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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의 마음 - 삼척 생활 에세이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3년 7월
평점 :
🌱서현숙 작가의 신작, 「변두리의 마음」에는 오래되어 낡은 것들, 혹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과 존경의 마음이 가득하다. 느리고 조용하고 별 것 없어 설레는 삼척의 골목 골목과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던 작가의 마음이 '내가 변두리 인간이어서 나는 내가 좋다' 로 귀결되는 과정이 따뜻하다.
풍경묘사나 인물묘사 글을 읽는 것에 취약한 나인지라, 삼척에 관한 글이라는 소개글에 읽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은 역시 기우였다.
삼척 식당, 삼척 골목, 삼척 바다가 주인공일 때도, 삼척의 새로운 주민이 된 작가가 주인공일 때도 아기자기하거나 귀엽거나 웃기거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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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집 할머니의 말에서 '속상함'을 알아차렸다. 앞집 할머니의 말은 나에게 이렇게 해석되었다.
아휴, 왜 그렇게 혼자 있었나 몰라. 허구한 날 꽃이나 들여다보고 말이야. 그 많은 꽃 좀 툭툭 꺾어 동네 사람들 주기도 했으면 친구도 생기고 그랬을 텐데. 따닥따닥 매달린 살구, 양재기에 담아 동네 사람들도 좀 주고 싸게 팔고 그랬으면 오며가며 이야기도 하고 친절하게 지냈을 텐데. 그걸 못 해서 그렇게 외롭게 살았어. 에그, 마음 안 좋아.
작은 몸집의 할머니가 온종일 마당 이편에서 저편으로 부지런히 오가며 텃밭을 가꾼다. 꽃나무를 심고 활짝 핀 꽃을 보며 연신 '이뻐'라고 말한다. 아마 그랬을 테지. 아무도 드나드는 이 없는 대문을 보며 간혹 한숨도 쉬었을까."
🌱남의 동네 오래된 골목길 탐방 중에 우연히 발견한 빈 집.
그곳에서 만난 이웃 할머니 말씀에 속마음 번역기를 돌리는 작가의 따뜻함에 사람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누구를 만날 때 겉모습과 겉말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어렵다. 삼척에서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이 살아 왔을 시간과 앞으로 살아 갈 시간까지 공감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다시 한 번 진짜 어른이란 어떤 모습인가를 보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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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이 있을 수 없는 규모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은 날을 세우기 어렵다."
"사람의 마음을 압도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도시가 한 사람의 영혼에 미치는 힘이다."
🌱거대한 도시 변두리에 겨우 겨우 매달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는 많은 것들에 반응하느라 애쓰며 살고 있는 나는, 많은 시간 날카롭다. 내가 돌리고 있는 이 수레바퀴가 어떻게 구르고 있는 건지, 어떤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건지, 다치는 사람은 없는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을 뿐더러,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죽어 있는 거다.'
마음이 살아있는 변두리에서 작가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걸까.
🌱마지막 장에서 「소년을 읽다」 이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면 아이를 만나는 작업을 시작한 나에게 「소년을 읽다」는 큰 울림이 되었었다. 저것은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에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어른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지금보다는 조금 덜 고통스러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과 폭력, 무지에 의한 정서적 학대가 있었어도 나는 그래도 집에 있을 수는 있었다. 누가 내 안부를 물어봐 주지 않더라도, 사는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가족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었더라도, 나는 막내로 태어나 작더라도 관심이라는 걸 받았고, 나의 큰언니는 고립감에 책임감까지 더해져 마음에 아픈 병을 얻었다. 내가 더 도덕적이라거나 더 선해서, 의지력이 강해서, 소년원에 가지 않고, 마음의 병이 안 생긴게 아니라 나는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다. 이제 나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아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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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아침, 세상의 존재들을 생각했다. 지금 한껏 마음이 약해져 있는 존재들. 미약한 봄바람에도 가리지 못한 상처가 쓰라려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여운 존재들. "
🌱「변두리의 마음」 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약한 모습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삼척에게 어떻게 위로를 받았는지, 삼척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응원을 받았는지 이야기 해준다.
그 이야기를 통해 덜 경쟁적이고 덜 소모적인 따뜻한 연대의 마음, 변두리에 머무는 마음이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안아줄 수 있는지를 배운다.
서현숙 선생님은 고등학생 친구들이나 소년원 친구들만의 선생님이 아니라, 이렇게나 나이 많은 중년인 나의 선생님이기도 하신 거다.
선생님이 바라시는 대로, 세상의 많은 이들이 연민과 연대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해서, 타인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를.
(이 글은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느낀 점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