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임머쉰 1 ㅣ 한국만화걸작선
방학기 지음 / 거북이북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추억보정은 어쩔 수 없지만
수십년간 기억을 통해 과거의 만화장면을 되새김질 하다보면
원래의 만화 장면보다 더 화려하면서도 깔끔하게 변형되어 추억속으로 저장된다.
그것은 비단 <타임머쉰> 만이 아니라 모든 만화, 모든 추억이 다 그렇다.
연출이나 대사가 변형되어 기억되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장면은 칼라 이미지로 저장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타임머쉰>역시 몇몇 부분은
기억속의 장면보다 '허전'하고 '날린'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앞서 말 했듯, 그런 추억보정은 어떤 만화에나 다 있는 현상이다.
오히려 놀랍게도 <타임머쉰>은 추억속의 이미지가 사실이었음을 확인 해 주는 장면이 많다!
80년대의 검열이 발목을 잡다
문제는 추억보정이 아니라, 실제로 연재당시의 그림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 복원판은 80년대에 나온 클로버문고를 토대로 만든 듯 하다.
7,80년대에 만화에 대한 검열이 심했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심한 와중에도 그 단계 차가 있었으니,
연재물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일까) 상대적으로 검열이 부드러웠고
단행본은 더 검열이 엄했다.
이번 복원판은 소년중앙 연재당시와 다른 장면이 몇군데 나오는데
1회분의 <김씨아저씨와 다투는 장면>은 거의 만행에 가깝다.
소년이 어른을 줘 패는(?) 장면이 당시에 통과되기가 쉽진 않았으리라.
어쨌든 소년이 어른을 줘 팼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건만,
박력있게 싸우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라는 마인드인가.
'상단방어' 와 '중단찌르기' 는 액션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바람선을 지웠고 (쪼잔하다..-_-;)
'삼단뛰어차기' 는...... 한숨만 나온다.
(대사도 약간 씩 바뀐 것 같다.)
나는 타임머쉰 1회를 통해 방학기 화백의 만화를 처음 보았다.
소년중앙을 사주시는 부모님이라 그때까지 고우영 화백의 만화도 본 적이 없었다.
<김씨아저씨와 다투는 장면>은 내게 있어서 시각적으로 경이로운 충격이었고
<타임머쉰> 초반에서 가장 강력한 장면이었다.
.. 80년대 검열을 저주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실적으로 클로버문고가 없었더라면 복원 프로젝트 자체가 불가능 했을 테니까.
편집에서 잘린 장면들
<타임머쉰>은 별책부록이었는데
겉표지를 빼고, 속표지를 포함해서 64페이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지막 64페이지에 <심의필 마크>가 들어간다.
그 공간을 위해 마지막 페이지는 화면의 2/3만큼만 만화가 그려져 있다.
고우영 화백의 신문연재처럼 마지막 칸에 광고가 들어가서 만화가 페이지 단위로 딱 떨어지지 않을 경우,
고우영 화백의 만화처럼 한 컷을 추가로 그려 메꾸기도 하고
<타임머쉰> 처럼 그 페이지를 빼버리기도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공간이 어중간하게 남더라도 그대로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림체가 달라지거나 흐름이 어색해 지는 것 보다 그냥 공간이 남아 있는 것이 낫다는게 내 취향이지만
어쨌든 그건 개인적인 생각이고,
문제는 <타임머쉰>의 경우,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컷이 강렬한 여운을 줬던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잘라버리기엔 아까운 장면들이다.
한 회가 64페이지에서 속표지와 심의필페이지 를 빼면 62페이지씩 편집해 단행본을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어쩐지 페이지 수가 잘 맞지 않는다.
그야 연재당시 딱 64페이지씩 철저히 지켰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고,
딱히 흐름이 부자연스러운 곳도 없으니
페이지 단위로 몇장을 잘라냈는지는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다만...
<타루가> 에피소드의 마지막 <과꽃> 장면이
'어,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꽃> 마무리 장면은 <타임머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의 하나인데
다소 갑자기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의 착각인지... 긴가민가 하다.
<심의필 페이지>가 살아남아 있는 유일한 곳은 마지막 장면이다.
꿈을 꾸는 장면.
어쩌면 내게 있어서 가장 추억보정이 되어 있는 장면이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으론 좀 더 '반짝반짝' 했던 것 같은데. (사랑과 영혼의 패트릭 스웨이지처럼)
되게 환상적이면서, 그러면서 감동적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대사가, 이랬었던가...?
그럼에도 훌륭한 걸작
마지막으로 한 가지,
연재 당시에도 느꼈던 오류인데,
마지막회에서 "어떤 인물이 있을 수 없는 장소에 있는" 오류이다.
사실 마지막회에서 "그 어떤 인물이 처한 상황"까지 해결하면서 마무리를 지었다면 정말 끝내줬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마지막회 한 회 동안 모든 상황을 다 해결하고 끝내기엔 페이지 수가 촉박 해 보인다.
아마도 분량조절에 실패 한 결과인 것 같다.
이런 경우, 마지막회라 하더라도 평소의 템포대로 진행하다가
3,4페이지 정도 남겨놓고 급속도로 진도를 빼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임머쉰>의 경우는 마지막회의 첫 페이지에서 '어?' 하긴 했지만
차분하게 감동적인 마무리를 이끌어 냈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이후의 마무리로서는 아주 현명했다고 여겨진다. (뭔가 상당히 건방진 말투네.)
일고여덟살때 이 만화를 봤다.
간혹 소년중앙을 사지 못한 달도 있어서, 한 회가 빠지면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1권에서 나오는 박사님의 설명이나 3권에서 나오는 타루가의 이야기는 내겐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별책부록 표지에 나온 부제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스토리는 환상이었고
사람들의 아픔과 죽음이 진지하게 그려지는 스토리와 그림은 감동이었으며
티라노와 메도우사, 스포오츠카의 공격은 전율이었다.
리얼한 화면과 보지 못했던 회차에 대한 상상은 수십년에 걸쳐 머릿속에서 부풀어 올랐다.
근 40년 만에 다시보는, 그리고 40년 동안 궁금해 했던 <타임머쉰>은
(지금 보기에 다소 무책임한 전개도 있지만)
역시 한국 SF만화의 걸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웠을 여건속에서 환상의 작품을 복원해 주신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고... <태양을 삼킨 소년> 이랑, <초인 루팡>이 보고 싶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