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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ㅣ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연예인과 유튜버를 비롯해 ‘돈 잘 버는 사람들’에 대한 내 생각은 비교적 심플하다. 예전에는 연예인 하면 누구는 예쁘고, 누구는 연기를 잘하고, 누구는 또 어떻고... 기타 등등 그 사람에 관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자 애썼다. 지금은... 나도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뭘 하든 그냥 돈을 많이 벌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요즘 뉴스에서 줄창 틀어 주는 노래 <다이너마이트>를 들을 때마다, 뉴스가 끝난 뒤 자동 재생되는 안마의자 광고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아,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방탄소년단은 돈 잘 벌어서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주변을 보면 우스갯소리로 악플 때문에 힘들어도 일단 돈을 억대로 벌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달게 받겠다는 사람이 많다. 얼굴과 사생활이 알려진 사람들의 직업적 고충과 각자의 위치로 오르기까지의 노력이 어땠는지에 관한 논의는 일단 접어 두기로 하고, 내가 나 자신에게 궁금한 건 이 부분이다. 부족함 없이 살면서 왜 자꾸 돈을 더 벌고 싶다고 말하는지.
『사물들』의 실비와 제롬은 소설이 쓰인 연도를 고려하면 나와는 꽤 세대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의 사람들이다. 근원적인 이유는 몰라도 일단 돈을 갈망하고 보고, 후천적 부를 향한 열망은 자질구레한 “사물들”의 소비로 이어져 사치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부의 갈망에는 끝이 없고, 무언가 스스로 확인하고 타인에게도 나타내려는 가장 편리한 수단인 사물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다. 그 소비로 만족감을 느낀다면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들은 오히려 무언가를 구매해서 방에 들이면 들수록 공허함을 느낀다. 끝내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계속해서 물을 채우는 모양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돈과 학습된 취향이라는 현재의 주된 안건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최근 지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과연 정말로 그들의 취향인지 생각하곤 한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예뻐 보이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취향은 분명 천차만별일 텐데, 요즘에는 모두가 다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똑같은 것을 소비한다. 미니멀 라이프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지금은 심지어 공간이 부족해도, 돈이 부족해도 일단 원하는 것은 사고 보자는 풍조에 가깝지 않은가. 미의 기준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가 예쁘다고 하는 얼굴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기에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세뇌당한 개념이다. SNS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커뮤니티 채널과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콘텐츠가 곧 소비자의 취향이 되고, 이는 아비투스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공허한 소비에 관해 적으려다가 이상한 방향으로 핀트가 나가 버린 것 같긴 한데, 어쨌거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스스럼없이 소비하고 또 소비한다. 그런 것들로는 당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 역시 뭐든 주문해 두고 나서 택배를 받기 직전까지 효용과 기대치가 계속해서 증가하다가, 막상 택배를 받으면 그 시점부터 오히려 행복감이 대폭 하락한다. 어쩌면 진정한 행복, 작지만 일시적으로 폭발하고 며칠 뒤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소확행이 아니라 오래도록 계속해서 유지되는 행복을 얻기란 너무나 힘들어서 대부분 은연중에 포기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보여 줄 수 있는 사물들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눈속임을 하거나 최면을 걸고 있는 건 아닐까. 설령 실상은 텅 비어 있더라도, 일순간만큼은 반짝하는 작은 자극과 행복을 일종의 모르핀처럼 주입해 가며.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