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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권력과 근대지식 - 경성제국대학 연구 ㅣ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한국학 자료총서 15
정근식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0월
평점 :
정근식 외 편,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1
식민지 시기에 관한 글을 읽다보면 흔히 나오는 “제국대학”이란 단어가 있다. 왜 그냥 “대학”이 아니라 “제국”이란 글자가 붙었을까? 간단하다면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저 일본 식민주의의 잔재라고 생각되기에 더욱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는 것이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라는 책이다.
일본은 유럽의 학술 제도를 모방하여 대학을 설립하였으나, 제국대학은 시작부터 해체될 때까지 철저히 국가 주도의 대학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심지어 1918년 「대학령(大學令)」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일본 제국에서 사립대학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제국대학은 「대학령」 이전에도 이후에도 학술 연구에 관한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제국대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강좌’에 있다. 강좌란 제국대학에서 교육 혹은 연구의 기본 단위로서, 각 학문의 영역을 칙령을 통해 강좌로 지정하여 그 강좌를 담당하는 교수에게 해당 학문 영역에서 독점적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여러 학문의 영역이 관료제에 의해 지정되고 보장되었다는 것과, 연구자의 유출을 막고 안정적인 연구를 보장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모든 학술 연구가 “국가의 수요에 응해” 이뤄졌지만, 역설적으로 관료적 지위가 보장된 제국대학 교수들은 비교적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자치적으로 대학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는 식민지 조선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식민지 제국대학은 식민지에 세워졌음에도 제국대학이라는 보편적인 특권을 그대로 누렸으며, 결과적으로 식민지에서 고립된 ‘울타리 속의 제국’과 같은 형태를 갖췄다.
한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주제 중 하나가 식민지 공공성론이다. “제국대학”이라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학술 공동체에서 과연 ‘식민지 공공성’이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물론 울타리 안에서의 자율이라는, 이 책에서 지적하는 양상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시화된 공공성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방식이었지만) 사회를 융합시키고자 하며, 지식대중을 동원하는 파시즘적 공공성으로서의 제한적 기능은 수행했다는 점에서 유동적이고 가치체계적인 형태로 공공성이 존재했다고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그것이 현대 한국 사회의 한 축을 구성하는 하나의 시층의 형태를 갖추진 않았을까?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란 책은 그러한 지적 호기심을 일깨워주고 더 많은 질문을 2020년대의 우리들에게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