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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 파일럿 조은정의 꿈을 이루는 법
조은정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공항에 나가면 스튜어디스 언니들은 자주 보게 되는데 기장이나 부기장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우연히 보게 되는 날이면 그 제복 입은 모습에 넋을 놓고 ‘와! 멋있다!’를 연신 외치며 뒷모습이 사라질 때가지 나도 모르는 사이 한참을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생각한다. ‘나도 파일럿을 할 걸 그랬나?’ 그러나 피식 웃고 만다. 항공대에 가기에는 일단 내 나이가 너무 많기도 많지만 여자인 내게 파일럿은 어쩐지 좀 멀게 느껴지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이 책, 표지에 파일럿 옷을 입은 여성이 팔짱을 끼고 당당히 서 있다. 여자가 파일럿이 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이 책의 저자는 파일럿의 꿈을 스물아홉에 꾸기 시작했단다. 그것도 만 스물아홉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서른, 혹은 서른하나에 파일럿이란 꿈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참으로 낯선 꿈에 누가 봐도 늦었다는 나이에 도전한 것이다. 내가 이 저자의 사례를 더 일찍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에서 여자 나이 스물아홉은 안정과 자기 확장을 꿈꾸게 되는 나이지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전혀 새로운 일에 ‘한번 해볼까?’하며 어렵잖게 도전해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이 나이에 이 색다른 직업에 도전해볼 수 힘이 어디에 있었을까? 그 동력이 궁금해서 나는 책을 펼쳤다. 저자는 무엇보다 참 당당한 사람이었다.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 가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유학을 가서 건축디자인이 좋아지자 건축디자인을 공부해 보려고 길을 모색했고, 그 자금을 마련할 길로 선택한 항공사 기내식 제조업체에서 항공사에 관심을 갖게 되자 스튜어디스가 될 길을 모색했고, 스튜어디스의 길이 열리지 않자 자신의 언어실력을 살릴 길로 호텔리어가 되고자 호텔에 지원했고, 그게 여의치 않자 일본 신용카드 회사에 들어가서 일어와 함께 영어를 공부해서 기회를 노리다가 결국 호텔리어가 되었고,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 기장의 당당함에 반해 파일럿이 되기로 마음을 먹자 미군 공군부대 에어로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 취직을 했고, 미국 항공학교로, 미국 항공학교 교관으로, 중국 항공학교 교관으로, 그리고 지금은 중국 항공사의 기장, 그것도 한국인 최초 여성 기장이 되어 있다. 혀를 내두를 만큼 많은 이력.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자기 마음의 소리에 대담하게 귀를 기울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걸으면서 길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당당함이 참 멋있고 또 부러웠다. 기장의 자리도 저자의 종착역은 아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길이 있기 때문에 걷는 사람이 아니라 가고 싶은 마음이 길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사람이니, 하나의 역에 서면 다음 길이 보이겠지, 그래서 종착역이 있을 수 없겠지 싶었던 것이다. 역시 그랬다. 저자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찾고 찾아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내는 습(習)이, 그런 근육이 발달한 사람이었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다. 튀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첫 번째, 처음’이 되는 것도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눈에 띄면 잘 하던 것도 심장이 떨려 망치기 십상이다. 언제나 중간이 가장 편하다. 그러나 중간에 늘 서있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에게도 색깔이란 게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심심한 개성, 심심한 삶, 모든 것이 심심... 반면에 튀는 것, 처음이 되는 건 떨리고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루었을 때 ‘이게 나야! 그래 나야!’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배나 더 갖게 되는 것 같다. 자기 마음의 소리를 좇아가면서 튀는 것도 처음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저자는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더 당당해져갔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 그 뿌듯함이 무엇보다도 읽는 사람을 기분 좋게 했다. 먼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기 때문에 그 선물로 자신감이 주어지는 것 같다. 나도 걸어봐야겠다. 길이 있어서가 아니라 가고 싶으니까, 가야겠으니까. 그렇게 걷다보면 나에게도 어느새 나만의 길이 닦여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지금은 꿈꿔도 좋은 ‘봄’이 아닌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