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조류생태학 전공 대학원생 조애나 틸은 유리멧새의 부화 성공률을 연구하기 위해 키니 교수의 집에서 지낸다. 그곳에서 연구를 하던 도중 숲 속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 이어푸드(얼사 메이저)를 만난다. 그 아이는 스스로 헤트라예에서 온 외계인이며, 죽은 여자아이의 몸을 빌렸다고 소개한다. 조는 납득할 수는 없지만 일단 밥을 먹이기 위해 달걀을 사러 갔다가 달걀장수 개브리엘 내시와 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조는 얼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다섯 개의 기적”만 보고 돌아가겠다는 얼사의 태도에 유보한다. 결국 묘한 달걀장수까지 합세해 얼사 메이저를 돌본다.

초반부에는 묘한 분위기의 미스터리인 줄 알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의심할 여지 없는 힐링 치유 서사였다. 책 중간부터는 사실 얼사가 꼭 보겠다고 고집 부리는 다섯 개의 기적이 무엇인지, 얼사의 정체는 무엇인지 희미해진다. 이 부분에 관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가 실패한 게 아닐까 잠깐 의심했는데, 끝까지 읽고 보니 처음부터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제쳐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급하게 진행되는 조와 게이브의 러브라인 역시 결국 얼사가 엮어 준 두 사람의 관계이고, 스킨십이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소재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보듬어 가는지를 그려내기 위한 장치였기에 큰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조는 어머니의 암 투병 중 우연히 자신 역시 유방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물이다. 어머니의 투병 ‘덕분에’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경험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고, 치료 후 남성에게 이성으로 비추어지지 않는 몸은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지만 단순한 신체적 이유만으로 자신과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꺼리는 타인의 태도와 시선도 그녀에게 큰 상처다. 문학을 좋아하는 달걀장수인 줄 알았던 게이브에게도 나름의 아픔이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데에 실패한 누나 레이시의 질타와 가스라이팅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각자 상처를 지닌 두 사람이 만나 공감과 애정을 나누며 로맨스가 전개되고, (반전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얼사까지 더해져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삼각형으로 발전한다. 얼사의 서사가 정말 너무너무 중요한데... 반전의 중심 요소이기도 해서 마음껏 언급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

가까울수록 아이러니하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적지 않다. 너무 좋은 관계는 삶의 유한성으로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기고, 너무 아픈 관계는 다른 관계보다 더 깊게 찔러 평생 봉합되지 않는 출혈을 만든다. 어쩌면 서로 완벽히 모르는, 혹은 일시적인 사이에서만 완전한 위로가 시작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 “타인”은 불신의 심벌이 되었는가. 최근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는 사실 그런 의미가 아닌데, 현대인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며 왜곡되어 현재처럼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란 기억이 있다. 『숲과 별이 만날 때』는 의심으로 얼어붙은 세상에 살랑 불어 온 책이다. 글렌디 벤더라는 이 책으로 따뜻한 기운을 선사함으로써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저녁을 덥힌다.



※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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