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톡 - 인생이 피곤할 때, 귀찮을 때, 두려울 때 하나씩 까먹는 마음의 문장들
양창이 지음, 이지수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근시가 있지만 웬만해서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세상을 또렷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

'어라, 이 감성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며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얇은 책 한 권이 빠르게 끝나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찍으려고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에서(특히 SNS에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가볍지만 휘발해버리는 문장은 아닌, 마음 한 구석에 숨겨놓지만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조금은 부끄러울 것도 같은 독특한 B급 감성, '청춘'의 향이 났다.

저자 양창이는 중국의 대표 SNS인 웨이보를 통해 유명해진 그래픽 디자이너다. 이 책은 그 곳에서 많은 인기를 모았던 글 300편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역시 그렇지, 무릎을 쳤다. 마치 누군가의 트위터 계정을 탈탈 털어서 전시한 책 같았다. 2010년경부터 트위터 문화를 향유해 온 내가 익숙하다고 느낄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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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는 경우는 단 한 가지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었다. 15년에 출간된 책이어서 그런지 성별이 달라서 그런지,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이런 감성의 책이라고 감안했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특유의 유머와 냉소,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섞여있다. 그는 꾸미지 않고 자신의 속내를 툭 툭 내뱉으면서도 당당하다.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참 멋지게 사는 구나.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렇게 살아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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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호기심이 사라지고 평범한 것에 저항하기를 포기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

표지의 하나씩 '까먹는'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린다. 화장실에 꽂아놓고 읽기 좋은 심심풀이 땅콩같다. '바나나는 간식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명실상부 간식에 가까운 책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좋다는 의미다.

습관적으로 SNS에 들어가긴 하지만 타임라인을 점령한 어지럽고 시끄러운 문장들에 지쳤을 때, 이 책을 대신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의 문장들에 마음 속으로 리트윗과 좋아요를 누르다 보면 심심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지금 시간이라는 그릇 안에 누워있다. - P116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 곁에는 때때로 그가 사실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일깨워줄 친절한 친구가 필요하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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