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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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차가운 손>은 몸에 관한 소설이다.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고스란히 발산해 내고 있는 '몸의 한 부분'이 있다는 믿음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액자구조인 이 소설에서 소설 속 스케치북의 화자 운형은 엄지와 검지손가락이 없다는 외삼촌의 손을 그의 장례식에서야 보게 된다. 그 후 운형은 인간에게는 모두 감춰져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몸의 한 부분'은 바로 손이다. 손은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없지만 생전에는 철저하게 가려져 있었던 외삼촌의 손, 운형의 직업이 조각가라는 점, 운형이 만든 거대한 손 조각 등을 통해 응축된 이미지로 표현된다.

소재상 이 소설의 특징은 '조각'이라는 미술 장르와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를 잘 융합했다는 점에 있다. '조각'을 직업으로 하는 주인공 그리고 조각에 남겨지고야 말 손자국이나 손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생각들을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라이프 캐스팅(사람 몸에 석고를 입혀 직접 뜨는 작업)등에서 조각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의 저자 한강은 다른 여성 소설가들이 갖기 쉬운 피해의식이나 그로부터 비롯되는 편견, 선입관이 없고 공정하다. 그러므로 등장인물들 중 누구 하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거나, 피해자로 만든다거나, 피해자의 내면으로 너무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그렇기에 독자는 누구 하나를 미워하거나 동정하면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수고스러움 없이 비교적 편안한 독서를 즐길 수 있다.

'꽁꼼땅꼼', '맨송맨송', '날큼하게', '우렁우렁한', '기름한', '생뚱맞은', '서름서름' 같은 의태어의 신선함은 표현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소설가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 여러 명이 술을 함께 마시는 일에 '술추렴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신발장이라는 말 대신 '신장'이라고 말하는 것, 잠깐 자는 잠을 '토막잠'이라고 부르는 것, 이쯤에서는 작가 스스로 한국어에 대한 사명까지 더해 작업에 임하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소설을 써보고 싶거나 접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소설! 지금 필요한 것은 참신한 표현들이 가득하고 마음을 울리게 하는 단 하나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 때 서슴없이 집어들어도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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