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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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창비 출판사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을 봤을 때였다.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이라는 제목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진실은 그저 진실일 뿐 다른 무엇도 아닐 텐데, 믿을 수 있을 만큼만 진실이라고 말하는 듯한 화자가 눈 앞에 그려졌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은 과연 존재할까? 라는 질문이 서평단을 신청하게 만들었다. 책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진실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을. 


 먼저 첫 번째 단편, <이름 없는 마음>에서는 결말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좋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남동생을 돌보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동생에 대한 연민과 울분이 섞인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그의 남동생은 이제 누나가 이렇게 챙겨주는 것도 지겹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주인공의 곁을 떠난다. ‘지겹다’와 ‘미안하다’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마음, 그 이름 없는 마음에 대해 나는 한참 동안이나 생각하다가 우리가 소중한 이에게 안부를 묻는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다. 지겹고 꼴도 보기 싫지만 끝끝내 그 사람이 잘 지내기를 빌어주는 마음 말이다. 


p.35

 알 수 없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알 것도 같았고, 모를 것도 같았다. 빨간색 점퍼를 입고 걸어가다 멈춰서 메세지를 보냈을 현권의 뒷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굽은 어깨로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며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의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섯번째 단편 <부부생활>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에피소드였다. 소설에는 학원을 운영하며 늘상 ‘역시 자신이 맞았다’라고 말하는 주인공, 구영수가 등장한다. 설령 일이 생각했던 것과는 영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결과만 놓고 보면 어쨌든 자신이 옳았다는 식이다. 

 

그런 구영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주신 선물’, 아내 오진희를 만나게 된다. 첫 눈에 그녀가 착하고 불쌍한 여자라는 것으 깨달아버린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했고, 그들은 만난 지 몇 달 되지 않아 집을 합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진희에게는 구영수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는데, 그녀는 절대 착하고 불쌍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남편을 패는 폭력적인 여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폭력적인 여자와 결혼한 남자보다는 착하고 불쌍한 아내를 패는 남편으로 남고 싶었다. 그 와중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전세계를 강타했고, 구영수의 학원은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요양보호사였던 오진희는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다. 생계가 어려워진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처음에는 은행을 터는 이 설정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바로 이 설정이 구영수가 항상 말하는, ‘결국에 내가 맞았어’라는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닫고 작품 속에 빠저들었다. 


 끝까지 자신은 좋은 아내를 얻어 사랑에 성공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구영수를 조금은 이해하기 되었다. 



p. 177

떠오르는 비이성과 야만의 순간들에 구영수는 수치스러웠다. 부서진 핸드폰, 차고 밀치고 맞고 때리고, 용서를 빌었던 그 순간이. 그러고도 사랑을 속삭였던 그 다음이. 그럼에도 구영수는 미쳐버린 오진희의 마음과 결합하고 싶었다. 복수. 이상하고 감정적인 선택. 비논리적이고 괴상한 일. 어쩌면 운명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구영수는 설거지를 하거나 용변을 보거나 운동화를 꿰어 신는 순간마다 오진희의 말을 빌려 생각했다. 자신의 목적은 사랑이라고. 사랑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어떤 결말이라도 성공하게 되어 있다고.



 마지막 단편인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은 마음이 너무 아픈 이야기였다. 고립된 장소에서 방치당하는 아이, 그리고 자신이 본 대로 다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 어른들을 위해 적당히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만을 말하는 법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아이가 등장한다. 과연 아이가 헛간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와 차가운 현실이 결합하여 얼어붙은 웃음으로 흩어지는 단편이었다. 


p. 235

나도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밀이 생기면 좋겠다. 친구가 생기고 어깨를 밀쳤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p. 239~240

 달리는 차의 불빛은 주홍빛 홍시 색깔. 살아 움직이는 보석 같다. 신기한 것은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볼 때 나는 경찰 아저씨의 차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는 건데, 그럼 어디 서서 그것들을 다 볼 수 있었는가 하면. 그것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헛간에 있던 것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받아야 했는데, 그래서 나는 믿기 좋을 정도의 진실만 말해야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완벽하게 배웠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타인을, 때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곤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를 얻는다. 바로 그 용기가 사람을 살아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설집이었다. 


(본 서평은 창비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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