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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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만난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

그녀와 그의 시점에서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조각가로서 개인전을 열 정도로 능력이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가족력이라고 믿어왔던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차분하게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그녀가 죽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녀 내부에서 계속에서 맴도는 죽음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밤마다 잠결에 구슬프게 자신의 엄마를 불렀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할머니가 북엇국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자살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부모가 피를 뿜으며 자살하는 비극을 눈 앞에서 목격하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신의 부모가 남기고 간 트라우마를 자신의 의지대로 물리칠 수 없는, 갖고 가야만 하는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고 자연스럽게 죽음과 가까워졌다. 죽기 위해 준비하는 그녀의 태도나 감정에 드러난 것들을 생각해보면 죽음의 파괴력에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게 서서히 맡겼다는 표현이 떠오른다.

그녀의 첫 번째 자살계획은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았다. 조용한 공원에서 점찍어둔 나무에 목을 매단 것이 첫 번째 시도였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 할머니의 환영을 보게 된다. 이후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복엇국을 마시고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가족을 파괴했던, 할머니의 생명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삶마저 망가뜨린 그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는 것이 매우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왠지 납득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위에서 시작한 것을 아래에서 끝내겠다는 굳은 결심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든 생각과 느낌, 관념은 모두 죽음을 향해 있다. 죽음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생각을 하다니, 의연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최상의 죽음을 맞고 싶다는 그녀의 결심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너무 관념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가 아버지에게서 보았던 모습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그녀의 성장과정을 그려보게 되면서 그녀의 충동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감싸는 죽음의 분위기 속에서 그녀가 달리 도망칠 곳은 없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 어떻게 이해하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관점은 상당부분 가족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녀가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 것에 그녀의 잘못이 있을까? 애초에 스스로 죽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녀는 죽음을 계획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가족을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인 것 뿐이다.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아니라 죽음을 공유한 공동체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녀는 오직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죽고 싶었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최상의 상태에서 수행하기 위해 그녀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한 복엇집에서 복어에 대해 배운다. 복어의 독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 복어를 손질하는 방법에 대해서 습득한다. 죽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러왔던 세월을 뒤로하고, 그녀 뒤에서 언제나 따라다니던 충동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는 건축가이다. 처음 저녁모임에서 그녀를 봤을 때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의 인생마저도 흥미가 없어 보이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그녀의 존재를 자신의 기억에 깊이 새긴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그녀를 그렇게 기억하게 된 이유는 그의 형이 자살했기 때문이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기 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했던 형과 그녀의 모습이 비슷하게 겹쳐보였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가장 깊게 잠재돼 있는 욕망을 알 수 있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각기 다른 욕망이 존재하지만, 그녀에게는 오직 죽음에 대한 욕망밖에 없었고, 그는 그것에 강하게 이끌린 것이다.

그는 그녀를 멈추고 싶어했다. 그녀와 일부러 약속을 잡고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녀가 언젠가는 죽음을 실현하리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의 말들에 끌리게 된다. 그가 이미 자신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그녀의 계획을 알고, 그녀가 왜 그런 욕망에 이끌리는지 이해하지만 그녀를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의 아버지 또한 그녀의 아버지처럼 끊임없는 자살충동을 겪고 있지만 그는 그녀와는 다른 방법으로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죽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집을 떠나는 것이다.

그는 매일 창문을 닫는 어머니의 그림자에서, 아버지의 침묵이 가득한 집안에서 떠나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을 가진 채 그녀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를 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녀의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됐고, 그의 소원은 간신히 실현됐다. 마찬가지로 저녁모임에 만났던 유품관리인의 도움으로 복엇국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가까스로 구해낸다. 몽롱한 정신으로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지만 그것은 더 이상 죽음으로의 잠이 아닌, 다시 삶을 살아보고자 자신의 과거를 털고 일어나기 위한 잠이었다.

그녀가 쓰러지면서 느꼈던 감정은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마쳤다는 후련함도 기쁨도 아닌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삶에 대한 미련과 욕망이 가득한 감정이다. 무채색의 감정만 느낄 줄 알았던 그녀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삶을 다시 살아갈 의지가 그녀 내부에서 싹텄다는 신호로 봐도 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 속에서 주인공의 감정 변화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중으로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주인공의 감정이 오직 죽음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 어두운 관념들을 따라가기가 벅차고 주인공의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임의 시원한 일침으로 끝도 없이 전개되는 한 여자의 깊은 상념을 현실적인 구도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그녀의 생각과 감정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해가 질 때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야기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분위기에도 잘 맞아서 특히 좋았다. 저녁놀이 지는 하늘에서 군청색과 빨간색이 교차하며 내리는 어스름한 빛이 쓸쓸하게도 다정하게도 느껴졌다. 내가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에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고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그와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그는 죽음보다는 삶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서로 다른 쪽에 있는 것 같아 보이던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된 때는 서로의 시간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에는 대치선인 것만 같던 그 경계선은 어느 순간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교차로로 변해가고 있었다. 교차로 끝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항상 그였다. 그녀는 그 자리에 고정된 채 그가 다가오는 것을 무표정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웠던 죽음에 대한 욕망은 그를 만남과 동시에 해소되고 있었다.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그것을 깨달았다고 느꼈겠지만 사실 그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가 그녀를 구하고 그녀 자신도 그녀를 용서하리라는 것을.

그녀는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머리를 불쑥 내밀며 처음으로 그를 향해 먼저 다가간다. 붉은 벽돌집을 짓고 싶은 건축가와 사람의 시간을 형상화하는 조각가는 그렇게 서로를 온전히 마주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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