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끊이지 않고 비가 내립니다.
보슬보슬이 아니라 내리 퍼부어 모든 것을 휩쓸어갈 기셉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바람은 좀 더 시원해지고
어느새 가을이 다가와 있겠지요.
이렇게 계절은 지나가는데
우리의 시계는 아직까지 봄도, 여름도 아닌
어느 시간에 멈춰 있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건들은 잊혀지고 우리는 이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20세기 중반에, 제주도에 4.3이라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념 싸움에 휘말려 수만명의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지요.
지금도 제주 4·3 평화공원 전시관 입구에는 ‘백비’가 눕혀져 있습니다.
백비가 '백비'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 4·3의 아픔을
아직도 이름 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우리가 떠나보낸 지난 수개월을 이름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픔을 덮을 수 있는지 몰라 그저 시간을 견뎌내고 있지요.
그 이후로 들려져 오는 가자지구의 고통받는 생명들
여전히 끝나지 않은 후쿠시마의 아픔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을 근원부터 쓸어버리고 다시 세우지 않으면
도무지 인간으로서 생존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스레 자각합니다.
지금 당장 나에게 닥쳐오지 않았을 뿐,
언제든 똑같은 확률로 학살당할 수 있고,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삶을 근근이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 책의 청소년들은 그런 우리에게 말합니다.
무엇이 세월호를 만들었고, 누가 세월호의 진짜 피해자였으며,
어떻게 그 아픔에 응답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물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본과 권력 앞에 주눅들지않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외쳐야 한다고 합니다.
시스템의 견고함 앞에 무력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 개인의 윤리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청년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다시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떻게 퍼져나갈 수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함부로 절망하지도, 희망하지도 않지만
절망과 희망의 경계지점 앞으로 모든 이들을 불러세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작고 많은 필진들이
저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과도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