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회라니? - 두 남자의 멸종위기 동물 추적, 20주년 개정판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지음, 강수정 옮김 / 홍시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어본 적은 없지만, <마지막 기회라니?>의 표지 문구를 보며 더글러스 애덤스가 엄청 웃기는 작가인가 보다는 기대를 할 수 있었고, 정말 그랬다!

“내가 맡은 역할은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까무러치게 놀라는 무지한 문외한”이라고 자처하며 코믹 SF작가 더글러스 애덤스는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과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떠난다. BBC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이 여행은 1985년에 시작되어 5년 가까이 진행되는데, 목적지는 마다가스카르, 코모도 섬, 자이르(콩고), 뉴질랜드, 중국 양쯔강, 모리셔스 섬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정말 몰랐다”는 서두의 선언처럼 진지한 자의식 없이 시작된 것처럼 보이는 여정은 시종일관 계속되는 작가의 재치있는 서사에 탄력 받아 책을 읽는 속도에 채찍질을 가하는데, 그와 더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동식물의 멸종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더해져서 마침내 책장을 덮을 때쯤엔 독자마저도 “이거 참 야단났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것이 이 책의 강력한 힘이다.

코믹한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불편한 진실과 이어지는데 이를테면 코모도 섬에서 더글러스 애덤스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로 제공되는, 염소 한 마리를 줄에 매달려 코뿔소왕도마뱀에게 실어 보내 잡아 먹게 하는 행태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희귀종 보호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관광 산업의 빛과 그늘과 연결된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현지인들에게 무작정 환경 보호를 주장하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이 되는 관광 산업을 위시해야 한다는 현실 말이다.

또한 감동적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더글러스 애덤스와 마크 카워다인이 세계 곳곳에서 실제로 만난 동물보호학자들이다. 그들은 촉각을 다투며 지금 이 시각 이후로는 영원히 사라질지 모르는 동식물의 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일에 혼신을 다하는데, 그들이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과 그것이 악화되는 속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조금 심람해 보일 수도 있다. 생태적인 차원에서 모리셔스는 전쟁지역이며, 칼과 리처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최전방의 전투를 지원하는 야전병원 의사들인 셈이다.”

이동거리가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고 입출국 수속 절차가 결코 용이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으로만 가는 데다가 관련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최소 세 번 이상은 갈아타야 하는 운송 수단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매우 피곤한 일인 데서 생겨나는 우스깡스러운 상황들도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파도에 떠밀린 후에야 간신히 마크와 다른 사람들의 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얼른 바위 위로 끌어올렸다. 입으로는 물을 뿜고 피를 줄줄 흘려대면서도 괜찮다고, 나는 그냥 어디 조용한 구석에 가서 죽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마오쩌둥이 중국인민공화국의 건립을 선포한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스피커에서는 <비바 에스파냐>에 이어 <하와이 수사대>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누군가, 또 요점을 잘못 짚었다는 느낌을 털어버리기 힘들었다. 그게 내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실컷 웃다가 뒤통수가 징처럼 댕~ 하고 울리며 뜨끈해지는 느낌이랄까. ‘무척 재밌다, 그렇지만 뭔가 심상치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것.

몸소 다급해지는 체험이 가득한 환경주의 책이자, 멋모르는 비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이 친근하고 생생하게 펼쳐지는 사회운동 책.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독서 행위를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어했던 책이 바로 이런 식으로 교훈적인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와 유사한 만족감을 얻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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