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없어 그림책은 내 친구 68
키티 크라우더 지음, 이주희 옮김 / 논장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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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네이버 카페 '제이 그림책 포럼'. 이곳에는 다양한 책읽기 소모임들이 있답니다. 그중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북클럽 '유그작 사부작'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달의 작가가 이 책에 두 번째로 소개된 '키티 크라우더' 작가였어요.




키티 크라우더 작가는 '상상을 만드는 질문'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이어갔는데,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에 소개된 키티 크라우더 작가의 작품들을 보다가 <Moi et Rien>와 <La visite de petite mort>, <Le petit homme et dieu>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아서 무척 아쉬워 했답니다. 

2016년 출간된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안에서 원서로 소개된 <메두사 엄마>나 <포카와 민> 시리즈가 그사이 국내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터라 다른 책도 언젠가 번역되겠지 기대감을 갖던 차에 '유그작 사부작' 클럽장 슬책님의 발빠른 정보력 덕분에 논장에서 <Moi en Rien>이 나오게 된 걸 알게 됐고 운이 좋게 서평단으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슬책님, 논장 출판사 관계자님 감사해요!)





뒤표지를 보시면 파란 꽃이 피어 있고 나무 사이로 눈사람 같은 캐릭터가 하나 보입니다. 독자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글이 적혀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요. 없어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

‘없어’랑 '함께 있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원서에 등장하는 Rien(없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아무것도, 무'라고 나옵니다. 

작가 키티 크라우더는 <나와 없어> 이야기를 쓰고 이틀 만에 스케치를 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무를 의미하는 ‘Rien’으로 말장난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안의 인터뷰에서 말한것 처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주인공들이었고 그렇게 이 그림책이 만들어 졌데요.

아이들과 까꿍 놀이를 할 때, '없다'와 '보이지 않다'가 같은 의미로 쓰이잖아요. <나와 없어> 속에 '없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처음 <나와 없어> 앞표지 그림을 봤을 땐 사람 혼자 덩그러니 있다고 생각했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주인공 ‘나’가 오버핏 자켓을 걸치고 어색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한 후에 다시 표지를 보니 저도 주인공 나( 라일라)처럼 ‘없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키티 크라우더 작가에게 형이 자살한 친구가 있었데요. 형의 죽음으로 공허함을 느끼는 친구를 보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해요. 2015년 작 <La visite de petite mort>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입장을 다루었다면, 2000년에 출간된 <Moi et Rien(나와 없어)>는 죽음의 결과적 측면, 죽음 이후 남은 이들의 삶과 감정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나와 없어>에서는 엄마를 떠나보낸 아이와 아빠 모두 큰 아픔을 겪습니다. 특히 아이는 아빠와의 소통 단절과 엄마의 부재로 더욱 더 괴로워합니다. 외로움에 아이는 아버지의 재킷을 입고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려 하고,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맑은 날에도 장화를 꺼내 신어요. 표지 그림의 오버핏 자켓이 다 사연이 있었던 거였어요.


"왜 나는 엄마와 함께

하늘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요?"


가족의 죽음 이후 슬픔에 빠진 남은 이들의 마음이 저 문장에 다 담겨 있습니다. 아이 뿐만 아니라 아빠 역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궜습니다. 근근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이의 외로움, 상실감은 전혀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속 '창살이 쳐져 있는 버려진 정원'은 누구의 접근도, 위로도 통하지 않는 상실감에 빠진 아이와 아버지의 마음 같습니다.



이 아픔을과 상실감을 치료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떠나간 이와 함께 한 추억입니다. 아빠가 엄마와의 추억들과 물건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때, 아이는 헛간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히말라야푸른양귀비’ 꽃씨를 발견합니다. 엄마가 히말라야에 간 모습을 상상하는 라일라의 모습에서 영혼이 되어 가는 저 너머의 세상을 떠올렸던 건 저 뿐이었을까요? 


그리고 무력했던 ‘나’는 혼자서 ‘없어’가 남긴 말,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를 버려진 정원에 '히말라야푸른양귀비' 꽃씨를 심으며 실현시킵니다. 


황량했던 정원은 엄마가 좋아하던 히말라야푸른양귀비꽃으로 다시 생기를 되찾습니다. 엄마와의 추억이 상실의 아픔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속하게 하는 에너지가 된 것이죠.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말입니다. 히말라야푸른양귀비꽃은 아빠와 나의 소통 회복과 엄마 영혼의 귀환이었습니다.



색을 다채롭게 쓰기로 유명한 키티 크라우더 작가가 이 책 <나와 없어>에는 유난히 흰색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색을 넣을 수 있는 '흰 색'이 쓰인 이유를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없어’와 ‘흰색’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부재는 백지처럼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떠나간 이를 기리며 떠올리다보면 삶 속에서 그 빈 공간도 다시 채워지잖아요. 빈 정원에 파란꽃을 피어난것 처럼,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흰색이 다시 다채로운 색상으로 채워질 가능성! 그렇게 삶이 채워지고 이어지는 것을 키티 크라우더 작가가 색을 통해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나와 없어>에 사용된 글꼴이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수동 타자기에서 찍혀 나온듯한 글자체인데, 덤덤하게 1인칭 시점에서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말하는 ‘나’의 이야기와 저 글자체가 참 잘 어울린답니다.



남은 자들의 아픔과 상실, 회복 과정이 아이의 시점에서 담백하게 녹아있는 <나와 없어>. 

담은 이야기도, 그림도… 엄마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확인할 때의 놀라움까지..!!

20년이 훨쩍 넘은 작품이지만 (2000년작, 한글 번역판이 2022년) ‘역시 키티 크라우더 작가!’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책이었어요.


키티 크라우더 작가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본 서평글은 논장 출판사에서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해당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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