다. 어릴 적에 상상하던 어른의 나이와 동갑이 되었지만, 정작 그 모습은 상상하던 모습과는 동떨어져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이 크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마음은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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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한 만큼 꼭 보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려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반드시 망한다." - p.56

 

이 책은 얼떨결에 어른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 처방전에서 기대할 수 있을 만한 공감과 위로도 있지만, 더 이상 미적거리지 말고 당장 일어나서 움직이라는 따끔한 충고도 함께 들어있다. 어른이 되었는데도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렸던 사회초년생, 취준생 시절의 기억을 되짚으며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좀 더 해보자라며 등짝을 때리는 언니의 마음이 느껴진다.

 

일상 틈틈이 읽기 적당한 정도의 작은 분량의 짧은 꼭지들로 이루어진 책이라 마음이 조금씩 지칠 때 한 페이지씩 펼쳐보기 좋다. 본문 글과 어우러지는 나산 일러스트레이터의 깔끔한 그림은 직관적으로 저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저자의 가치관과 경험에 따른 성찰이 돋보이기 때문에 공감이 되는 글도 되지 않는 글도 있지만 이런 에세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계기를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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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마음속에 쓰레기통을 만들고, 쓰레기가 생길 때 그곳에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통이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81

 

이 책에는 불안한 마음과 암울한 현실에 대한 공감과 위로뿐 아니라 더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에 대한 응원도 담겨있다. 저자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실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교육과정을 경험한 대부분의 학생은 한 번의 실패에 인생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를 겪는다. 이를 건강하게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검증되지 않은 길을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은 한정되어있고, 사회는 각박하다. 모든 걸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불안한 건 당연하니 멈춰있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보자는 청춘을 향한 응원이 선명한 책이다. 멈춰있는, 멈추고 싶은 청춘들에게 선물하기 좋을 것이다.

 

*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협찬 제안해주신 저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놀고 싶지만 불안합니다주서윤 지음, 모모북스

 


여러분들도 마음속에 쓰레기통을 만들고, 쓰레기가 생길 때 그곳에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통이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81

노력한 만큼 꼭 보상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려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반드시 망한다.

- P56

시간은 내가 원하지 않는 형태로 흘러간다. 시간이 직선이 아닌 원형이었다면 다시 젊어질 수 있을 텐데.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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