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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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나는 거의 한국 현대 문학에 입문하자마자 백수린의 소설 『참담한 빛』을 읽었다. 그때가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으니... 삼 년? 사 년 만에 다시 그녀의 소설을 읽는 셈이다. 선택 도서는 주어진 세 권 중에 골라 받을 수 있었고, 공교롭게도 모두 아직 읽지 않은 책이었다. 나에게는 진부해도 실패하지 않는 류인 가족 서사(그것도 여성 서사!)와 입문의 추억이 담긴 작가.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과거를 되짚는다. 과거는 스물둘 인아가 엄마의 권유(라고는 하지만 사실 “유배”와도 같다)로 할머니 댁에 가서 살기 시작하는 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편찮으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보냈던 나날을 곱씹는 것이다. 그런 인아의 마음속에는 여섯 살이 된 후에야 불쑥 자신을 엄마라고 소개하며 나타났던 현옥에 대한 원망이 있다. 어머니의 삶과 할머니의 삶이 밀려들며 그 감정은 가장자리로 쓸려 나간다.



언제쯤 엄마를 완전히 알 수 있을까? 이제는 조금 엄마의 삶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잘 모른다. 들은 이야기의 도막 도막을 모아 묶어도 비어 있는 틈새는 내 추측으로 메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된 엄마의 ‘서사’는 결국 일정 수준 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느 정도는 넘겨 짚어진 것이라 완결성을 포기하고 듬성듬성한 상태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함부로 동정하거나 함부로 넘어가고 싶지 않은 영역,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치부하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영역. 아마 세상 대부분의 딸에게 엄마의 삶은 이런 게 아닐까.


작중에 등장하는 엄마와 딸은 모두 어색하고 서먹한 관계이다.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 엄마와 인아의 관계보다 가까운 것은 오히려 할머니와 인아의 관계다. 어쩌면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지 못하는 거리라서 가능했을 일이다. 엄마와 딸은 시소에 앉은 듯 한 가지를 책임지면 그 대가로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이 아닌가. 『친애하고, 친애하는』의 인아도 자꾸만 엄마에게 묻고 싶다. “갓 낳은 아이를 두고 갈 만큼 미국이 좋았느냐”고, “엄마 인생에는 엄마의 공부가 가장 중요했던 거”냐고. 일에 밀렸던 경험이 인아로 하여금 엄마에게 한껏 다가가지 못하게 만든다. 할머니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해 “남성적인 머리”를 타고난 딸을 최고의 자랑으로 삼아 열심히 키웠으나, 결코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의 모녀는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제삼자를 통해 겨우 짐작하거나 속죄하며, 그 입장에 서서 이해한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 생활로 상처받아도 딸을 꿋꿋이 키웠던 두 엄마의 울퉁불퉁한 이야기가 마음을 긁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떠나 보냈던 시간의 복기도 외면할 수 없는 포인트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반려견이 주인에게 말하는 상황극을 만들어 엮은 사진을 보았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 놨더니 어느 날 대뜸 웬 수컷 강아지(심지어 연상)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너무 갑작스럽다고 하자 “내가 언제 키워 달라고 했냐”, “다른 집 언니들은 유치원도 보내 주는데 나만 못 갔다” 등...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내용을 읽다 보니 실제 상황도 아닌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고,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 아라가 나에게 그런 못된 말을 한다면... 하는 생각과 함께 여태까지 엄마에게 상처 주었을 많은 발언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최근 『걸어도 걸어도』를 읽고 너무 많이 울어서 이 책을 읽기도 전에 겁부터 났는데, 예상과 달리 담백한 구성에 잔잔한 물결이 인다. 백수린의 묘사는 첨언할 바가 없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너무 좋아서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잊히지 않는 그 ‘참담한 빛’이 드는 복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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