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흔이 넘어도 이런 쌩쌩한 글을 쓰다니.

특히 다음과 같이 한 문장으로 남과 여가 평생의 인연을 같이하게 되는 사연을 풀어내는 것이 통쾌한 느낌을 준다. 일흔의 나이로 그것은 특별한 로맨스가 아닌 것이지.

-수경이에요. 여자가 먼저 누구라는 걸 밝힌 연후에야 비로소 아, 네에 하고 나서 여기 웬일이냐고 형식적인 질문을 하고, 아는 사람 문병 왔다 간다고 대답하고 그럼 이만, 하고스쳐 가려다가 여자의 얼굴에 떠오른 거의 무방비 상태의 친근감이 옮아붙어 열없게 웃으며 머뭇거리는데 마침 자판기가 코 앞에 있길래, 바쁘시지 않으면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동전도 천원짜리도 안 나와 쩔쩔맬 때, 여자가 저어, 여기요, 하면서 동전지갑에서 꺼낸 백 원 짜리나 오백 원 짜리를 그의 손바닥에 한 개씩 똑똑 떨구어줄 때, 누가 고 손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그 보기 좋은 한 쌍, 끝끝내 행복을 지켜보며 덩달아 즐거워하고자 했던, 마스코트 같은 한 쌍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나이가 들면, 내 인생의 마스코트라고 여기며 나보다 한참 어린 누군가를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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