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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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삶의 비극적 상관관계

기본적인 줄거리는 매우 간결하다. 마까르 알렉세예비치라는 하급 문관과 그의 먼 친척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의 가난한 생활을 편지를 통해 서술한다.

이 둘은 서로를 정말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기꺼이 상대방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 가난함 속에서도 서로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선물한다. 이들에게 선물의 값어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자신에게 선물한 이의 소중한 마음을 깊이 느끼고 선물을 주는 사람은 그것을 받고 기뻐할 이를 생각하며 자신 또한 만족해한다. 서로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초반부에 이들의 상황이 이렇게 묘사됐기에 읽으면서 내심 불안했다. 작가의 특성 상 필시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의 우정과 사랑을 역경에 들게 하는 고난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후반부의 흐름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들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조차, 셔츠의 떨어진 단추를 기울 수 없을만큼 비참하게 가난할 때조차 이들은 마지막 인간적인 모습을 놓지 않는다. 서로가 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있기에 가난과 수치심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주요하게 느낀 감정이 수치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선함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도 느꼈다. 마까르 알렉세예비치가 묘사하는 직장에서의 자신의 모습과 가난으로 인해 경멸당하고 놀림받는 처지를 읽을 때는 참 슬펐다. 타인의 몰이해와 그를 향한 비인간적인 대우는 그에게 깊은 자괴감과 수치심을 주었다. 그는 남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단지 가난할 뿐인데 왜 가난함은 그렇게 쉽게 비난받아야 하는가?

결국 마까르는 그런 수치심을 견디다 못해 술을 진탕 마시고 자신을 놓아버리고 만다. 바르바나가 그의 그런 행동을 꾸짖고 계도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자신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도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마까르에게 우연한 행운이 찾아오며 그는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비극은 또 다시 찾아온다. 기껏 가난한 생활에서 탈출했건만 그토록 사랑하는 바르바나와 헤어질 위기에 놓인다.

바르바나 또한 심한 생활고 때문에 미래가 매우 불안정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시골의 지주에게 시집가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 여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으므로 그녀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마까르와 바르바나는 어쩌면 서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바르바나의 남편이 될 사람은 그녀의 묘사만 보아도 자기중심적이고 인색한 사람이기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마까르를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마까르는 가난함이 불러오는 수치심과 사랑하는 사람까지 보내야 하는 아픔을 견디면서 살 것이다. 바르바나는 자만심이 강한 남편과 살며 그의 인색함을 참아야 할 것이고 마까르와 만날 수 없는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사랑도 보내야하는 가난함은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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