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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배명은 지음 / 고블 / 2026년 8월
평점 :
《계화의 여름》에서 단연 돋보인 건 인간과 이무기의 사랑이었지만,
계화와 여름 주위를 맴돌며 그들의 사랑을 방해한 잡귀도 존재감 있었다.
머리가 없다든가 하는 귀신을 등장시켜 이야기에 재미를 더했는데, 이번엔 배명은 작가가 제대로 호러 소설을 냈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작가님 특유의 간결하지만 강렬한 문체가 가독성을 높였으나 많이 기대하고 본 탓일까, 몇몇 단편은 큰 감흥이 없었다. 《계화의 여름》처럼 결말이 여운을 남긴다든가, 호러 소설이니만큼 소름이 쫙 끼친다든가 하지는 않았달까?
그러나 확실히 몇 편은 초반부터 결말까지 틀림없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인 책인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모자 장수와 나>, <벌레 대왕>, 그리고 <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먼저 <모자 장수와 나>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독립운동가의 피가 흐르는 주인공 아리의 기개가 돋보이는 서사와 결말이 인상적이다. 적나라한 묘사가 상상력을 자극해서 호러 소설의 정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가장 충격이었던 건 아리를 죽음의 문턱까지 이끌었던, 아리가 그토록 애지중지한 보따리 속 물건(?)이다...
<벌레 대왕>은 다른 단편에 비해 비교적 짧았음에도 ‘열등감, 피해 의식이 사람을 이토록 지저분하게 만드는구나’라는 묵직한 깨달음을 준 이야기였다. 펜데믹을 경험해서 그런지 현실감 있게 느껴졌고, 그래서 술술 읽혔다.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은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해서 아무래도 기대가 가장 컸는데, 기대를 충족시켜준, 기대에 부응한 이야기였다.
측백나무에 둘러싸인 빨간 벽돌집에서 도희와 동해가 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왜 지수는 슈트 케이스에 들어가게 된 건지.. (( 너무 끔찍해서 상상도 하기 싫다 ))
어떤 플롯을 먼저 선보이느냐가 이야기의 감칠맛을 좌우하는 것 같은데,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이 딱 감칠맛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만든 단편이다.
이 책은 호러 소설집이지만 막 호러스럽진 않다(?). 다만 완독 후에 묘하게 영화 <겟아웃>처럼 어딘가 불쾌한 느낌도 들고.. 호도 불호도 아닌 것이 오묘하다. ’이게 호러 소설의 맛인가?’ 싶고, 요상야릇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