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여는 첫 번째 사람 - 자폐아 칼리, 세상을 두드리다 푸르른 숲
아서 플라이슈만 외 지음, 김보영 옮김 / 씨드북(주)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자폐니 ADHD니 참 여러가지 병명을 아무렇지 않게 부여하는 세상이고 그들을 무슨 정신병인냥 바르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육쪽에서 오래 일을 하다보니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 심지어 부모마져도 조금은 다른 아니 조금은 더 특별한 아이를 기존의 생각의 틀에 맞춰 조금이라도 다르면 문제인 듯 바라보는 시선.... 정말 마음이 아프다. 사실 그 아이들 조금 다를 뿐 똑똑하고 착한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난 내딸이 편견없는 있는 그대로 상대의 장점을 많이 바라볼 수 있는 아이로 컸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내가 먼저 읽고 아이가 자라 다시 한 번 더 함께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자폐증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 어떠한지를 가감없이 보여 주는 책이다. 정말이지 아빠 아서의 처절한 라이프 스토리다. 전문직으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쌍둥이 딸이 태어나고 그 중 큰 딸이 자폐아로 판정을 받게 되며 아서씨네 부부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큰아들 매튜와 쌍둥이 동생 타린은 그들의 형제인 칼리를 언제나 사랑했고 정상인 대하듯 사랑했다는 점이다. 아서는 두 살에 자폐증과 발달 장애 진단을 받은 딸 칼리의 실제 이야기를 회고록에 담았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고, 이후에는 외면하고 싶었고, 끝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말, '자폐아'에 관해아서는 누구보다 정확한 관찰자이자 누구보다 처절했던 부모 시점에서 이 책을 썼다. 또한 에필로그에는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이자 자폐인의 삶을 살아가는 칼리가 직접 쓴 글이 담겨 있다.

가뜩이나 행동조절이 안되는 칼리로 하루하루 힘든 아서씨네. 급기야 칼리의 엄마가 림프종이라는 암진단까지 받게 된다. 항암치료까지 받게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대출이 늘어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열악한 상황이 아이었기에 이 가족이 버틸 수 있었다. 또한 이 가족이 지쳐서 쓰러지지 않도록 주변 치료 선생님들 특히 언어치료사 바브와 하워드의 큰 도움이 있었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늘 함께해 주었다.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느라 고군부투했던 아서 부부... 다행스럽게도 이 분들을 만나고 함께 지내며 결국은 칼리가 세상과 소통하는데 큰 도움을 받게 된다.

칼리가 어느 날 갑자기 글을 쓰고 세상과 소통을 한 것이 아니다. 아서씨 부부는 칼리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여러 기관을 찾아다녔고 그 과정에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하기도 하는 등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심지어 아이를 받아주는 기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홈스쿨을 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끊이없이 자극을 주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나온다. 분명 힘들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원망하고 포기했을 법도 한데 이들 부부는 끝까지 아이를 믿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하루도 조용히 평온한 적 없는 아서씨네.

 

 

칼리도 여느 자폐아이들 처럼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일반인들이 잘 듣지 못하는 세상의 다양한 소리를 듣고 또 여러 정보를 사진찍듯이 머릿속에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아이였다. 비록 말을 못하고 스스로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하는 등 장애가 있기는 했지만 언제나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10살되던 해 칼리가 드디어 타자를 치면서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글로 옮기게 된다. "도와줘. 이빨. 아파(Help. Teeth. Hurt)" 몸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드디어 글로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순간이다. 어찌나 감동적인지 칼리도 자신의 특정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하고 언제나 스스로 자신만의 소리를 내긴 했지만 이젠 자신만의 '내면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유대인의 성인식인 '바트 미츠바' 에 자신의 목소리를 대신해 유명인인 '엘런'에게 편지를 써서 대신 낭독을 하게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소개되며 유명인이 되었다. 물론 엄마의 암 재발 등으로 여전히 힘든일이 있었지만 칼리는 멈추지 않고 SNS 로 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폐증은 정말 힘든 감정이에요. 마치 스테레오를 최대한도로 틀어 놓은 방안에 있는 것과 같아요. 발은 뜨거운 불 위를 걷고 있고 팔에는 수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기어가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걸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제가 말도 하지 못하고 그들과 다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시선으로 저를 쳐다봐요.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보이거나 행동하는 것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해요." 이 짧은 칼리의 말에서 자기 자신을 재정립하고 아직 소통 방식을 찾지 못한 자폐아들과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암시하고 있다. 아이가 그 많은 시간 동안 매일 같이 견뎌내야 했던 생상한 고통에 대해 같은 부모로서 참 마음이 아픈 대목이었다. 칼리는 참 긍정적인 아이다. 세상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더욱 긍정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여러 행동치료와 집중치료를 하며 크게 도움을 받긴 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 주변인들의 믿음이 그녀가 내면의 목소리를 내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말한다. 칼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심지어 칼리를 정상인처럼 대해 오히려 칼리가 자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해 주었다는 점 등은 우리가 칼리와 같은 아이를 대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칼리는 세상 밖으로 나왔고 많은 자폐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그 주변인들이 자폐아이를 어찌 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리고 있다. 아주 바람직하게 소통하고 있다 생각한다.

사실 엘라도 어려서부터 발달이 다소 늦은 편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뒤집거나 기거나 하는 동작없이 앉았고 섰고 걸었다. 그러다 보니 대근육 발달이 느렸고 돌부터 3년간 계속 발달이 다소 느리다는 전문의 소견을 받았다. 하지만 난 조급해 하지 않았다. 아이만의 속도가 있음을 믿고 기다렸다. 다만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수는 있으니 검사는 받아보았다. 몇가지 부분에서 아이의 행동이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고 이는 날 무척이나 불안하게 만들었다. 자폐스펙트럼이라는 경계에 살짝 발을 담근 상황.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다. 여러 전문의의 검사를 받으러 어린 아이를 끌고 다녔다. 참 부모로서 못할 짓이었다. 얼마나 아이가 힘들었을까. 처음보는 사람과 일정 행동에 반응하고 답하는 일이.... 지나고 보니 참 아이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결론은 발달이 다소 느리긴 하나 이상은 없는 것으로 몇년에 걸쳐 알게 되었다. 오히려 언어 인지 발달은 또래보다 2년 가까이 빨라 습득 속도가 매우 빠르다. 신체적인 부분은 여전히 여러 운동으로 단련시키고 있다. 비단 내가 교육 방면에 일을 하기에 여러 아이들을 만나기에 내 아이를 믿은 것도 있다. 요즘은 참 환경이 그래서인지 개성 강한 아이들이 많다. 자칫 아이를 문제아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다. 특정한 행동을 지속한다고 해서 또는 이상한 말들을 한다고 해서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아이가 자폐니 조금은 산만하다고 ADHD 니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고 커가며 아이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아니 오히려 특정 분야에 더욱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칼리는 내가 보아오던 아이와는 다르다. 자폐증이란 병명을 진단 받았을 때 부모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내가 불았했던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감히 짐작을 해 볼 수 있으니.....

아이에겐 부모가 세상 전부다. 부모가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렸다면 칼리는 아마도 에필로그에 자신의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넉넉하지 못한 생활 속에서 아이에게 맞는 선생님을 찾고 그에 적합한 학교를 찾아 헤매는 부모, 암과 싸우면서도 아이를 놓지 않은 엄마. 정말 대단하다.

이 책은 자폐증이 있어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내면의 삶은 누구보다 풍성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 준다. 칼리는 독립적으로 타자를 치게 되면서 재치와 유머를 발휘하고, 자신의 감각적인 문제를 설명하며 세상을 향한 선의를 마음껏 펼쳐 보인다. 단순히 자폐증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책이 아닌 아이를 키우며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순간을 경험하는 수많은 부모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씨앗이 꽃이 되려면 사랑과 양육이 필요하고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는 칼리가 기억하는 문장처럼 모두에게는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스스로를 믿고 도전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