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 짓눌린 영혼에게 길은 남아있는가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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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리프레시, 2025.04.15 출간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었어요.

생각보다 헤세 책을 많이 읽었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헤세를 좋아했나..? :)

'수레바퀴 아래서'는 민음사 버전을 읽고 좋은 기회로 이번에 리프레시 버전을 읽었어요.

책에 중간중간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삽화가 있어서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최신 번역본이라 그런지 훨씬 더 책이 술술 읽히더라구요!

수레바퀴 아래서를 2번째 읽어서 그런지 첫번째 읽었을 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는데요.

처음엔 책 내용이 잘 이해가 안가서 해석을 찾아보면서 이해를 했고 그러면서 결과를 중요시하는 현실과 그로 인해 놓쳐지는 많은 것들에 대해 중점을 느꼈었다면


"이것이야말로 학교의 역할이었다. 그것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거룩한 임무였다. 학교는 소년의 거칠고 원시적인 본능을 다듬고, 내부에서 들끓는 불안정한 욕망을 억제하며, 대신 차분하고 절제된, 국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곳이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과정을 통해 훌륭한 시민이 되고, 성실한 공무원이 되었던가!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그들 중 몇몇은 위험한 혁명가가 되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쓸모없는 몽상가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교육이란 거친 본능을 다스리고, 무질서한 요소를 부수며, 그 속에서 국가가 원하는 인간상을 빚어내는 작업이었다."


이번엔 각각의 개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만을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런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학교와 사회적 분위기에 더 눈이 갔어요.

결국 신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던 한스, 하일러 모두 각자의 개성과 특성이 강했지만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을 따르지 못 했다는 이유로 이단아 취급을 받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된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만약 학교가 조금만 더 그들을 돌봤다면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면 한스가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의 냉대를 받으며 대장장이 일을 했었을까?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힌스를 조금만 더 돌봤다면... 한 때 총망받았던 그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어요.

결국 그에게는 첫사랑과 친구도 족,마을 사람들,학교의 기대와 실망에 따른 인간관계들이 고통이지 않았을까..

"그들의 임무는 특별한 인물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라틴어 문장을 쓰고, 수학 문제를 풀고, 성실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더 가혹한 존재일까? 교사인가, 학생인가? 누가 누구를 더 괴롭히고, 누가 누구의 인생과 영혼을 망치는 것인가? 이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씁쓸해지고,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논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천재들은 결국 상처를 견디고 훌륭한 인물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학교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환경 속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후대의 교사들은 그들을 ‘위대한 인물’이라 부르며 학생들에게 본보기로 제시한다."

만약 시대가 19세기 말이 아니라 21세기였다면 그들은 이단아, 사회부적응자가 아닌 신의 개성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되거나, 셀럽으로서 유명새를 떨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전적 소설로도 유명한데요.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이라고도 하는 '수레바퀴 아래서 - 데미안 - 싯다르타' 를 순서대로 읽으면 좋을 것 같더라구요!

데미안도 다시 읽고 싯다르타도 함께 읽으면 더 여운이 남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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