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드로스/메논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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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또한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듯,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무엇보다 언어가 다른 저작들을 우리의 정서에 맞게 우리 언어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또다른 '창조'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달리 비유하자면, 번역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길을 내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하나의 언어권에서 같은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범주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것이 첫번역이라고 할 때 그 첫 번역이 고속도로와 같은 시원시원한 길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고, 번역된 결과물을 읽고, 번역자 스스로는 말할 것도 없고, 번역서를 읽는 동안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저술로, 정책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사람에 따라, 그가 얼마나 한 언어에 능통하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말에 얼마나 정통하냐, 제대로 구사하느냐가 좋은 번역에 필수적임에도, 두 가지를 고루 갖춘 번역은 그렇게 많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번역자 자신도 그러하고, 한 텍스트라도 그것에 대한 번역자가 많으면 많을수록(물론 더 이상의 번역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서면, 새롭게 번역에 뛰어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언어권의 입장에서 완전한 번역에 가까워질 것이다.

거의 평생이라고 해야겠지만, 특히 10여 년 이상 희랍어, 라틴어 원전번역으로 고대 서양의 고전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꾸준하게 결과물로 내놓고 있는 천병희 선생의 노고와 성과는 한마디로 눈부시다. 의미가 있는 것은 상당수 그가 작업한 저작들이 최초 한글 번역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현역 교수로 강단에 서 있을 때에도 번역작업은 꾸준했는데 특히 정년퇴임이후 칠십대 중반에 이르는 왕성한 활동으로 성을 쌓아가듯, 저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과거에 일부를 혹은 전체를 번역했던 저작들의 경우도, 미흡했던 점들을 보완하게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독자들의 언어감각에 맞게 새롭게 다듬는 작업도 높이 평가받아야 할 점이라 생각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독자들이 너무 어렵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직접 텍스트(고전)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친절한 주석이나 해설서들은 그러한 기본 번역을 바탕으로 뒤따르는 것이 바람직하고, 당연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알고 보면 한글이 글자와 말이 두루 제대로 쓰이게 된 역사는 전체 한반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그리 길지 않다. 해서, 어떤 이는 다른 언어에 비해 한글의 나이가 인간의 나이로 치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천병희 선생의 경우, <시학>(아리스토텔레스)을 오래 전에 번역하셨고, 이후에 일부 작품들을 번역출판했던 것을 총망라하여, 그리스비극전집, 아리스토파네스희극전집 등을 펴냈고,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번역출판했다. <시학>에서 다루는 서사시와 비극 작품들을 원전번역으로 제대로 읽은 이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나,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지금 공부하는 이들, 앞으로 후배들에게는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번역가이기 전에 해당 언어권 문학의 전공자임에도, 꾸준하게 그러한 텍스트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노년의 소중한 시간을 쏟아붓는 그 뜻은 무엇일까? 어느 책의 옮긴이의 글에 밝힌 바와 같이 후학들이 제대로 공부하고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본인의 소명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정치학>이며 플라톤의 <국가>, 여러 편의 대화편들을 번역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주해서에 의존하지 않고는, 그런 책들의 도움을 받아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런 고전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고전들을 직접 읽어볼 수 있도록 하자는 뜻도 있을 것이고, 평생에 걸쳐 숙독을 했던 고전들을 후학들이 우리말로 읽을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을 담은 것이리라. 약간 다른 각도에서 선생의 작업을 살피자면,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야 하지만 없는, 절실한 뭔가를 담은 고전을 골라서 우선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물론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다), 나름대로 평생에 걸쳐 숙고했던 주제와 대상들에 대한 정리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가령, 플라톤의 대화편 속에서 만나는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그 오랜 세월동안 악법도 법이다 식의 오해와 '너 자신을 알라'는 한 구절조처도 그저 경구로만 받아들이는, 협소한 지형에서 그들의 철학과 인생론을 받아들인 결과가 안타깝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논>은 도대체 미덕이란 뭔가, 아주 기본적이고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체가 모호한 주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그 사람 참 덕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할 때, 그 덕은 무엇을 말하며, 그의 어떤 품성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쓰는 말이면서도 정확히 이러하다라고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미덕'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미덕이라는 것이 본래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냐, 후천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습득되는 것이냐, 조금은 눈이 큰 것 같은 그물을 던져 그 실체를 잡아내려 하는데, 사실 알고보면 계산된 눈이 아주 촘촘한 그물을 통한 일망타진이라 할 수 있다.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 지금도 시골 농협창고나 시멘트 담벼락에 근대문화유산 수준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반공표어 속에 등장하는 상기란 단어, 상기(想起)라는 개념은 결코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플라톤은 인간의 혼은 멸하지 않아서 일종의 윤회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지점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과 그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견해를 달리한다(어쨌거나 이 얘긴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이미 알고 태어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사는 동안 어떤 자극에 의해 혹은 교육 등에 의해 자극을 받아 되살려지는데, 그것을 상기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논의틀을 벗어나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용기란 무엇이냐, 우정이란 무엇이냐 식으로 첫머리에서부터 미덕이란 무엇인가 묻고 그 답을 찾는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특징을 가지지만, <메논>에서 미덕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상기'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혼불멸론 윤회론 등이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기대화편의 특징을 가진,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집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미덕이 지식의 일종이라면 미덕은 배울 수 있는 것이네.

-(그러나) 미덕이 지식이 아니라면 배울 수 없을 것이 확실하다.

(지식이라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미덕이 지식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면 가르치고 배우는 것, 이전의 어떤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전제는 (메논과 이미 합의한 바 있는) 미덕은 훌륭한 것이다. 또한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미덕이다, 훌륭하다면 유익할 것, 그러므로 미덕도 유익한 것이다. 앞서 유익한 것들로 건강, 힘, 아름다움, 부 등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유해할 때도 있다, 무엇이 인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만 올바른 사용법이 인도할 때, 이러한 유익한 것들은 유익하고 유해하지 않게 된다.)
혼의 자질들. 절제, 정의, 용기, 빨리 배우는 능력, 기억력, 고상함 등등. 이런 자질 중에서 지식이 아니라 지식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때로는 유해하고 때로는 유익하지 않은지 살펴보자. 용기와 대담성을 예로 들면, 누가 지성 없이 대담할 때는 해를 입지만, 지성을 갖추고 대담할 때는 덕을 본다. '절제'와 '빨리 배우는 능력'도 지성을 갖추고 배우고 단련하는 것은 유익하지만, 지성 없이 배우고 단련하는 것은 유해하다. 혼의 모든 노력과 인고는 지혜의 인도를 받으면 행복으로 끝나겠지만 어리석음의 인도를 받으면 그 반대로 끝난다.

 

만약 미덕이 혼의 자질들 가운데 하나이고 필연적으로 유익한 것이라면 미덕은 지혜라야 한다. 혼의 모든 자질은 그 자체로는 유익한 것도 유해한 것도 아니며, 지혜나 어리석음과 결합할 때 유익하거나 유해해지는데, 이 논리에 따르면 미덕은 유익한 것인 만큼 지혜의 일종이라야 한다. 인간의 다른 활동은 모두 혼에 의존하지만 혼 자체의 활동들은 훌륭해지려면 지혜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미덕은 지혜의 일부이다.

 

훌륭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것은 아니다. 만약 훌륭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훌륭하게 태어난다면, 황금보다 소중한 어떤 존재로 그 훌륭함을 잘 보전하여,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나라의 수호신이 되도록 신전 같은 곳에 봉인하고 모셔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교육이다. 그렇다면 다시 미덕은 지식의 일종인가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미덕뿐만 아니라 어떤 것이 그것이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없는 것은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교사는 어디에도 없다. 미덕의 교사라 일컬어지는 훌륭한 삶을 살아던 이도, 정작 자신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미덕을 전수하지 못하지 않았나(테미스토클레스, 솔론 등등)

 

미덕은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즈음,  바로 이 순간에 아뉘토스가 나타나, 둘의 대화에 끼어든다. 당신은 훌륭한 가문에서 유복하게 자라 눈부신 활동(정치)하고 있는데(아뉘토스에게), 누가 당신을 이렇듯 훌륭하게 만들었는지, 부모님의 역할이 아닌지 등을 묻는다. 미덕을 배우게 하자면 우리는 누구에게 보내서 배우도록 해야 하는데, 그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3년 후면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독배를 마시고 죽게 된다. 그때에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진짜 배후가 바로 이 아뉘토스이며, 메논은 2대에 걸쳐 그의 집에 식객 혹은 문객으로 와 있는 중에 이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소크라테스: ...미덕의 교사로 자처하면서 자기들이 정한 보수를 내기만 하면 와서 배우기를 원하는 어떤 헬라스인도 가르칠 수 있다고 자기선전을 하는 그 사람들에게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아뉘토스: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 사람들'이라니, 누구를 말씀하시는지요?

소크라테스: 그들이 소피스트라는 것은 자네도 나만큼 잘 알텐데.

아뉘토스: 맙소사! 말조심하세요,소크라테스 선생님. 아테나이인이든 외국인이든 내 친족이나 친구들은 그자들을 찾아갔다가 망할 만큼 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자들이 자기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을 망치고 타락시킨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불경죄와 청년들을 선동한 죄(소피스트 협의)가 소크라테스가 고발된 항목이다. 플라톤이 대화편을 쓸 무렵에 스승은 이미 작고한 상태(기원전 399년 사형)이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앞서 집필된 점을 감안할 때, <메논>에 등장하는 아뉘토스의 발언은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덕 혹은 미덕(arete)이란 무엇인가, 하드웨어적인 것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에 가까운데, 굳이 자주 쓰는 말을 찾아보면 그것은 일종의 시스템이 아닐까, 부분 부분이 훌륭한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있는 시스템. <메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가치관, 아니 서양철학사의 새벽에서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재고되는 질문, 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에 해당하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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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메논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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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늘 어려운 것인가,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사랑한 사람일지언정 철학자로만 한정할 수 없으리라.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의 법문이 어렵던가, 독배를 마시기 3년 전 자신을 고발한 실세인 아뉘토스가 등장하고, <변론>의 정황을 이해하는데도 <메논>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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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에 관하여>를 읽고 토론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에피소드를 골라보기로 했다. 수다를 경계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상대방이 듣고자 하는 답을 적확하게, 그것도 간결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뭐 그런 얘기인데, 말하기보다 상징을 통해 보여주기를 택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헤라크레이토스는 동료시민들이 화합에 관해 한마디 해달라고 했을 때, 연단에 올라가 물이 든 컵을 들고 거기에 보릿가루를 치고 박하 가지로 젓더니 다 마시고 나서 연단을 떠났던 것이다." 

 

그는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사치하지 않아야, 도시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화합을 유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런 식으로 보여주었다. 그런가 하면,  

"스퀴타이의 왕 스킬루로스는 아들 80명을 남기고 죽으면서 막대기 묶음을 가져오게 했다. 처음에 그는 아들들에게 막대기를 묶인 채로 꺾어보라고 했다. 아들들이 꺾지 못하자, 그는 막대기를 하나씩 집더니 남김없이 다 손쉽게 꺾어버렸다." 

 

아들이 80명이라면 딸은 과연 몇 명이었을까? 궁금하지만 암튼 이 양반은 화합하고 뭉치면 강하고 불패일 것이나 분명하면 약하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전하고자 퍼포먼스로서 보여준 것이다. 협동해라, 협동은 힘이 세다! 그런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이승만 전 대통령인 것으로 아는데, 그냥 뭉치는 것만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분명해보인다. 왜 무엇을 위해 명분이 분명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그런 뭉침일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척결되었서야 할 친일세력들이 더 잘 뭉쳤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12월 19일은 윤봉길 의사 80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단다. 최근 한 일간지에서 읽은 기사는 '상징'이 몸서리치게 무서운 것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2005년 11월에 최초로 공개된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1908∼1932)

의사의 처형 장면을 담은 사진은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다.

 

"일제는 1932년 12월 19일, 일본 이시카와현 미고우시 육군 공병작업장에서 가장 악질적이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윤봉길 의사를 처형했다. 일제는 25세의 청년 윤봉길의 무릎을 꿇려 낮은 십자가에 붙들어 매고는 눈과 이마를 헝겊으로 가렸다. 그리고 10미터 거리에서 딱 한 발의 총알로 윤봉길 의사의 이마 정중앙을 명중시켰다. 피가 흘러나와 헝겊을 붉게 물들였으니 저들은 윤봉길 의사의 죽음으로 일장기를 그린 것이다."

-한겨레, 12월 8일자,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박근혜가 배운 건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였다" 중에서.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42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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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 한 해만 지나면 죽음을 맞이하는, 하나 당시엔 죽음이 다음해라고 예측할 수 없는 마르쿠스 카토가 두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의 설정이다. 그런데 다른 책에서 보면 로마인 마르쿠스 카토는 (60세 이전에는) 그리스의 철학과 문학 등 그리스 문명을 배척하는 입장이었다. 그리스의 신화가 물을 건너와 부츠 모양의 반도에 상륙하면서 로마 신화로 버전이 바뀌지만 로마는 아직 문명이라고 자주성을 주장하기는 이른 시기였다. 로마만의 문화적 정체성이 확고해지지 않은 시기, 그래서였을까?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쟁취의 대결에서 한편의 수장을 맡은  마르쿠스 카토는 반대편에 있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를 무참하게 밟았다. 표면에는 그가 너무나 친그리스적이라는 점을 앞세운다.

제2차 포이니전쟁에서 한니발(카르타고)를 제압하고 아프리카를 로마의 지배권에 편입하는 등 '제국' 로마의 기반을 마련한 입지전적인 인물 스키피오(흔히 '대(大) 스키피오'라 부름)의 공적은 어찌 할 수 없고(평민들의 지지기반이 굳건하므로), 마르쿠스 카토는  스키피오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사랑은 경도된 것이며 조국 로마에는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스키피오)의 카르타고에 대한 관용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공격의 빌미는 이러하다. 요즘 쓰는 말로 치면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생성해낸 '프레임'이다. 그리스문화에 친화적인 스키피오를 공격함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일파는 친로마적인 애국주의자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목표였다.

결국 스키피오는 휘황찬란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35세 한니발을 제압하던 시점을 정점으로 52세에 자발적인 망명 상태로 머물던 변방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다. 우리 역사에서 그 사례를 찾느다면 역대 중국의 왕조에 친화적이던 사대주의들을 비판하는 것이 민족주의 프레임 정도.

그런데, 환갑을 넘긴 마르쿠스 카토는 사람이 변했다. 그리스어를 뒤늦게 배우고, 그들의 문학과 철학을 열심히 공부하며 이를 자신이 지나온 길을 정리하는 지침으로 삼는다. 이런 면면은 숙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노년에 관하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스토아학파가 주장들, '영혼은 불멸하다' 플라톤 등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의 저술로 남아 있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철학의 골자를 로마인 마르쿠스 카토라는 해설자를 통해 듣는 기분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마르쿠스 카토 전'에서 카토는 소크라테스를 비판한다. “(소크라테스는) 관습을 파괴하고 동료 시민들로 하여금 법에 어긋나는 견해를 품게 함으로써 제 나라에서 참주가 되려고 기를 쓰는 요란한 수다쟁이”라는 것. 또한 카토는 이소크라테스(기원전 436~338)학파를 조롱하면서, “그의 제자들은 그와 함께 늙도록 공부만 하니 그에게서 배운 기술은 저승에게 가서 미노스(저승, 사자들의 심판관) 앞에서 변론할 때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서 고르기아스의 웅변술을 옹호하며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쓸모가 없음을 비판하는 칼리큘레스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비판이다.

<노년에 관하여>(<그리스로마에세이>)에서 주 대담자인 카토의 입장은 한창 때의(그는 말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국사에 전념했으니 언제가 한창 때라도 말하기는 힘들다) 생각과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얘기를 듣는 두 젊은이 가운데 하나가, 소 스키피오로 자신의 최대 정적이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대 스키피오) 손자(양손)이기에 립서비스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것일까? 아닌 듯하다. 한나발에서 스키피오까지 외적과 정적을 이미 무너뜨린 상태에서의 여유인가?

어쨌거나 <영웅전>에서의 마르쿠스 카토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삶을 재조명하는데 역점을 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B.H.리델 하트,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에서 우리 역사로 치면 충무공을 모함하고 시기하는 원균과 그를 대항마로 내세우는 일파의 수장쯤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스키피오를 "로마 제국의 창시자"라고 지칭한다. 기왕 이 책 얘기를 꺼냈으니 한 대목을 인용해서 두 사람의 대결 양상을 가늠해보자.

“그러나 남아 있는 기록에서 보면 적대행위는 모두 카토의 편에서 저질러졌다. 카토에게 스키피오의 그리스 문화에 대한 사랑은 그의 카르타고에 대한 관용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것이었고, 그것은 마치 소에게 빨간 천을 들이대는 것과 같았다. <지독한 카르타고>가 입버릇이 되어버린 인간에게 그의 앞에 서 있는 고결한 영혼과 높은 명성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의 좁은 마음은 카르타고와 스키피오가 모두 망하기 전에는 쉴 수가 없었다.”(위의 책 268)

어쨌거나 노년의 마르쿠스 카토는 그 자신이 그리도 경멸하고 라비벌을 처내는 빌미로 삼았던 문화를, 그리스어를 배우고 그리스 문명의 장점을 자기 인생에, 그리고 로마정신에 접목시키기 위해, 스키피오의 유지를 받들듯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이미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지.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다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노년에 관하여> 33절)

노년의 "체력 저하는 절도 있는 생활로 늦출 수 있으며", "정신 활동을 늘림으로써 체력에서 잃은 것을 보상받을 수 있다(27~38절)"는 것을 역설한다. 카토의 육성이다. 특히,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다는 이 대목은 참으로 명문이고 숙현하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필멸의 존재다 이 점만은 절대진리다. 너도 나도 한번뿐인 인생인데, 젊은 시절에는 왜 그렇게 권력이 다 뭣이라고 아웅다웅 싸우고 사셨어요? 라고 묻고 싶어진다. 이것은 어쩌면 <노년> 대담을 설정하는 키케로 던진 질문이고, 로마의 두 영웅, 두 거장들의 늦은 화해마당을 책이란 공간에 마련한 것은 아닐까? 

통찰력이 돋보이는 노년의 마르쿠스 카토는 빛나는 그리스 문화를 로마문화에 접목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실행이 답이다, 라고 믿고 행동하는 젊은 로마에 정체성을 수립하는데 기여한다. 개인의 삶도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이란 것도 생로병사가 있다. 죽음을 어찌 맞이하게 되는지, <노년>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간단하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등등 플라톤이아 크세노폰 등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이 남긴 저작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알면 알수록, 마르쿠스 카토가 순연하게 받아들이는 죽음을 이해하게 되리라. 역사를 가장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다루는 것으로 영국BBC방송이 최고하고 한다. 그들처럼은 힘들더라도 <노년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이제까지 소개한 고전들을 함께 읽으면 마르쿠스 카토라는 사람, 왜 그 책이 집필했는지 키케로의 의도를 알게 되리라. 다만 책들마다 집필 동기가 뭔지 저자가 깔아놓은 '프레임'을 고려하면서 읽으면 의외의 소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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