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1.2권 합본) - 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양장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지독하게 그는 이순신에 몰두했을까
'미치도록 잡고 싶다'는 <살인의 추억> 광고 카피처럼, 이순신에 다가가고 싶어하던 김훈의 열망이 진하게 전해져 오는 소설이 <칼의 노래>이다.

김훈이 읽었을 수많은 자료들, 조심스레 더듬어 보았을 무수한 장소들, 순간 단위로 떠올려 보았을 이순신의 시간들, 무심히 전라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을 김훈의 시간들은 하나의 완벽한 소설을 위해 행해졌다기 보다는 이순신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김훈은 이순신을 영웅화하지 않았으며, 이순신을 둘러싼 사건들을 강조하지도, 거기에 감정몰입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이순신의 시간들을 복원했을 뿐이다. 이순신 전기를 쓰고, 임진왜란 소설을 썼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늘여지고 삭제됐던 시간의 무수한 결들을 그는 복원해냈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이순신을 왜곡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다.

이순신이 죽게 될 거라는 복선을 느끼자마자 2페이지가 채 넘어가지 않은 시점에서 소설은 끝난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한 마디를 떠올리자마자 비감을 느끼기도 전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아들 면이 죽는 사건도 그 사건의 생생한 묘사가 아니라 오랜 후에 가끔씩 이는 하나의 슬픈 이미지로 존재한다. 소설 앞뒤로 붙은 사진자료와 연보, 지도도 소설 속에서 자신이 범했을지 모르는 왜곡에 대해 독자들에게 더욱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소설'일까? 논픽션이라면 이순신에 대한 더욱 객관적이고 사심없는 글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순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그의 생각과 감정까지 완벽하게 살려낼 수 있기를 바랐던 걸까? 어쨌든 이 소설은 김훈의 바람대로 죽은 인간에 완벽하게 다가가기 위한 개인의 몸부림과 노고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다.

문학이란, 문제의식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걸 최근의 우리 문학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문학은  투철함 보다는 가벼움, 냉소 혹은 외면으로 나아간다. 김훈의 문학은 여기에 다양성을 부여해주는 좋은 작품이다.

처음 읽는 김훈의 소설은 쉽게 낯익어지지 않았지만, 이동하는 함대의 뒤를 따라 까맣게 몰려드는 백성의 고깃배들, 광양만 바다 위에 섞여 떠다니는 조선 포로와 적군의 잘린 머리, 노량해전 발진 전 날 백성들에게 된장을 나누어 퍼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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